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梅 / 盧梅坡
梅雪爭春未肯降 (매설쟁춘미긍항) 매화와 눈, 봄빛을 겨루며 서로 지지 않으려 하매
騷人閣筆費平章 (소인각필비평장) 시인이 붓을 놓고 우열을 따져본다
梅須遜雪三分白 (매수손설삼분백) 흰 빛깔은 매화가 눈에 조금 뒤지고
雪却輸梅一段香 (설각수매일단향) 향기라면 아무래도 눈이 매화를 못 이기지.
有梅無雪不精神 (유매무설불정신) 매화만 있고 눈이 없다면 운치가 없고
有雪無詩俗了人 (유설무시속료인) 눈만 있고 시가 없다면 저속하리니
日暮詩成天又雪 (일모시성천우설) 저녁 무렵 시 짓고 나자 눈이 내리고
與梅幷作十分香 (여매병작십분향) 매화까지 꽃을 피우니 제대로 된 봄이지
설중매(雪中梅)라 하듯 눈과 매화는 서로 인연이 각별하다.
둘은 아삼륙이 되어 모진 한파를 함께 견뎌냈다.
한데 봄기운이 돌면서 둘은 제각기 봄의 전령사를 자처하며
‘서로 지지 않으려’ 다투고 있다.
중재에 나선 시인은 선뜻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가 난감하다.
고심 끝에 무승부로 타협한다.
빛깔 하면 눈이요, 향기라면 매화라 했으니 어느 한쪽도 서운하진 않겠다.
눈과 매화는 그렇게 오순도순 혹은 티격태격하며 봄의 길목에 들어섰다.
저들의 빛깔과 향기에 시인의 화답이 없을 수 없다.
시인은 제2수에서 다시 대타협을 도모한다.
“매화만 있고 눈이 없다면 운치가 없고/눈만 있고 시가 없다면 저속하리니.
저녁 무렵 시 짓고 나자 눈이 내리고/매화까지 꽃을 피우니 제대로 된 봄이지.”
이른 봄에 피는 매화는 희고 맑은 빛깔 때문에 곧잘 눈과 혼동을 준 듯
시인들은 더러 헛갈렸던 경험을 시에 담았다.
노매파(盧梅坡·송 말엽·생졸 미상)
梅花 / 王安石
墻角數枝梅 (장각수지매) 담 모퉁이 몇 가닥 매화
凌寒獨自開 (능한독자개) 추위 속에 저 홀로 꽃을 피웠네
遙知不是雪 (요지불시설) 멀리서도 그것이 눈이 아님을 안 건
爲有暗香來 (위유암향래) 은은하게 전해지는 향기 때문이지
송나라 시인 왕안석의 <<매화>>는
언뜻 보면 이른 봄에 피어난 매화꽃에 대해서만 쓴 시 같지만
사실은 동양화,동양시의 유명한 장르인
"사군자"(四君子: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노래한 시라고 할 수 있다.
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모든 꽃중 제일 먼저 꽃을 피우고,
난초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만한 깊은 산속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린다.
국화는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늦은 가을 무렵에 모든 꽃이 시들었을 때
추위를 이겨내며 만개하고,
대나무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하며
1년 내내 올곧게 자라난다는
각 식물 특유의 특성을 군자(君子), 즉 덕(德,인격,성품,도덕)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사군자라고 부르는 것이 동양문화의 오랜 전통이었다.
唐 장위(張謂)는 ‘조매(早梅)’에서
한 그루 매화 백옥처럼 흰 가지,
시골길 개울의 다리 곁에 서 있다.
매화가 물 가까이 있어 일찌감치 꽃 피운 줄 모르고
다들 겨우내 녹지 않은 눈인가 여기네라 했다.
早梅(조매) - 張謂(장위)
一樹寒梅白玉條 (일수한매백옥조) 한매 한그루 백옥 같은 가지
迥臨村路傍溪橋 (형림촌로방계교) 오솔길에서 멀리 떨어진 다리 옆에 피었네
不知近水花先發 (부지근수화선발) 물이 가까워서 꽃이 먼저 피는지
疑是經冬雪未銷 (의시경동설미소) 겨울이 가도 녹지 않는 눈인가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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