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위 얼굴
오두막에서 태어난 가난한 소년 어니스트는 아버지가 없었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그는 학교도 가지 못했다.
착하고 영특한 소년의 자질을 알아보고 따로 챙겨주는 선생님도 없었다.
하지만 어니스트(Honest)는 기본어 이름 그대로 정직하고 선량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저 먼 산의 큰 바위 얼굴이 언제나 고개를 들면 어니스트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분지에 자리 잡은 마을.
옛날 이 골짜기에 살던 원주민들의 전설에 따르면
언젠가 이 골짜기에 저 바위를 닮은 아이가 태어나,
실로 고귀하고 바람직한 인물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니스트는 어머니가 말해준 큰 바위 얼굴의 전설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너는 아마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이 말을 마음에 새긴 어니스트는 힘겨운 노동으로 일상을 이어가면서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누군가를 만날 그날을 고대하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갔다.
1910년 태어난 유대인 이민자 소년 메이어 로버트 스콜니크.
취미가 마술이었던 영특한 소년은 살림에 한 푼이라도 보태기 위해
열네 살 어린 나이부터 마술 무대에 올랐다.
그는 전설적인 탈출 마술사 로버트 후딘에게서 ‘로버트’를,
아서 왕의 전설에 나오는 마법사 멀린으로부터 멀린(Merlin)을 따와
‘로버트 멀린’이라는 무대명을 지었고,
‘멀린’이 다소 낯설게 들린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로버트 머턴’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 이름으로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서 공부하여 현대 사회학의 거목이 된 것이다.
'역할모델’이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해 역할 모델이 아니라
준거적 개인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역할 모델은 추상화된 개념이다.
우리는 역할 모델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모방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대신 역할 모델이 표상하는 몇몇 요소를 추상화, 동일시, 모사한다.
가까운 예로 로버트 머턴의 역할 모델이었던 마법사 멀린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가난한 유대인 소년이 스스로를 멀린이라 소개했던 것은
멀린의 지혜와 용기를 본받고 싶었기 때문이었지,
본인이 전설 속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큰 바위 얼굴>도 마찬가지다. 어니스트는 아버지가 없다.
학교를 가지 못했으니 선생님도 없다.
준거적 개인을 갖지 못한 불우한 소년이다.
대신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을 역할 모델로 삼았다.
큰 바위 얼굴처럼 지혜롭고, 너그러우며, 강인하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다른 이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큰 바위 얼굴은 우연히 만들어진 바윗덩어리의 형상에 불과하지만,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을 역할 모델로 삼는 일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어니스트는 돌멩이가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정치인이 범국민적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정치에 뜻을 품은 사람이라면 좋은 롤 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다.
요즘은 정반대다. 온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을 큰 바위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본인이 했던 일도 안 했다고 우기며 피해자 행세를 하는
‘야바위 얼굴’만 즐비하다.
역할 모델은 고사하고 반면교사도 못 될 사람들.
어니스트가 이런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뭘 보고 배울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은새로운 역할 모델이 필요하다.
가난한 소년 어니스트도 자수성가할 수 있는 그런 나라의 역할 모델,
우리의 큰 바위 얼굴은 어디에 있는가.
(조선일보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