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甘冥堂 2023. 11. 30. 10:08

이 지구상에 동식물 중에서 ‘미루는 것’을 발명한 것은 인간뿐이다.
어떤 나무도, 동물도 미루지 않는다.
인간만이 미룬다.
 
폴란드의 한 유대인 마을에서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성지순례가 꿈이었으나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었다.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으면..”
“신고 갈 구두가 없어서..”
“멋진 노래를 부르며 가야하는데, 기타 줄이 끊어져서.."
 
그러던 중 독일군이 쳐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발가벗겨진 채 가스실로 향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이미 때는 늦었어!”

류시화 작가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에 나오는 구절이다.

"년말 연시에 어딜..."
"추위가 지나면..."
"허리가 좀 나으면..."
핑계 없는 무덤 없다.

더 웃기는 건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죽을 때도, "같이 죽을 사람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댈 텐가?

2018년 8월
홀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내년 2024년 8월16일. 다시 갈 계획이다. 더 늦기 전에.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이미 때는 늦었어!”
이런 후회를 하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지 아니한가?

 
나헤라 가는 길에 이런 싯귀가 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먼지, 진흙, 햇볕 그리고 비
이것이 카미노 데 산티아고
무수히 많은 순례자가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순례자여, 누가 당신을 불렀는가?
어떤 신비스런 힘이 당신을 이끌었는가?
들판의 별들도 아니고
웅장한 성당도 아니다
용맹스런 나바란 사람도 아니고
리오하 사람들의 포도주도 아니다
갈리사아의 해산물도 아니고
카스타야의 시골도 아니다
순례자여, 누가 당신을 불렀는가?
어떤 신비스러운 힘이 당신을 이끌었는가?
카미노 길의 사람들도 아니고
시골의 풍습도 아니다
역사와 문화도 아니고
라 칼사다 마을의 수탉도 아니다
가우디의 왕궁도 아니고
폰페라다의 성채도 아니다
지나가면서 보는 모든 것
모든 것을 보는 그것이 기쁨이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보다
더 깊이 느껴지는 그것
나를 밀어내는 힘
나를 이끄시는 힘
난 그것을 설명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오직 위에 계신 그분만이 아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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