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틱 낫한 스님의 유언

甘冥堂 2022. 2. 10. 08:23

지난달 21일 입적한 세계적인 명상 수도승 틱 낫한 스님은 베트남 출신이다.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불교 승려다.

지구촌의 현대인에게 일상 속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웠던

틱 낫한 스님은 유독 명상을 강조했다.

 

틱 낫한 스님은 자신의 사후(死後)를 미리 당부한 적도 있다. 일종의 유언이다.

언젠가 내가 죽는다면 나를 위해 무덤이나 탑을 짓지 마라. 나를 화장해 달라.

내 유골을 전 세계의 플럼 빌리지 수도원으로 가져와서 당신의 걷기 명상 길에 흩뿌려달라.

그렇게 하면 내가 매일 당신과 함께 걷기 명상을 할 수 있다.”

 

1982년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 세운 명상공동체의 이름이 플럼 빌리지(plum village)’.

우리말로 하면 자두 마을이다.

베트남에는 산간 지역에 피는 자두꽃이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틱 낫한 스님은 자신의 저서에서

베트남에는 노란 꽃이 피는 자두나무가 있다. 수명이 무척 길다.

오래되면 나무가 뒤틀린다. 내가 그 나무처럼 느껴진다며 자두꽃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가 걸었던 수도자의 삶처럼 그의 유언도 맑디맑다.

자신을 화장한 유골을 걷기 명상의 길에 뿌려달라는 요청에서 틱 낫한의 깊은 지향이 읽힌다.

도대체 걷기 명상에 무엇이 숨어 있기에, 자신의 유해를 그 길에 뿌려달라고 말했을까.

틱 낫한이 생각한 걷기란 대체 무엇이고, 명상이란 과연 어떤 걸까.

 

틱 낫한은 먼저 걷기를 이렇게 이해하라고 했다.

걸음을 걷는 것은 한 발을 다른 발 앞으로 내미는 단순한 동작이다.

그런데 그게 귀찮거나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시간을 줄인답시고 가까운 거리임에도 차를 몰고 간다.”

우리의 마음이 급해서다.

틱 낫한은 오히려 걷기를 통해 편안함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바쁜 까닭에 그걸 놓친다고 했다.

 

그건 비단 걷기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바쁜 마음과 바쁜 걸음 탓에 우리는 삶의 순간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우리에게 틱 낫한은 우리가 행복할 이유는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그것들로 지구별은 꽉 차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걸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심지어 틱 낫한 스님은 우리에게 왜 무덤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는가?”라고 되물었다.

우리의 마지막 도착지는 무덤인데, 왜 그리로 가는 길을 서두르며 사느냐고 반문한다.

육신의 종착지는 무덤이다. 삶은 때가 되면 소멸하게 마련이다.

그럼 어떡해야 서두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을 틱 낫한은 이렇게 내놓았다.

지금 이 순간에 숨 쉬고 있는 삶을 향해 걸음을 옮겨라.”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지금 이 순간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대체 무슨 뜻일까.

틱 낫한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이 미래를 걱정하고 과거를 후회한다.

계획과 망상에 사로잡혀 마음이 몸을 떠나 있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으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지적했다. 나의 몸은 지금 이곳에 있는데,

나의 마음은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곳에 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틱 낫한은 몸도 마음도 함께 있어야 할 곳, ‘지금 여기를 강조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함께 있으라고 했다.

그런 우리를 향해 틱 낫한은 너는 이미 기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에 우리의 존재를 빗댔다.

은하수는 나는 은하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은하수로 있다.

현실에서는 삶 자체가 경이로운 현실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반영하는 맑은 눈으로 이렇게 현존하는 우리가

바로 놀라운 현실이다.”

 

(백성호 종교의 삶을 묻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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