碩鼠(석서)에 대한 감상
국풍 / 위풍(魏風) 제7편 석서3장(碩鼠三章)
碩鼠碩鼠 無食我黍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을 먹지 말지어다.
三歲貫女 莫我肯顧 삼년을 너와 익혔거늘 나를 좋게 돌아보지 아니하는데
逝將去女 適彼樂土 가서 장차 너를 버리고 저 낙토로 가리라.
樂土樂土 爰得我所 낙토여, 낙토여, 이에 내가 살 곳을 얻었도다.
碩鼠碩鼠 無食我麥 큰 쥐야, 큰 쥐야, 내 보리를 먹지 말지어다.
三歲貫女 莫我肯德 삼년을 너와 익혔거늘 나를 즐기어 덕을 보이지 아니하니
逝將去女 適彼樂國 가서 장차 너를 버리고 저 낙국으로 가리라.
樂國樂國 爰得我直 낙국이여, 낙국이여, 이에 내가 바르게 살 곳을 얻었도다.
碩鼠碩鼠 無食我苗 큰 쥐야, 큰 쥐야, 내 싹을 먹지 말지어다.
三歲貫女 莫我肯勞 삼년을 너와 익혔거늘 나를 즐기어 위로하지 아니하니
逝將去女 適彼樂郊 가서 장차 너를 버리고 저 낙교로 가리라.
樂郊樂郊 誰之永號 낙교여, 낙교여, 누구 때문에 길이 호소하리오
(낙교로 갔기에 더 이상 호소할 일이 없도다).
[해설]
큰 쥐는 백성들을 수탈하는 벼슬아치들을 빗대놓고 말한 것으로,
‘큰 도둑아, 큰 도둑아, 제발 내가 애써 농사지은 곡식을 먹지 말라,’ 하니 곧 세금이란 명목으로 다 빼앗아 가지 말라는 뜻이다.
네가 정치를 한지 오래되었지만 정치를 잘못하고, 계속 수탈이나 해간다면 이 땅을 버리고, 내가 살기 좋은 곳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백성들은 탐학하고 잔혹한 정치에 너무 지쳤다. 백성들이 오랜 동안 관리들에게 잘 보이려고 뇌물을 주면서 잘 사귀어 보려 하였으나
줄 때 뿐이다. 나중에는 익은 곡식도 모자라서 어린 싹까지 수탈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백성들이 어찌 편히 살 수 있으랴.
이 세상을 등지고 이런 탐관오리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편안히 살고 싶다. 그곳 낙교로 가면 다시는 나를 해칠 자 없을 것이니 더 이상
호소할 일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 시는 과중하게 세금을 거두는 것을 풍자한 시이다. 백성들이 그 군주가 과중하게 세금을 거두어 백성들을 수탈하여
그 정사를 닦지 않고 탐욕스러우며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큰 쥐와 같음을 풍자한 시라고 毛詩에서 설명했다.
[감상]
1. 세월은 흘렀어도 권력자와 백성의 관계는 변한 것이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쥐 같은 위정자들이 많다.
자신들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부정을 저질러 놓고도 손사래 치며, 치부를 하고서도 청렴한 체 한다.
이런 자들이 아직도 활개를 치며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으니 나라꼴이 우습다.
고위직 공무원들이나 정치를 한다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지도층이라는 자들 다수가 이런 類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말로는 大國인 미국도 원조한다. 입으로는 국민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실을 자기 자신을 위하는 자들이며 자기 사업을 하는 자들이다.
이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나라꼴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공무원들의 철밥통과 저희들 밥그릇 챙기기에 열중인 의원들, 그리고 사리사욕에 눈먼 지도층이라는 자들.
그들은 그들의 배를 채우려 갖은 궤설을 늘어놓고 있다.
이들이야 말로 碩鼠보다 더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2. 조선 중기 권호문(權好文:1532∼1587)도 이와 비슷한 의미로 [畜猫說]」지었다. 이르기를,
朝傍墻竇, 아침나절에는 담장에 있는 쥐구멍을 엿보고,
夕伺甕間, 저녁나절에는 장독 사이에서 쥐를 노려보다가,
必食盡其肉, 반드시 석서를 잡아 다 뜯어 먹은
然後爲足. 다음에야 흡족해하였다.
고양이의 습성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였다.
고양이를 길러 쥐를 잡게 하는 것이 삶의 지혜다.
쥐가 들끓는 세상을 이렇게라도 해서 정화시켜야 한다.
(中略)
嗚呼, 아,
食肉於國者, 나라에서 주는 녹봉을 받아먹으면서 ‘고양이’의 역할을 해야 할 자들이,
苟不除城狐社鼠, 나쁜 짓을 하여 백성들에게 폐해를 끼치는 ‘쥐새끼’들을 제 거하지 않는다면,
則將焉用彼相哉? 그런 녹만 축내는 쓸모없는 고관을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大率獸身而人心者有之, 대개 짐승의 몸을 하고서도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 도 있으며,
人面而獸心者亦有之.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도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도 있는 법이다.
世之人而鼠者多矣. 이 세상에는 사람으로서도 쥐새끼 같은 짓을 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惜乎, 참으로 슬픈 일이다.
衣君衣食君食, 나라에서 주는 옷을 입고 나라에서 주는 곡식을 먹으면서도
不修其職者, 자신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자들이여,
寧無愧於吾猫乎. 어찌 우리 집의 고양이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의 고양이는 누구인가? 당연히 공직자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이 이런 쥐새끼들을 노려보다가 반드시 다 잡아먹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깨끗해지고 백성들이 살기 편한 세상이 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이 사회의 고양이들은 나라의 녹만 축내는 쥐만도 못한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누가 고양이 역할을 해야 하나?
고양이 역할은 결국에는 백성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고양이처럼 노려는 보지만 쥐새끼인 저들을 잡아먹을 수는 없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먹기 살기에도 바쁜데, 언제 아침나절에 담장에 있는 쥐구멍을 엿보고,
저녁나절에 장독대 사이를 엿보다가 쥐를 잡나?
權好文(송암)의 이 글에 나오는 ‘석서(碩鼠)’라는 말은, 생쥐와 같은 작은 쥐들보다 훨씬 더 큰 쥐를 말한다.
이 단어는 위에서 감상한 『시경(詩經)』 「위풍(衛風) 석서」에서 유래한 말이다.
시경의 이 시로 인하여 후대에 이 석서라는 단어는 ‘난폭하여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위정자(爲政者)’나
‘탐욕스러워서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치는 범죄자(犯罪者)’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참조: 권호문(權好文:1532∼1587), 「고양이를 기르는 데 대한 설[畜猫說]」, 『송암집(松巖集』
3. 그러나 같은 쥐라도 일대의 名筆을 만들게끔 하는 수염(鼠鬚筆)이 나오는 쥐도 있다.
蘇過(소과)의 鼠鬚筆(서수필)에 이르기를.
鼠鬚筆 / 蘇過
太倉失陳紅 태창실진홍 정부의 창고에선 붉게 썩은 쌀을 축내고
狡穴得餘腐 교혈득여부 교활한 쥐 굴에선 나머지 썩은 고기 나와
旣興丞相歎 기흥승상탄 옛날 李斯로 하여금 탄식을 발하게 하였고
又發廷慰怒 우발정위노 장탕(張湯)으로 하여금 노발대발케 했단다.
磔肉餧餓猫 책육위아묘 그러나 쥐를 잡아 고기는 째어 주린 고양이 먹이고
分髥雜霜兎 분염잡상토 수염만을 잘라 흰 토끼털 섞어 붓을 만들었다.
揷架刀槊健 삽가도삭건 필통에 꽂아 두면 칼이나 창처럼 억세게 보이고
落紙龍蛇騖 낙지용사무 종이에 대면 용이나 뱀이 꿈틀거리듯 글씨가 쓰여진다
物理未易詰 물리미이힐 사물의 도리는 따지기 어려운 것이니
時來卽所遇 시래즉소우 만물은 때를 만나 제 구실을 하는 것이다.
穿墉何卑微 천용하비미 담을 뚫을 적엔 얼마나 비천한 것이었던가?
託此得佳譽 탁차득가예 그러나 어떤 이는 이를 빌어 훌륭한 명성을 얻기도 했다.
鼠鬚筆이란 쥐 수염으로 만든 붓으로 서예가들이 진귀하게 여겨온 것으로
중국의 대 서예가 왕희지(王羲之)가 쓴 蘭亭集序도 이 붓으로 썼다 한다.
이글의 작자 소과는 북송 때 당송팔대가인 蘇軾의 아들로서 詩文을 잘했다.
이사(李斯)는 진시황을 도운 法家로서. 그가 변소에서 보니 그 변소 가운데 쥐는 더러운 것을 먹으며
人糞에 가까이 하다가 자주 놀라는 것을 보았다.
뒤에 이사가 창고에 들어가 살펴보니 창고 안의 쥐는 쌓여 있는 곡식을 먹으며 큰집 아래 살고 있으되
인분의 걱정 없이 지내는 것을 보았다.
이에 李斯는 탄식을 하며, 사람이 현명하고 못나고 한 것도 이 쥐나 같다.
자기가 처하여 있는 곳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旣興丞相歎의 배경이다.
又發廷慰怒라는 句는, 張湯이 어렸을 때 집을 보고 있었는데 쥐가 고기를 훔쳐갔다. 그의 아버지는 화가 나서 탕을 때렸다.
탕은 쥐 굴을 파 젖히고 불로 그을은 끝에 쥐를 잡고 고기도 되찾았다. 그리고 쥐를 처형하였다. 탕은 후에 廷慰 벼슬을 하였다.
이 시는 서수필을 빌어 인생을 노래한 것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쥐들 중 어떤 쥐는 그 수염만이 추리어져 서수필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비천한 쥐에게도 일대의 名筆을 만들게끔 하는 수염(서수필)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터. 사람도 누구나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재능이 활용되고 못되는 것은
대부분 그가 때와 곳을 바로 만났느냐 못 만났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쥐들이 우글대는 세상에서 우리 인생도 뭔가에 의해 결정되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운명 같은 것이 있어서. 이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은 느낌이 들지 아니한가?
나는 뒷간의 쥐, 너는 곳간의 쥐....나는 개털, 너는 범털...
[결론]
시경 석서를 감상하면서 이질적인 두 글을 비교하였으니, 다소 주제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바라보는 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쥐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모두 약탈의 대상으로 보이고,
有意한 자의 눈으로 보면 더럽고 비천한 쥐에게도 나름 취할 바가 있다는 것이니,
스스로 알아서 처신해야 함을 일러주는 교훈이라 할 수 있겠다.
바라는 바 이 사회가 밝고 건강해 질 수 있다면, 이 글 碩鼠를 鼠鬚筆(서수필)로 써서
정부종합청사, 국회의사당 등 요처에 세워 그들로 하여금 이 글을 외우게 하여
쥐 같은 무리들이 스스로 정화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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