- 鄭澈
재너머 성권농(成勸農) 집에 술 익닷 말 어제 듣고
누운 쇼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희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鄭座首) 왔다 하여라.
요즈음 말로 풀이해 보자면
재너머 성혼의 집에 술이 익었다는 말을 듣고
누워있는 소 발로 차서 덕석놓아 걸터타고
아이야, 네 주인 계시냐 정좌수 왔다 일러라.
정철은 성격이 대쪽 같고 술을 좋아한데다가 성질도 매우 급했다고 합니다.
시에서도 그의 성격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술이 익었다는 말을 듣고, 누워있는 소를 냅다 발길로 걷어 차서 일으켜 세우자 마자 덕석을 얹어 타고 갑니다.
얼마나 술이 고프면 이렇게 급한가.
그 집의 식구들이나 하인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 成勸農(성권농) : 조선 문인 성혼(成渾, 1535 ~ 1598)
성혼은 짦은 벼슬살이를 끝내고 파주로 낙향하여 학문을 연마하며 유유자적했고,
정철은 부모상을 당해 고양 선산에 내려가 시묘살이를 하며 근처에 사는 성혼과 교유하였습니다.
정철은 아들을 성혼에게 보내 공부를 시키기도 하였을 만큼 돈독하게 지냈습니다.
역시 근처에 율곡 이이도 있어서 셋은 자주 만나 교유하였습니다.
셋은 한 살 차이나 동갑으로 한 시대를 함께 즐기다 간 다정했던 친구들입니다.
♧참고
김장생(金長生)이 찬한 송강(松江) 정 문청공(鄭文淸公) 철(澈) 행록(行錄)에 의하면
공은 영특하고 빼어나며 숙성하여 총명이 남보다 뛰어나 10세 이전에 문장의 뜻을 모두 통달하였다.
공이 일찍이 스스로 말하기를, “을사사화를 겪어 가족이 모두 쑥대밭이 되어 부형들이 가르치는 데 뜻이 없었다.
이로 인해 학문을 하지 못해 성현의 경전을 많이 읽지 못하였다. 장성하고서야 비로소 학문에 뜻을 두었다.” 하였다.
공은 조금 장성하여서는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에게 《근사록(近思錄)》 등의 책을 배워 나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었다.
또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항상 그 인품을 사모하고 대절(大節)을 칭송하여 “출처(出處)의 올바름은
근세의 유학자로서는 미칠 수 없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공은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형제를 기쁨으로 대하였으며 초상과 장례와 제사는 반드시 예법대로 하였다.
이는 남들이 미칠 수 없는 것이며 내가 몸소 보고서 감탄하여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
공은 항상 부모의 묘소를 찾아가 반드시 절하고 곡하면서 슬퍼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몹시 극진하여 노년에 이르도록 쇠퇴하지 않았다.
공은 몸가짐이 청렴하고 깐깐하여 수령이 주는 이바지일지라도 평소 모르는 사람이면 부채 한 자루라도 받지 않았고,
설령 평소 아는 사람일지라도 많으면 또한 받지 않았다. 또한 공은 마음이 밝고 명쾌하며 말이 호방하여 사람을 감동시키는 때가 많았으나,
대신으로서 너그럽게 사람을 용납하는 도량이 없었으며 또한 때로 주색(酒色)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그의 흠이었다.
공은 평소 질시하고 미워하기를 너무 심하게 하여 남의 허물을 용납하지 않아서 조금도 감춰 주지 않고 반드시 드러내어 말한 까닭에
그를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냥 아줌마로 살 거야 (0) | 2015.11.03 |
---|---|
모교 동문 운동회 (0) | 2015.11.01 |
花卉翎毛(화훼영모) (0) | 2015.10.29 |
마음아 너는 어이 매양에 젊었는다? (0) | 2015.10.26 |
좋은 글 쓰기란 - 말로 미리 풀어 보는 것 (0) | 2015.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