漁翁 / 金克己
天翁尙不貰漁翁 (천옹상불세어옹) 하느님 여전히 어부에게 너그럽지 않아
故遣江湖少順風 (고견강호소순풍) 일부러 강호에 순풍을 적게 보내주네.
人世險巇君莫笑 (인세험희군막소) 어부여! 인간세 험난하다고 비웃지 마소!
自家還在急流中 (자가환재급류중) 그대가 오히려 급류에 휩쓸리고 있지 않은가.
『東文選』 卷之十九
이 시는 고기 잡는 노인을 직접 대면하여 말하는 것처럼 쓴 시로,
어옹의 삶을 통해 세상의 풍파는 어느 곳이든 다 있음을 말하고 있다.
지은 이 노봉(老峰) 김극기는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하지 못하고 있다가
무신들이 정권 다툼을 벌이던 고려 명종 때에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의 좌장을 거쳐 한림이 되었다.
이후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그는 벼슬에 연연하기보다는 산림에 은거하며 많은 문집을 남겼다.
특히 무신난 이후 농민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던 시기에
핍박받는 농민들의 모습을 시로 표현하여 농민시의 개척자로 불렸다.
여느 시인들처럼 관념이나 경치를 노래하기보다는
농민 생활의 어려움을 시로 생생하게 표현해 낸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벼슬길에 올라 큰 뜻을 펴고 싶은 심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어옹’은 고기 잡는 어부를 등장시켜,
그의 삶을 통해 인간 세상의 풍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고고한 체 인간 세상 풍파가 어쩌니 말하지마소,
말하는 그대가 이미 급류에 휘말려 가고 있는 것도 모르면서.
조선조 대학자 김종직은 이 시를 중국 송나라 범중엄의 ‘증조자(贈釣者)’라는
아래의 시를 번안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贈釣者 范仲淹
江上往來人 (강상왕래인) 강가를 오가는 사람들은
盡愛鱸魚美 (진애로어미) 모두 농어를 맛있다고 한다
君看一葉舟 (군간일엽주) 그대는 보았는가 일엽편주가
出沒風濤裏 (출몰풍도리) 풍랑 속에서 가물거리는 것을
송나라의 재상이자 개혁가 그리고 전략가이기도 한 범중엄이 쓴 시다.
"먼저 천하의 근심거리를 걱정하고, 천하가 태평해진 다음에 마음을 놓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범중엄은
'공부는 사람을 고생시키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평생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바른 말을 하다가 몇 차례나 귀양가기도 한 우국충정의 명재상으로
위 시에서도 나타나지만 역시나 애민정신이 투철한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