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유언을 남길까?
세계에서 가장 짧은 유언을 남긴 사람은 독일의 칼타우쉬라는 사람인데
그는 1967년 월 10일에 '모든 것을 아내에게' 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록상으로 가장 긴 유언은 미국의 프레데리카 쿠크 부인이 남긴 것입니다.
그녀의 유언은 무려 "9만 5940 단어로 4권의 책에 적어 제본까지 할 정도" 로 길었다고 합니다.
널리 알려진 유언 은 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 이겠지요.
감동적인 유언으로는 신라 문무왕의 유언도 있네요.
"내가 죽으면 동해에 묻어라. 죽어서 용이 되어 이 땅을 지킬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유일의 해중릉이 만들어졌고요.
안중근 의사 역시 애국적인 말씀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두었다가 나라를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이순신 장군도 뭉클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마지막 순간까지 왜적을 물리치려는 충혼의 그 마음이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순국소녀 유관순 열사의 유언도 가슴을 울립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중략…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상하이 홍코우 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왜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매헌 윤봉길 선생의 친필 유서가 2005년 12월에 공개되었지요. 두 아들에게 남긴 글입니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을사늑약의 국치를 당하자 충정공(민영환)은 주한외교사절과 2천만 동포에게 통한의 유언을 남기고 자결하셨지요.
특히 동포에게 남긴 글은 감동적입니다.
"대저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음을 기약하는 자는 삶을 얻으리니. ---중략---
영환은 한 번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 2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니,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음이라.
지하에서도 여러분을 반드시 돕겠으니, 우리 동포 형제는 천만 번 더욱 싸워 뜻을 굳게 하고,
학문을 익히며 힘을 합하여 우리의 자주독립을 찾으면 죽은 자는 황천에서도 기뻐하리라.
오호라, 실망하지 않고 우리 2천만 동포에게 삼가 이별을 고하노라."
마케토니아의 영웅 알렉산더는 B.C.323년에 33세로 요절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죽어서 내 육신이 누울 공간은 한 평인 것을 …,
이 한 평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며 수만 리 길을 달려왔단 말인가.”
회한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유언도 있습니다. 1971년 3월 11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는
"모든 재산을 공익재단에 기부하라." 는 유언을 남긴 뒤 빈손으로 홀연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의 딸인 유재라 씨도 1991년에 미국에서 숨을 거두며 "자신의 전 재산을 공익재단인 유한 재단에 기부"했습니다.
2대에 걸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신화를 이룩한 유일한 박사는
한국 경제전문가들이 국내에서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이자
전 재산을 사회에 되돌려준 참된 기업가로 기억될 것입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시를 유언으로 남긴 분도 있습니다.
단종 복위에 실패한 뒤 세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성삼문은 형장으로 가면서 이런 시를 읊었습니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북소리 둥둥둥 목숨을 재촉하는데
西風日欲斜(서풍일욕사) 서풍에 뉘엿뉘엿 해는 지려 하누나.
黃泉無客店(황천무객점) 황천에는 주막도 없다 하는데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오늘 밤엔 뉘 집에 자고 갈거나.
'호기심 천국'에 출연하는 등 유명세를 탔던 황수관 박사 (2012년 12월 30일, (향년 67세로 별세)는
인터넷 유언 사이트인 마이윌(www.mywill.co.kr)에 이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나의 모든 장기는 소외되고 어려운 환우를 위해 기증한다.
나의 시신은 의과대학 후학들의 연구에 보탬이 되기 위해 기증한다."
황 교수는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11년 전 메모지에 유언을 적어 지갑 속에 항상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무굴제국의 샤자한 왕의 애첩인 '몸타즈 마할' 다음 3가지의 유언을 남겼다는군요.
1. 다른 부인을 들이지 말 것
2. 자신이 낳은 아들을 왕으로 세워 줄 것
3. 우리의 사랑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워 줄 것
샤자한 왕은 그 유언대로 타지마할이라는 유명한 건물을 지워주었고요.
죽어서까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는 문화재를 남겼으니, 사랑의 힘은 그만큼 위대한 것일까요?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 장군에게 비참한 패배를 당합니다.
그때 양만춘 장군의 화살에 의해 한 눈을 잃었다는 전설이 있고요.
이세민은 얼마나 혼이 났던지 이런 유언을 남겼답니다.
"앞으로 고구려를 절대로 침범하지 말라."
스피노자는 명언에 가까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최영 장군의 아버지가 남긴 유언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유언은 <요셉의 유언(예언)> 이지요.
"나는 이제 죽을 터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어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에게 주시마고 맹세하신 땅으로 올라가게 하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반드시 찾아오실 것이다. 너희는 그때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그리로 올라가거라."
유명인사들의 유언을 좀 살펴볼까요?
예수 그리스도 : 2000년 전 33세로 유대인에 의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서 처형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누가복음 23장46절)
"이제 다 이루어졌다."(요한복음 19장30절)
붓다(석가모니) :2500년 전 인도의 쿠시나가라에서 제자가 준 음식을 잘못 먹고 80세로 자연사 함
‘모든 형상은 무너진다.'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공자(BC551-479).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공자가 남긴 유언은 "침묵"입니다. 침묵이 유언일까요?
공자는 병세가 점점 나빠지자 말문을 닫았습니다. 침대에 누운 체 7일이 지나도록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소크라테스(BC469 – 399년 아테네의 감옥에서 독배로 처형당함)
"여보게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의술의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네. 자네가 대신 갚아주게"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병이 나면 약과 의술의 신(아스클레피오스)에게 기도를 했죠.
병이 나으면 감사의 표시로 닭 한 마리를 신전에 바쳤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유언은 유머입니다. 그는
"독약의 약발이 제대로 받는군. 한 잔만 마셔도 충분해. 신에게 고맙다고 전해줘"라며 농담을 던졌던 겁니다.
허버트 크로포트(헤리퍼드의 주교, 1691년 사망).
벤슨 주교와의 우정으로 유명하여 이 두 사람의 묘비에는 우정을 상징하기 위해 서로 맞잡은 두 손이 새겨져 있다.
죽기 전 벤슨 주교 옆에 묻어 달라고 부탁하며..
"살아서는 늘 하나였다"
릭 웨렌 목사의 아버지 워렌 목사
“릭, 한 명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거라. 한 명이라도 더"
김수환 추기경(1922.5-2009.2)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한경직 목사(1902-2000) 밴쿠버에서 육성 녹음한 유언요약
나는 솔직히 자손들에게 남길 유산은 하나도 없다
문자 그대로 나는 내게 속한 집 한 칸 땅 한 평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본래 내 몸을 하나님께 바칠 때에 그저 온전히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첫째: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라. 신앙생활이란 것은 성경 말씀 그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언제나 성경 중심으로 살고, 성경 중심으로 모든 일을 하면서 살자는 말이다
둘째: 선한 청지기의 원리를 분명히 깨달아서 이대로 살라
우리는 세상에 와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소유를 잠깐 맡아서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이다
셋째: 마음과 뜻과 정성과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
넷째: 어느 곳에 가서 살든지 우리 민족을 잊지 말고 나라를 잊지 말라
다섯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다
*끝으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꼭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법정 스님(1930.10-2010.03)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 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생전에 스님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며, 사리도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
노무현 전 대통령(1946.5-2009.5)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마크 트웨인 (미국의 작가. 1910년 사망. 딸 클라라에게
"죽음, 그것이야말로 불멸의 것. 우리 모두를 똑같이 대해 더러운 자와 순수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 사랑받은 자와 사랑받지 못한 자, 모두에게 평화와 안식을 전해주도다."
시인 이상의 유언(1910-1937)
"나에게 레몬을 다오"
박완서 작가(1931.10-2011.01)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
루이 14세 (프랑스의 왕으로 '태양왕'이라고도 불렸다. 1715년 사망)
"왜 우느냐? 내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했느냐?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힘들구나."
루드비히 폰 베토벤(독일 작곡가 1827년 사망)
"천국에서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
윈스터 처칠(영국 수상. 20세기 영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 1965년 사망)
"나는 창조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다.
다만 창조주께서 나를 만나야 하는 시련에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파블로 피카소(스페인의 화가. 1973년 사망).
"나를 위해 축배를 드시오!"
지오아키노 로시니(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1868년 사망. 죽은 순간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올림페...."
클라크 게이블(미국의 영화배우. 1960년 마릴린 먼로와 함께 '부적응자'를 촬영하던 도중 사망).
마릴린몬로 : 어둠 속에서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클라크 게이블 : 커다란 별을 따라 똑바로 가는 거지, 하늘 아래 쭉 뻗어 있는 길이 우리를 집으로 바로 안내해 줄 거야.
아브람 S.휴이트(미국의 기업가, 정치가. 1903년 사망. 자신의 입에서 산소마스크를 스스로 벗겨내며)
"이제 나는 공식적으로 사망한 것이오."
토마스 홉스(영국의 정치이론가이자'리바이어던'의 저자. 1679년 사망).
"이제 나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어둠 속에서 한 발자국을 떼어 볼까."
칼 마르크스(1818~1883) 독일의 정치이론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길 유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리 나가! 유언이란 살아서 충분히 말하지 못한 바보들이나 남기는 거야."
공병우 박사(1907~1995,3,7) 안과의사 최초의 한글 타자기 발명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쓸만한 장기와 시신은 모두 병원에 기증하라
죽어서 한 평 땅을 차지하느니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것이 낫다.
유산은 맹인 복지를 위해 써라" (퍼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