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인생의 주소

甘冥堂 2024. 4. 16. 12:55

 

인생의 주소 / 문무학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

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만 줄을 선다

 

아! 인생

 

고작 꽃병과 약병

그 사이에 있던 것을....

 

 

 

봄비 / 문무학

 

봄 속으로 비가 오고 비 속으로 봄이 오니

비는 봄이 되고 봄은 또 비가 되어

봄비란 합성어 하나 새싹처럼 솟는다.

 

 

 

바다 / 문무학

 

바다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 말 한마디로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살아감과 사라짐

  누구나 누구가 그립다/ 문무학

 

살아가다는 때때로

살아지다가 되고

 

살아지다를 읽으면

사라지다로 발음되는데,

 

사는 것

사라지는 것

그게 같은 것인가.

 

내가 보낸 오늘은

산 것인가, 사라진 것인가

 

산 것은 희미하고

사라진 건 뚜렷하니

 

산다고

발버둥 쳤어도

사라지고 말았네.

 

 

 

명품 실수 / 문무학

 

책 읽다 만난 책이 좋을 것만 같아서

후다닥 주문해서 책 받아 펼쳐보니

아뿔싸 빌려 읽다가 안 돌려준 책이다

 

곧 읽을 듯 빌려서는 노루글로 읽다 말다

시간 가고 날이 가고 달이 가서 그만 잊고

책장에 꽂힌 그 책을 사고만 건 사고事故였다

 

읽다가 꽂아둔 책 맘 잡아 읽었으니

읽어서 얻은 것도 결코 작지 않았지만

명품 책 꿀꺽하려다 돌려줄 수 있었다

 

늦기는 좀 늦었지만 파렴치 벗어났다

염치 하나 캐는 것이 책 읽는 뜻일지니

실수도 이 정도 되면 명품이라 할만하다

 

ㅡ 『시조21(2024, 봄호)

 

 

 

 

뜻밖의 낱말 착하다 / 문무학

 

착한 건 싼 게 아니고 싼 건 다 착하지 않다

사람 사이 착착 붙어 살맛 내는 착함인데

값싼 걸 착한 것으로 착각하게 하지 마라

 

싸구려를 착한 가격, 착한 가격 하다 보면

쓴맛뿐인 세상에 고명으로 얹히는

착함의 값이 떨어져 버려질까 두렵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는 자본주의

말이 착해져야 세상 착해지는데

말까지 돈으로 봐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문무학, 뜻밖의 낱말, 뜻밖에, 2023.

 

 

형용사 착하다는 사전적으로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무학 시인의 시 뜻밖의 낱말 · 10  착하다에서는

착한의 속뜻이 우리 사회 곳곳에 비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짚어낸다.

그의 지적은 착한의 의미가 착한과 나쁜이라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부추기면서

양극단의 차원을 비판하게 만든다는 점을 우려한 데서 시작된다.

 

그는 착한 건 싼 게 아니고 싼 건 다 착하지 않다라고 말하며,

값싼 걸 착한 것으로 착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른바 마케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는 자본주의의 패착은

전형적인 선과 악의 구도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싸구려를 착한 가격, 착한 가격 하다 보면 진정한 소비와 노동의 가치를 잃을 수 있는데,

이는 착한의 대립과 모순으로 드러나게 된다.

어떤 가격이 상대적 평가 기준보다 높거나 낮을 수는 있으나 세상에 나쁜 가격은 없다.

 

시인은 노동의 가치가 저렴함과 결부되어 착함의 값이 떨어져 버려질까 두려운

우리 시대 정책의 현주소를 확인하며, 단어의 숨은 뜻을 읽어나간다.

세상의 움직임이 말과 마음의 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믿어보면서. (김보람 시인)

 

 

 

문무학 시조집 뜻밖의 낱말(뜻밖에, 2023.7) 13

 

“‘시인을 줄여 쓰면

이 될 수 있는데

그 신은 귀신 신 아닌 새로울 신이다

 

 

 

 

◀문무학 시인▶

어느덧 일흔을 훌쩍 넘긴 문무학 시인.

 

노인이 되려고 노력한 적 없으나 노인이 되었다고 스스로 말하는 시인이

한 주에 한 권씩 152주 동안 매주 1권씩 읽은 책 서평 52편을 모아

'책으로 노는 시니어'를 출간했습니다.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라며,

책으로 놀아보니 일흔 살기에 가장 이상적이라고

망설이지 않고 말할 자신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집에 읽을 것 같아서 사놓고는 안 읽는 책이 무작위로 쌓여 있다고, 전부.

그런 책을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서 읽고 그렇게 하니까

,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내 삶에 생기가 돌아요.

할 일도 늘 있어지고. 약간씩 바쁘니까 활기가 생기고 좋고"

 

대구문화재단 대표, 대구 예총회장 등 대구 문화예술계를 이끌어오며

책 읽기를 비롯한 예술 소비 운동을 주도한 시인은

이젠 책 읽기에서 장르를 확대해 영화, 공연, 전시 관람기로 책을 내보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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