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의 탓만이 아닌 것이.
생리적인 일상사는 잊지 않으면서, 오직 책을 읽을 때만 멍청해 지는가?
論語集註 序說에
程子曰 讀論語有讀了
全然無事者
有讀了後其中得一兩句喜者
有讀了後知好之者
有讀了後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
논어집주 서설에
정자가 말했다. 논어를 읽고 나서 다 읽은 뒤에
전혀 아무런 일이 없는 자도 있으며,
다 읽은 뒤에 그 가운데 한 두 구를 터득하고 기뻐하는 자도 있으며,
다 읽은 뒤에 좋아하는 자도 있으며,
다 읽은 후에 <너무 좋아서>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는 자도 있다.
程子曰 今人不會讀書
如讀論語 未讀時是此等人
讀了後 又只是此等人
便是不曾讀
정자가 말했다. 지금 사람들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예를 들면 논어를 읽었을 때, 읽기 전에도 이러한 사람이오,
다 읽은 후에도 또 다만 이러한 사람이라면
이것은 곧 읽지 않은 것이다.
易傳序에
得於辭 不達其意者有矣,
未有不得於辭 而能通其意者也.
주역서문에
말을 알고도 뜻을 통달하지 못한 자는 있지만,
말을 알지 못하고서 뜻을 통달할 수 있는 자는 있지 않다. (周易 易傳序)
과연 그렇다.
책을 한 번 읽고 나서도 무엇을 읽었는지, 주제가 무언지도 모르고
단지,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스스로 기뻐하며 만족한다.
그중 한 두 구절이 생각나면, 그 구절을 찾느라 하루 종일 헤맨다.
책을 읽고 나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책을 읽지 않았던 어제나, 책을 읽은 후 오늘이나 그날이 그날 같다.
아, 그거 뭐 다 그런거지 뭐. 간단히 치부하곤 책장에 장식한다.
論語에서 지적한 대로 이것은 책을 읽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말로 쓴 책이니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러나 그 깊은 의미까지 꿰뚫지는 못한다.
이게 무슨 뜻이지?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이 역시 책을 읽지 않은 것과 똑 같은 것이다.
오늘 한 구절을 찾으려 책을 뒤져보니, 어느 책에 있는 글인지 조차 알 수 없다.
四書에 있던가? 어느 책에 있더라?
윗 글에서와 같이 책을 읽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니
그 심한 정도가 지나친 것이다.
알파고.
두개골에 인공지능 칩을 넣고 꿰매야 직성이 풀릴 것같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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