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업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50세 이전에는 긴가민가했었다.
그러나 50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업보가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믿게 되었다.
주변에서 보면 잘나가다가 나자빠지고 엎어지고,
별 볼일 없던 사람이 벼락출세하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하면서
전생업보가 있다는 것을 점차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물론 개인 생각이다.
여자가 죽으면 저승으로 갈 때 바나나를 들고 간다.
여자가 평생 상대한 남자 수만큼 바나나를 들고 가야한다.
화류계 여자들은 광주리에 이고 간다.
어느 마을에 화냥년이라고 소문난 여자가 있었다.
화냥년이라고 소문난 여자가 바나나를 양 손에 각기 하나씩 달랑 두개만 들고 간다.
그 마을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그 여자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 여자의 평소에 저지른 소행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주머니로서는
그 여자가 바나나를 달랑 두 개만 들고 가는 것이 어무나 가증스러웠다.
아주머니는 그 여자 뒤를 따라가면서 혼잣말로 비아냥거렸다.
“세상에 니가 얼마나 화냥년이었는가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래 바나나를 달랑 두 개만 들고 가야? 참! 염치도 좋다.”
그 여자가 뒤돌아서서 아주머니에게 쏘아붙였다.
“아주머니! 이미 두 리어카에 실어 보내고 떨어진 것 주워 가요!”
인간 삶의 궤적은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이 태어나는 생년, 월, 일, 시가 사주팔자인데,
어떤 사람은 좋은 팔자를 타고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나쁜 팔자를 타고 태어난다.
그 차이가 바로 전생업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전생업보를 따지는 일이 너무 복잡한 방정식일 것 같으면
그걸 섭리라고 이해하며 살아 간다.
인생 공부의 길에도 좌도(左道)와 우도(右道)가 있다.
좌도는 빠른 길이고 우도는 느린 길이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좌도의 길은 피·땀·눈물을 흘리며 가는 길을 말한다.
피도 흘리고, 땀도 흘리고, 눈물도 흘려봐야 공부가 된다.
그러나 너무 많이 흘리면 죽거나 병신이 되는 리스크가 있다.
예수·공자와 동학 창시자인 최수운을 비롯해 걸출한 예술가들이 걸은 길이다.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일찌감치 인생 파탄나면 엄청나게 공부가 된다.
예수가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정상적인 출생이겠는가.
무슨 교육을 제대로 받았겠는가.
공자도 10대 후반의 어머니와 70세 다 된 늙은 영감 사이에서 태어난 야합(野合)의 아들이다.
무슨 가정교육을 받았겠는가.
사는 것도 ‘상갓집 개’ 소리를 듣고 살았다.
세상이 야단법석이다.
그러함에도 내일도 해가 뜬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