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석 당시삼백수

062. 八月十五夜贈張功曹 / 韓愈

甘冥堂 2023. 1. 2. 09:01

062. 八月十五夜贈張功曹 / 韓愈

        815일 밤 장공조에게

 

纎雲四巻天無河 (섬운사권천무하) 구름이 사방으로 걷히고 은하수는 안 보이는데

清風吹空月舒波 (청풍취공월서파) 청풍은 허공에 불고 달빛은 사방으로 퍼진다.

沙平水息聲影絕 (사평수식성영절) 모래밭 평평하니 강물도 쉬어 소리도 그림자도 없는데

一盃相屬君當歌 (일배상촉군당가) 한 잔 술 권하니 그대 노래해야 하네.

君歌聲酸辭且苦 (군가성산사차고) 그대 노래 소리 슬프고 가사 또한 괴로워

不能聴終淚如雨 (불능청종루여우) 끝까지 들을 수 없어 눈물이 비처럼 흐른다.

洞庭連天九疑髙 (동정연천구의고) 동정호는 하늘에 맞닿고 구의산은 높아

蛟龍出没猩鼯號 (교룡출몰성오호) 교룡이 나타나니 성성이 날다람쥐 울부짖는다.

十生九死到官所 (십생구사도관소) 구사일생으로 관아에 도착하여

幽居黙黙如蔵逃 (유거묵묵여장도) 도망 다니는 사람처럼 묵묵히 숨어 산다.

下牀畏蛇食畏藥 (하상외사식외약) 침상 내려올 때는 뱀이 무섭고 식사 때는 독이 무서워

海氣濕蟄熏腥臊 (해기습칩훈성조) 바다 기후와 독충으로 비린내 누린내 풍긴다.

昨者州前搥大鼓 (작자주전추대고) 며칠 전에 관아 앞에서 큰 북을 치고

嗣皇繼聖登夔臯 (사황계성등기고) 황제가 제위를 이어 백기와 고요를 등용했다.

赦書一日行萬里 (사서일일행만리) 사면장이 하루에 만 리를 달려

罪從大辟皆除死 (죄종대벽개제사) 죽을죄를 지은 것도 모두 죽음을 면하게 하고

遷者追迴流者還 (천자추회류자환) 좌천된 관리 되돌리고 유배된 사람도 돌아가

滌瑕蕩垢朝清班 (척하탕구조청반) 흠과 때를 씻어버리고 조정을 맑게 했다.

州家申名使家抑 (주가신명사가억) 주 자사가 이름을 올렸으나 관찰사가 억압하니

坎軻只得移荆蠻 (감가지득이형만) 험하게도 단지 강릉으로 벼슬살이 가는 것 얻을 뿐이다.

判司卑官不堪說 (판사비관불감설) 판사란 비천한 벼슬 감히 말할 수 없으나

未免捶楚塵埃間 (미면추초진애간) 흙먼지 속에서 매 맞는 걸 면할 수가 없다.

同時輩流多上道 (동시배류다상도) 같이 왔던 동료들 대부분 길에 올랐으나

天路幽險難追攀 (천로유험난추반) 서울 길은 멀고 험해 따라잡기 어렵다.

君歌且休聴我歌 (군가차휴청아가) 그대 노래 잠시 멈추고 내 노래 들어 보게

我歌今與君殊科 (아가금여군수과) 내 노래는 그대 노래와 성격이 다르다네.

一年明月今宵多 (일년명월금소다) 일 년 중 명월은 오늘 밤이 제일 밝지만

人生由命非由他 (인생유명비유타) 인생이란 운명에 달렸지 남에게 말미암지 않는 것.

有酒不飲奈明何 (유주불음내명하) 술이 있어도 안마시면 명월을 어찌할 것인가?

 

 

張功曹(장공조)공조참군인 장서를 말한다. 하북 하간 사람. 정원 19(803) 한유와 張署

임금께 간하다가 덕종의 분노를 사게 되어, 한유는 양산령으로, 장서는 임무령으로 폄적되었다.

21년 순종이 즉위하여 대사면으로, 두 사람은 침주(지금의 호남에 속함)에서 명을 기다리는데,

오히려 호남관찰사 楊凭(양빙)의 압제를 받아 임명을 받지 못했다.

이 시는 당시의 중추절에 지은 것이다.

 

纎雲(섬운)엷은 구름.

九疑(구의)창오산. 지금의 호남 영원 경계에 있음.

猩鼯(성오)성성이. 원숭이 과의 동물. 날다람쥐 오.

官所(관소)폄적된 지역인 臨武(임무).

濕蟄(습칩)습기가 많은 곳에 숨어 사는 벌레나 뱀들의 독기.

()훈증.

腥臊(성조)비린내와 누린내.

 

搥大鼓(추대고)唐時, 대사면령이 반포되면 위문 앞에서 북을 (종아리 칠 추)치며 군중이 모였다.

嗣皇繼聖(사황계성)당 헌종이 재위에 오르다.

()進用.

夔臯(조심할 기. 못 고)임금 때의 현신, 백기와 고요.

大辟(대벽)사형.

滌瑕蕩垢(척하탕구)흠과 때를 씻어 버리다, 과거의 실패에서 벗어나 면목을 일신하다

州家(주가)주의 자사. 申名(신명)신고.

使家(사가)관찰사. 압제.

 

荆蠻(형만)강릉(지금의 호북에 속함)

判司(판사)조참군의 통칭. 당시 한유는 강릉부의 법조참군, 장서는 공조참군으로 임명되었다.

捶楚(종아리 칠 추, 가시나무 초)채찍을 맞다. 모든 참군들은 벼슬이 가벼워 사람들이 천하게 여겨,

잘못이 있으면 심지어 채찍을 맞곤 했다.

 

이 시는 당시 서른여덟 살이던 한유가 침주에서 발령 소식을 듣고 강릉으로 떠날 준비를 하며

장서에게 지어준 것으로 장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낙오되어 다시 외지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울분과 허탈함이 나타나 있다.

 

마지막 단락은 한유의 노래로 불운했던 시간들을 모두 운명으로 돌리고

오늘만큼은 중추절의 밝은 달빛 아래서 한 잔 술로나마 그간의 시름을 잊어보자며

낙심한 장서를 위로하는 내용이다.

초연하게 달관하는 어조지만 여전히 설움과 고통의 무게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