繪事後素
회사후소(繪事後素)
“子夏問曰巧笑倩兮(자하문왈교소천혜)며 美目盼兮(미목반혜)여
素以爲絢兮(소이위현혜)라 하니 何謂也(하위야)잇고
子曰繪事後素(자왈회사후소)니라.”
자하가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巧笑倩兮 교소천혜) 아름답게 웃는 얼굴에 보조개가 예쁘네
(美目盼兮 미목반혜) 아름다운 눈의 맑은 눈동자가 선명하구나
(素以爲絢兮 소이위현혜) 흰비단으로 광채를 내도다
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何謂也 하위야)
공자가 답하기를
"그림을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을 마련해놓고 난 뒤에 한다(繪事後素 회사후소)"
자하가 다시 물었다.
"예가 나중이라는 말씀입니까?(禮後乎 례후호)"
공자가 말했다.
"나를 일깨워주는 사람은 상이로구나!
비로소 그와 함께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기여자, 상야! 시가여언시이의)"
자하의 질문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옛 시
(碩人(석인)-詩經衛風(시경위풍)-위나라 군주부인 장강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노래)
한 구절에 대한 질문이었다.
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란 본래 비단 바탕에 채색한다는 말인데
제자 자하가 “흰 비단으로 광채를 낸다.”라고 잘못 안 것이다.
공자는 자상히 일러준다.
“그림 그리는 일은 먼저 바탕이 있는 뒤에 색을 칠해 다듬는 것이다”
자하는 “예 알겠습니다. 예(禮)가 뒤라는 말씀이군요.”라는 답에
공자는 크게 성숙한 소견에 흐뭇해하면서
“나를 일으키는 자가 자하로다.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詩)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덧붙인다.
공자의 말은 '동양화에서 하얀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의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밖으로 드러난 형식적인 예(禮)보다는 그 예의 본질인 인(仁)한 마음이 중요하므로,
형식으로서의 예는 본질이 있은 후에라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자하에게 유교에서 말하는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5가지 기본 덕목인 오상(五常) 중
가장 으뜸 되는 기본 덕목은 인(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어진 성품, 곧 인(仁)을 갖춘 뒤에라야
진정한 예를 행할 수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어질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회사후소’의 깨달음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본바탕을 희게 한 후에 비로소 가능하듯,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도
본바탕을 바르게 한 후에 가능하다.
삶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도 회사후소의 마음으로
근본을 새로이 다지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참고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 (八佾 8)
회사(繪事)는 그림 그리는 일이다. 후소(後素)는 흰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한 뒤에 한다.’ 하였으니,
먼저 흰 비단으로 바탕을 삼은 뒤에 오색(五色)의 채색을 칠하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아름다운 자질이 있은 뒤에야 문식(文飾)을 가(加)할 수 있음과 같은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단맛은 조미(調味)를 받아들이고, 흰 것은 채색을 받아들이며,
충신(忠信)한 사람이라야 예(禮)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 바탕이 없다면 예(禮)가 헛되이 행해지지 않으니,
이것이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한다는 말씀이다.
공자(孔子)께서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한다.’고 말씀하시자,
자하(子夏)는 ‘예(禮)가 뒤이겠군요’라고 말하였으니, 그 뜻을 잘 계승하였다고 말할 만하다.
이것은 말 밖의 뜻을 터득한 자가 아니라면 가능하겠는가?
상(商)[자하(子夏)]과 사(賜)[자공(子貢)]가 함께 시(詩)를 말할 만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만약 장구(章句)의 지엽적인 것에만 마음을 몰두한다면 그 시(詩)를 배움이 고루할 뿐이다.
이른바 기여(起予)라는 것은 또한 <스승과 제자(弟子)가 서로 학문(學問)이 진전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