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가는 길 / 윤석구 시인
늙어가는 길은 누구나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무엇 하나 처음 가는 길은 없지만
늙어 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 않고
방향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 가는 이 길은
너무나 두렵기만 합니다
여정 길에 친구가 그립기도 하고
때로는 말벗이라도 할 친구를 그리워하는 노욕에
뛰는 가슴으로 두리번두리번
찾아보기도 합니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발 한발 아주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황혼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꽃보다 곱다는 단풍처럼
해돋이 못지않은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아름답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노인의 가슴에는 계절이 없습니다 /석당 윤석구
노인의 가슴에 찬바람이 분다고 겨울이 아닙니다
노인의 가슴에는 꽃피는 봄날에도
단풍 고운 가을에도 찬바람이 자주 붑니다
방안 온도가 펄펄 끓어도
창밖에서 찬바람이 불면 어느새 몸은
그와 함께 동행을 합니다
노인은 문밖에서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려도
가슴에서는 산산이 부서지는 싸락눈이 내립니다
어릴 때 노인들이 하시던 말씀들을
어느새 지금은 제가 하고 있습니다
노인에게 좋은 선물은
보약도 아니고 여행도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잠시라도 만나주는 시간 입니다
노인은 같이 있으면서도
혼자인 것처럼 외로워 할 때가 많습니다
첫눈 오는 날이라도 되면
특별히 기다릴 사람도 없고
만나줄 사람이 없어도
설레는 마음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꿈꾸며
살아갈 이유를 찾고 싶어 그럽니다
꽃씨 같은 예쁜 언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더듬거리는 언어 끝에
고드름만 열리어 얼음 바람이 붑니다
노인의 가슴에 찬바람은
겨울에만 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계절이 아닌 자연을 가슴에 품고
햇살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섭리대로
바람과 구름과 별빛 따라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려고 합니다.
작가
윤석구 시인은 동요보급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아동문학가이자 동요작가이다.
동요도시 이천을 만들기 위해 한국동요박물관 명예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천이 좋아요’, ‘임금님표 이천쌀’과 같은 동요를 창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