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여행 / 정호승

甘冥堂 2025. 1. 11. 10:05

여행 / 정호승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릴 때까지
돌아오지 마라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
 
『여행』 (창비, 2013)
 
 
그 마음을 어이 알 수 있으랴
떠나서는 돌아오지 말라는 말
그처럼 속상하는 말이 어디 있겠나.
여럿이 모여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이미 떠난 마음은 멀리 더 멀리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있을 때가
더 외롭다는 말
이제 떠나야지 나도
그 사람의 마음의 오지속으로
돌아오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