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 태백 ; 제1장
▣ 제1장(第一章)
子曰 泰伯은 其可謂至德也已矣로다 三以天下讓하되 民無得而稱焉이온여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태백(泰伯)은 지극한 덕(德)이 있다고 이를 만하다. 세 번 천하(天下)를 <굳이> 사양하였으나 백성들이 그 덕(德)을 칭송할 수 없게 하였구나!”
泰伯은 周大(太) 王之長子라 至德은 謂德之至極하여 無以復加者也라 三讓은 謂固遜也라 無得而稱은 其遜隱微하여 無迹可見也라 蓋大王三子에 長은 泰伯이요 次는 仲雍이요 次는 季歷이라 大王之時에 商道浸衰하고 而周日彊大하며 季歷이 又生子昌하니 有聖德이라 大王이 因有 商之志나 而泰伯不從한대 大王遂欲傳位季歷하여 以及昌하니 泰伯知之하고 卽與仲雍으로 逃之荊蠻하다 於是에 大王乃立季歷하여 傳國至昌하여 而三分天下에 有其二하시니 是爲文王이요 文王崩하고 子發立하여 遂克商而有天下하시니 是爲武王이라 夫以泰伯之德으로 當商周之際하여 固足以朝諸侯有天下矣어늘 乃棄不取하고 而又泯其迹焉하니 則其德之至極이 爲如何哉아 蓋其心은 卽夷齊 馬之心이나 而事之難處는 有甚焉者하니 宜夫子之歎息而贊美之也라 泰伯不從은 事見春秋傳이라
태백(泰伯)은 주(周)나라 태왕(大王)의 장자(長子)이다. 지덕(至德)은 덕(德)이 지극하여 다시 더할 것이 없음을 말한다. 세 번 사양함이란 굳이 사양함을 말한다. 칭송할 수가 없게 하였다 함은 은미 하여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이다. 태왕(大王)은 세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長子)는 태백(泰伯), 차자(次子)는 중옹(仲雍), 삼자(三子)는 계력(季歷)이다. 태왕(大王) 때에 상(商)나라의 정치는 점차 쇠약해지고 주(周)나라는 날로 강대해졌으며, 또 계력(季歷)이 아들 창(昌)을 낳았는데 성덕(聖德)이 있었다. 이에 태왕(大王)은 이로 인하여 상(商)나라를 칠 생각이 있었는데 태백(泰伯)이 따르지 않으니, 태왕(大王)은 마침내 왕위(王位)를 계력(季歷)에게 전하여 창(昌)에게 미치게 하고자 하였다. 태백(泰伯)은 이것을 알고 곧 중옹(仲雍)과 함께 형만(荊蠻)으로 도망하였다. 태왕(大王)은 마침내 계력(季歷)에게 나라를 물려주어 창(昌)에게 이르러서는 천하(天下)의 3분의 2를 소유하니, 이가 바로 문왕(文王)이다. 문왕(文王)이 죽고 아들 발(發)이 즉위하여 마침내 상(商)나라를 <정벌(征伐)하여> 이기고 천하(天下)를 소유하니, 이가 바로 무왕(武王)이다.
태백(泰伯)의 덕(德)으로, 상(商)나라와 주(周)나라의 교체시기를 당하여 진실로 제후들의 조회를 받고 천하(天下)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마침내 이것을 버리고 취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그 사양한 자취마저 민멸(泯滅)하였으니, 그 덕(德)의 지극함이 어떠한가? 그 마음은 바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무왕(武王)의> 말고삐를 잡고 상(商)나라 정벌(征伐)을 간(諫)하던 심정이나 일의 난처함은 그보다 더 심하였으니, 부자(夫子)께서 탄식하고 찬미하심은 당연하다 하겠다. 태백(泰伯)이 태왕(大王)의 뜻에 따르지 않은 사실은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보인다.
▣ 제2장(第二章)
子曰 恭而無禮則勞하고 愼而無禮則 하고 勇而無禮則亂하고 直而無禮則絞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공손하되 예(禮)가 없으면 수고롭고, 삼가되 예(禮)가 없으면 두렵고, 용맹스럽되 예(禮)가 없으면 혼란하고, 강직하되 예(禮)가 없으면 너무 급하다.”
는 畏懼貌요 絞는 急切也라 無禮則無節文이라 故로 有四者之弊라
시( )는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교(絞)는 매우 급하여 너그럽지 못한 것이다. 예(禮)가 없으면 절문(節文)이 없으므로 네 가지의 폐단이 있는 것이다.
君子篤於親이면 則民興於仁하고 故舊不遺면 則民不偸니라
군자(君子)[위정자(爲政者)] 가 친척에게 후하게 하면 백성들이 인(仁)에 흥기(興起)하고,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의 인심이 각박해지지 않는다.”
君子는 謂在上之人也라 興은 起也요 偸는 薄也라
○ 張子曰 人道에 知所先後면 則恭不勞하고 愼不 하고 勇不亂하고 直不絞하여 民化而德厚矣리라
○ 吳氏曰 君子以下는 當自爲一章이니 乃曾子之言也니라 愚按 此一節은 與上文不相蒙하고 而與首篇謹終追遠之意로 相類하니 吳說近是니라
군자(君子)는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흥(興)은 흥기(興起)이다. 투(偸)는 각박함이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의 도리에 먼저 해야 할 것과 뒤에 해야 할 것을 알면 공손해도 수고롭지 않고, 삼가도 두렵지 않고, 용맹스러워도 난리를 일으키지 않고, 곧아도 급하지 않아, 백성들이 교화(敎化)되어 덕(德)이 후해질 것이다.”
○ 오씨(吳氏)는 “군자(君子) 이하는 마땅히 별도로 한 장(章)이 되어야 하니, 이것은 곧 증자(曾子)의 말씀이다.” 하였다.
내가 상고해 보니, 이 한 절(節)은 위 글과 서로 연결되지 않고 수편(首篇)[학이편(學而篇)]의 상사(喪事)를 삼가고 옛 조상을 추모한다〔愼終追遠〕는 뜻과 서로 유사하니, 오씨(吳氏)의 말이 옳은 듯하다.
▣ 제3장(第三章)
曾子有疾하사 召門弟子曰 啓予足하며 啓予手하라 詩云 戰戰兢兢하여 如臨深淵하며 如履薄氷이라하니 而今而後에야 吾知免夫로라 小子아
증자(曾子)가 병(病)이 위중하자, 제자(弟子)들을 불러 말씀하였다. “<이불을 걷고> 나의 발과 손을 보아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전전(戰戰)하고 긍긍(兢兢)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하였으니, 이제서야 나는 <이 몸을 훼상시킬까 하는 근심에서> 면한 것을 알겠구나, 소자(小子)[제자] 들아!”
啓는 開也라 曾子平日에 以爲身體受於父母하니 不敢毁傷이라 故로 於此에 使弟子開其衾而視之라 詩는 小旻之篇이라 戰戰은 恐懼요 兢兢은 戒謹이라 臨淵은 恐墜요 履氷은 恐陷也라 曾子以其所保之全으로 示門人하고 而言其所以保之之難如此하여 至於將死而後에 知其得免於毁傷也라 小子는 門人也니 語畢而又呼之하여 以致反復丁寧之意하시니 其警之也深矣로다
○ 程子曰 君子曰終이요 小人曰死니 君子保其身以沒을 爲終其事也라 故로 曾子以全歸爲免矣시니라 尹氏曰 父母全而生之하시니 子全而歸之니 曾子臨終而啓手足은 爲是故也라 非有得於道면 能如是乎아 范氏曰 身體도 猶不可虧也온 況虧其行하여 以辱其親乎아
계(啓)는 여는 것이다. 증자(曾子)는 평소에 ‘신체는 부모(父母)에게 받았으니, 감히 훼상할 수 없다.’하였다. 그러므로 이때에 제자(弟子)들로 하여금 이불을 걷고 자신의 손과 발을 보게 한 것이다. 시(詩)는 〈소민편(小旻篇)〉이다. 전전(戰戰)은 두려워하는 것이고, 긍긍(兢兢)은 경계하고 삼가는 것이다. 못에 임한 듯이 한다 함은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것이고, 얼음을 밟는 듯이 한다 함은 빠질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증자(曾子)는 온전히 보전한 것을 문인(門人)들에게 보여주고, 그 보전함의 어려움이 이와 같아서 장차 죽음에 이른 뒤에야 훼상함을 면할 수 있음을 알았다고 말씀한 것이다. 소자(小子)는 문인(門人)이다. 말을 마치고 다시 <문인들을> 부른 것은 반복하고 간곡히 당부하는 뜻을 극진히 하신 것이니, 그 경계함이 깊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군자(君子)의 죽음을 종(終)이라 하고, 소인(小人)의 죽음을 사(死)라 한다. 군자(君子)는 몸을 보전하고 죽는 것을 자신의 일을 마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증자(曾子)께서 몸을 온전히 보전하고 돌아감으로써 면함을 삼은 것이다.”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부모(父母)가 이 몸을 온전히 낳아 주셨으니, 자식이 온전히 보전하고 돌아가야 한다. 증자(曾子)께서 임종시(臨終時)에 이불을 걷고 손과 발을 보여 주심은 이 때문이었다. 도(道)에 터득함이 있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신체(身體)도 오히려 훼손할 수 없는데, 하물며 그 행실을 훼손하여 어버이를 욕되게 할 수 있겠는가?”
▣ 제4장(第四章)
曾子有疾이어시늘 孟敬子問之러니
증자(曾子)가 병환이 있자, 맹경자(孟敬子)가 문병(問病)을 왔다.
孟敬子는 魯大夫仲孫氏니 名捷이라 問之者는 問其疾也라
맹경자(孟敬子)는 노(魯)나라 대부(大夫) 중손씨(仲孫氏)이니, 이름은 첩(捷)이다. 문(問)은 문병이다.
曾子言曰 鳥之將死에 其鳴也哀하고 人之將死에 其言也善이니라
증자(曾子)가 말씀하였다. “새가 장차 죽을 때에는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장차 죽을 때에는 그 말이 착한 법이다.”
言은 自言也라 鳥畏死라 故로 鳴哀하고 人窮反本이라 故로 言善이라 此는 曾子之謙辭니 欲敬子知其所言之善而識(지) 之也라
언(言)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새는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은 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가므로 말이 착한 것이다. 이는 증자(曾子)의 겸사이니, 경자(敬子)로 하여금 그 말하는 것이 선(善)한 것임을 알아서 기억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君子所貴乎道者三이니 動容貌에 斯遠暴慢矣며 正顔色에 斯近信矣며 出辭氣에 斯遠鄙倍矣니 豆之事則有司存이니라
군자(君子)가 귀중히 여기는 도(道)가 세 가지 있으니, “용모를 움직일 때에는 사나움과 태만함을 멀리하며, 얼굴빛을 바룰 때에는 성실(誠實)함에 가깝게 하며, 말과 소리를 낼 때에는 비루 함과 도리에 위배되는 것을 멀리하여야 한다. 제기(祭器)를 다루는 등의 소소한 일로 말하면 유사(有司)[담당자] 가 있어 하는 것이다.”
貴는 猶重也라 容貌는 擧一身而言이라 暴는 粗 也요 慢은 放肆也라 信은 實也니 正顔色而近信이면 則非色莊也라 辭는 言語요 氣는 聲氣也라 鄙는 凡陋也요 倍는 與背同하니 謂背理也라 은 竹豆요 豆는 木豆라 言道雖無所不在나 然이나 君子所重者는 在此三事而已라 是皆修身之要요 爲政之本이니 學者所當操存省察하여 而不可有造次顚沛之違者也라 若夫 豆之事는 器數之末이니 道之全體固無不該나 然이나 其分則有司之守요 而非君子之所重矣라 程子曰 動容貌는 擧一身而言也니 周旋中禮면 暴慢斯遠矣요 正顔色이면 則不妄이니 斯近信矣요 出辭氣에 正由中出이면 斯遠鄙倍라 三者는 正身而不外求라 故로 曰 豆之事則有司存이라하시니라 尹氏曰 養於中이면 則見於外니 曾子蓋以修己爲爲政之本이니 若乃器用事物之細는 則有司存焉이니라
귀(貴)는 중(重)[귀중]과 같다. 용모(容貌)는 온몸을 들어 말한 것이다. 포(暴)는 거칠고 사나운 것이다. 만(慢)은 방사(放肆)한 것이다. 신(信)은 성실함이니, 안색을 바룰 때에 성실함에 가깝게 한다면, 이는 얼굴빛만 장엄한 체하는 것이 아니다. 사(辭)는 언어(言語)이고 기(氣)는 소리와 숨이다. 비(鄙)는 비루한 것이고, 패(倍)는 배(背)와 같으니, 이치에 위배됨을 말한다. 변( )은 대나무로 만든 제기이고, 두(豆)는 나무로 만든 제기이다. 도(道)는 있지 않은 데가 없으나, 군자(君子)가 귀중히 여기는 것은 이 세 가지 일에 있을 뿐이다. 이는 모두 수신(修身)하는 요점이요, 정치하는 근본이니,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조존(操存)하고 성찰(省察)하여 경황중〔造次〕이거나, 위급한 상황〔顚沛〕이라도 떠나서는 안 된다. 변두( 豆)의 일로 말하면 기수(器數)의 지엽적인 것이니, 도(道)의 전체(全體)는 진실로 포함되지 않음이 없으나, 그러나 그 직분은 유사(有司)의 책임이고, 군자(君子)[위정자] 가 귀중히 여기는 바가 아님을 말씀한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용모를 움직인다 함은 온몸을 들어 말한 것이니, 주선(周旋)[행동] 함에 예(禮)에 맞으면 포만(暴慢)이 멀어질 것이다. 얼굴빛을 바루면 망령되지 않으니, 성실함에 가까워질 것이다. 말과 소리를 낼 때에 바로 중심(中心)에서 나오면 비패(鄙背)함이 멀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변두( 豆)의 일은 담당자가 있다고 말씀한 것이다.”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심중(心中)에 함양(涵養)하면 외모(外貌)에 드러나는 것이다. 증자(曾子)는 수신(修身)으로써 정치(政治)하는 근본(根本)을 삼았으니, 변두( 豆) 등의 기물〔器用〕과 사물의 소소한 것으로 말하면 이것을 맡은 담당자가 따로 있는 것이다.”
▣ 제5장(第五章)
曾子曰 以能問於不能하며 以多問於寡하며 有若無하며 實若虛하며 犯而不校를 昔者에 吾友嘗從事於斯矣러니라
증자(曾子)가 말씀하였다.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물으며, 학식이 많으면서 적은 이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여기고, 가득해도 빈 것처럼 여기며,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여도 계교(計較)[따지지] 하지 않는 것을, 옛적에 내 벗이 일찍이 이 일에 종사하였었다.”
校는 計校也라 友는 馬氏以爲顔淵이라하니 是也라 顔子之心은 惟知義理之無窮하고 不見物我之有間이라 故로 能如此라
○ 謝氏曰 不知有餘在己, 不足在人하며 不必得爲在己, 失爲在人하여 非幾於無我者면 不能也니라
교(校)는 계교(計較)이다. 우(友)는 마씨(馬氏)가 안연(顔淵)이라 하였는데, 그 말이 옳다. 안자(顔子)의 마음은 오직 의리(義理)의 무궁(無窮)함만을 알고, 남과 나 사이에 간격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능히 이와 같았던 것이다.
○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유여(有餘)함이 자신에게 있고 부족함이 남에게 있음을 알지 못하며, 반드시 득(得)[잘함]이 자신에게 있고 실(失)[잘못]이 남에게 있다고 여기지 않아서, 무아(無我)의 경지에 가까운 자가 아니고는 능하지 못하다.
▣ 제6장(第六章)
曾子曰 可以託六尺之孤하며 可以寄百里之命이요 臨大節而不可奪也면 君子人與아 君子人也니라
증자(曾子)가 말씀하였다. “육척(六尺)의 어린 임금을 맡길 만하고, 백리(百里)[제후국(諸侯國)] 의 명(命)을 부탁할 만하며, 대절(大節)에 임해서 <그 절개를> 빼앗을 수 없다면, 군자(君子)다운 사람인가? 군자(君子)다운 사람이다.”
其才可以輔幼君하고 攝國政하며 其節이 至於死生之際而不可奪이면 可謂君子矣라 與는 疑辭요 也는 決辭니 設爲問答은 所以深著其必然也니라
○ 程子曰 節操如是면 可謂君子矣니라
그 재주가 어린 임금을 보필하고 국정(國政)을 대행(代行)할 만하며, 그 절개가 죽고 사는 즈음에 이르러서도 빼앗을 수 없다면, 군자(君子)라고 이를 수 있다. 여(與)는 의심하는 말이고, 야(也)는 결단하는 말이니, 가설(假設)하여 문답(問答)하는 형식을 한 것은 반드시 그러함을 깊이 나타낸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절개(節介)와 지조(志操)가 이와 같으면 군자(君子)라고 할 만하다.”
▣ 제7장(第七章)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니 任重而道遠이니라
증자(曾子)가 말씀하였다.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弘은 寬廣也요 毅는 强忍也라 非弘이면 不能勝其重이요 非毅면 無以致其遠이니라
홍(弘)은 너그럽고 넓은 것이다. 의(毅)는 강(强)하고 참는 것이다. 넓은 도량이 아니면 중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굳센 의지가 아니면 먼 곳에 이를 수 없다.
仁以爲己任이니 不亦重乎아 死而後已니 不亦遠乎아
군자(君子)는 인(仁)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삼으니 막중하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멀지 않은가?”
仁者는 人心之全德이니 而必欲以身體而力行之면 可謂重矣요 一息尙存이라도 此志不容少懈면 可謂遠矣니라
○ 程子曰 弘而不毅면 則無規矩而難立이요 毅而不弘이면 則隘陋而無以居之니라 又曰弘大剛毅然後에 能勝重任而遠到니라
인(仁)이란 사람 마음의 온전한 덕(德)이니, 반드시 몸으로써 인(仁)을 체행(體行)하여 힘써 행하고자 한다면 책임이 막중하다고 할 만하다. 한 숨이 아직 <끊기지 않고>남아 있는 동안에는 이 뜻이 조금이라도 해이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멀다고 할 만하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너그럽기만 하고 굳세지 못하면 규구(規矩)가 없어 서기 어렵고, 굳세기만 하고 너그럽지 못하면 좁고 비루 하여 <인(仁)에> 처할 수가 없다.”
또 말씀하였다. “너그럽고 굳센 뒤에야 능히 무거운 책임을 감내하고 먼 곳에 이를 수 있다.”
▣ 제8장(第八章)
子曰 興於詩하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시(詩)에서 <착한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흥기(興起)시키며,
興은 起也라 詩本性情하니 有邪有正하여 其爲言이 旣易知요 而吟詠之間에 抑揚反覆하여 其感人이 又易入이라 故로 學者之初에 所以興起其好善惡惡之心而不能自已者는 必於此而得之니라
흥(興)은 흥기(興起)하는 것이다. 시(詩)는 성정(性情)에 근본 하여 사(邪)도 있고 정(正)도 있는데, 그 말한 것이 이미 알기 쉽고, 읊는 사이에 억양(抑揚)과 반복(反覆)이 있어 사람을 감동시킴이 또 쉬우므로, 배우는 초기에 착함을 좋아하고 악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흥기 하여 스스로 그치지 못하는 것은, 반드시 이 시(詩)에서 얻게 된다.
立於禮하며
예(禮)에 서며,
禮는 以恭敬辭遜爲本하고 而有節文度數之詳하여 可以固人肌膚之會, 筋骸之束이라 故로 學者之中에 所以能卓然自立而不爲事物之所搖奪者는 必於此而得之니라
예(禮)는 공경하고 사양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고, 절문(節文)과 도수(度數)의 상세함이 있어 사람의 기부(肌膚)의 모임과 근해(筋骸)의 묶임을 견고하게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배우는 중간에 능히 탁연(卓然)히 자립하여 사물(事物)에 흔들리고 빼앗김을 당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이 예(禮)에서 얻게 된다.
成於樂이니라
악(樂)에서 완성(完成)한다.”
樂有五聲十二律하니 更唱迭和하여 以爲歌舞八音之節하니 可以養人之性情하여 而蕩滌其邪穢하며 消融其査滓라 故로 學者之終에 所以至於義精仁熟而自和順於道德者는 必於此而得之니 是學之成也니라
○ 按內則컨대 十歲에 學幼儀하고 十三에 學樂誦詩하고 二十而後에 學禮하니 則此三者는 非小學傳授之次요 乃大學終身所得之難易先後淺深也니라 程子曰 天下之英才가 不爲少矣로되 特以道學不明이라 故로 不得有所成就니라 夫古人之詩는 如今之歌曲하여 雖閭里童稚라도 皆習聞之而知其說이라 故로 能興起러니 今엔 雖老師宿儒라도 尙不能曉其義온 況學者乎아 是不得興於詩也니라 古人은 自灑掃應對로 以至冠昏喪祭에 莫不有禮러니 今皆廢壞라 是以로 人倫不明하고 治家無法하니 是不得立於禮也니라 古人之樂은 聲音所以養其耳요 采色所以養其目이요 歌詠所以養其性情이요 舞蹈所以養其血脈이러니 今皆無之하니 是不得成於樂也니라 是以로 古之成材也는 易하고 今之成材也는 難이니라
악(樂)에는 오성(五聲)과 십이율(十二律)이 있는데, 번갈아 선창(先唱)하고 번갈아 화답하여 가무(歌舞)와 팔음(八音)의 절도(節度)를 삼는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정(性情)을 함양하며, 간사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내고, 찌꺼기를 말끔히 정화시킨다. 그러므로 배우는 종기(終期)에 의(義)가 정(精)해지고, 인(仁)이 완숙해짐에 이르러 자연히 도덕(道德)에 화순(和順)해지는 것은, 반드시 이 악(樂)에서 얻게 되니, 이는 학문의 완성이다.
○ 〈내칙(內則)〉을 상고해보면 ‘10세에 어린이의 거동을 배우고, 13세에 음악(音樂)을 배우고 시(詩)를 외우며, 20세가 된 뒤에야 예(禮)를 배운다.’하였으니, 이 장(章)의 세 가지는 소학(小學)에서 공부하는 차례가 아니고, 곧 대학(大學)에서 종신토록 행하여 얻는 바의 난이(難易)와 선후(先後)와 천심(淺深)을 말씀한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천하(天下)에 영재(英才)가 적지 않으나 다만 도학(道學)이 밝지 못하기 때문에 성취한 바가 있지 못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고시(古詩)를 지금 사람들의 가곡(歌曲)처럼 외어 마을의 어린아이들까지도 모두 익히 들어서 그 가사(歌詞)를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능히 선(善)한 마음을 흥기할 수 있었던 것인데, 지금은 노사(老師)와 숙유(宿儒)들도 오히려 고시(古詩)의 뜻을 깨닫지 못하니, 하물며 배우는 자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는 시(詩)에 흥기(興起)하지 못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물을 뿌리고 청소하며 응대(應對)하는 것으로부터 관혼상제(冠婚喪祭)에 이르기까지 모두 예(禮)가 있었는데, 지금은 예(禮)가 모두 폐기되었다. 이 때문에 인륜(人倫)이 밝지 못하고 집을 다스림에 법도(法度)가 없는 것이니, 이는 예(禮)에 서지 못하는 것이다.
옛사람의 음악은, 소리는 귀를 기르고, 채색은 눈을 기르며, 노래와 읊는 것은 성정(性情)을 함양하고, 무도(舞蹈)하는 것은 혈맥을 기르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모두 없어졌으니 이는 악(樂)에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옛날에 인재를 이루기는 쉬웠는데, 지금 인재를 이루기는 어려운 것이다.”
▣ 제9장(第九章)
子曰 民은 可使由之요 不可使知之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은 <도리(道理)에>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원리(原理)를> 알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民은 可使之由於是理之當然이요 而不能使之知其所以然也라
○ 程子曰 聖人設敎에 非不欲人家喩而戶曉也언마는 然이나 不能使之知요 但能使之由之爾라 若曰聖人不使民知라하면 則是後世朝四暮三之術也니 豈聖人之心乎아
백성은 당연한 도리(道理)에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이치의 소이연(所以然)을 알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성인(聖人)이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사람에게 집집마다 깨우쳐 주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진리를 모두 알게 할 수는 없고, 다만 능히 따르게 할뿐이다. 만일 ‘성인(聖人)이 백성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한다면, 이는 후세에 조사모삼(朝四暮三)의 속임수를 쓰는 술책이니, 어찌 성인(聖人)의 마음이라 하겠는가?”
▣ 제10장(第十章)
子曰 好勇疾貧이 亂也요 人而不仁을 疾之已甚이 亂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용맹을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하는 것도 난(亂)을 일으키고, 사람으로서 인(仁)하지 못한 것을 너무 심히 미워하는 것도 난(亂)을 일으킨다.”
好勇而不安分이면 則必作亂이요 惡不仁之人하여 而使之無所容이면 則必致亂이니 二者之心은 善惡雖殊나 然이나 其生亂則一也니라
용맹을 좋아하고 분수를 편안히 여기지 못하면 반드시 난(亂)을 일으키며, 인(仁)하지 못한 사람을 미워하여 용납할 곳이 없게 하면 반드시 난(亂)을 일으키니, 이 두 가지의 마음은 선악(善惡)이 비록 다르나 난(亂)을 일으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 제11장(第十一章)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라도 使驕且吝이면 其餘는 不足觀也已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주공(周公)과 같은 아름다운 재예(才藝)를 가지고 있더라도 가사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
才美는 謂智能技藝之美라 驕는 矜 요 吝은 鄙嗇也라
○ 程子曰 此는 甚言驕吝之不可也라 蓋有周公之德이면 則自無驕吝이요 若但有周公之才而驕吝焉이면 亦不足觀矣니라 又曰 驕는 氣盈이요 吝은 氣 이니라 愚謂 驕吝은 雖有盈 之殊나 然이나 其勢常相因하니 蓋驕者는 吝之枝葉이요 吝者는 驕之本根이라 故로 嘗驗之天下之人컨대 未有驕而不吝하고 吝而不驕者也니라
재미(才美)는 지능과 기예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교(驕)는 자랑하는 것이고, 인(吝)은 인색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이는 교만하고 인색함이 불가함을 심히 말씀한 것이다. 주공(周公)과 같은 덕(德)이 있으면 자연 교만하고 인색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주공(周公)과 같은 재예가 있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또한 족히 볼 것이 없다.”
또 말씀하였다. “교(驕)는 기운이 차 있는 것이요, 인(吝)은 기운이 부족해 있는 것이다.”
나는 생각하건대, 교린(驕吝)은 비록 기운이 차고 부족한 차이가 있으나, 그 형세는 항상 서로 연관된다. 교만은 인색함의 지엽이고, 인색은 교만함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천하(天下) 사람들에게 징험 해보니, 교만하고서 인색하지 않은 자가 없고, 인색하고서 교만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 제12장(第十二章)
子曰 三年學에 不至[志]於穀을 不易(이) 得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삼년(三年)을 배우고서도 녹봉〔祿〕 에 뜻을 두지 않는 자를 쉽게 얻지 못하겠다.”
穀은 祿也라 至는 疑當作志라 爲學之久而不求祿은 如此之人을 不易得也라
○ 楊氏曰 雖子張之賢으로도 猶以干祿爲問하니 況其下者乎아 然則三年學而不至於穀을 宜不易得也니라
곡(穀)은 녹봉이다. 지(至)는 마땅히 지자(志字)가 되어야 할 듯하다. 학문을 오래하고서 녹봉을 구하지 않는 이러한 사람을 쉽게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자장(子張)의 어짊으로도 오히려 녹봉을 구하는 것을 물었으니, 하물며 그보다 못한 자에 있어서야! 그렇다면 3년을 배우고도 녹봉에 뜻을 두지 않는 자를 쉽게 얻지 못함이 마땅하다.”
▣ 제13장(第十三章)
子曰 篤信好學하며 守死善道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독실하게 믿으면서도 학문을 좋아하며, 죽음으로써 지키면서도 도(道)를 잘해야 한다.”
篤은 厚而力也라 不篤信이면 則不能好學이라 然이나 篤信而不好學이면 則所信이 或非其正이요 不守死면 則不能以善其道라 然이나 守死而不足以善其道면 則亦徒死而已라 蓋守死者는 篤信之效요 善道者는 好學之功이니라
독(篤)은 독실하고 힘쓰는 것이다. 독실하게 믿지 않으면 학문을 좋아하지 못한다. 그러나 독실하게 믿기만 하고 학문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믿는 바가 혹 정도(正道)가 아닐 수 있다. 죽음으로써 지키지 않으면 도(道)를 잘하지 못한다. 그러나 죽음으로써 지키기만 하고 도(道)를 잘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쓸데없는 죽음이 될 뿐이다. 죽음으로써 지키는 것은 독실히 믿는 공효(功效)요, 도(道)를 잘하는 것은 학문을 좋아한 공효(功效)이다.
危邦不入하고 亂邦不居하며 天下有道則見(현) 하고 無道則隱이니라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으며, 천하(天下)에 도(道)가 있으면 나타나 벼슬하고, 도(道)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
君子見危授命이니 則仕危邦者는 無可去之義어니와 在外則不入이 可也라 亂邦은 未危而刑政紀綱紊矣라 故로 潔其身而去之라 天下는 擧一世而言이라 無道則隱其身而不見也니 此는 惟篤信好學하고 守死善道者라야 能之니라
군자(君子)가 위태함을 보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니, 그렇다면 위태한 나라에서 벼슬하는 자는 떠날 수 있는 의(義)가 없다. 그러나 밖에 있을 경우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옳다. 난방(亂邦)이란 위태롭진 않아도 형정(刑政)과 기강(紀綱)이 문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몸을 깨끗이 하고 떠나는 것이다. 천하(天下)는 온 세상을 들어 말한 것이다. 도(道)가 없으면 자기 몸을 숨기고 나타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오직 독실하게 믿으면서도 학문을 좋아하고, 죽음으로써 지키면서도 도(道)를 잘하는 자만이 능히 할 수 있는 것이다.
邦有道에 貧且賤焉이 恥也며 邦無道에 富且貴焉이 恥也니라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에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에 부하고 귀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世治而無可行之道하고 世亂而無能守之節이면 碌碌庸人이라 不足以爲士矣니 可恥之甚也니라
○ 晁氏曰 有學有守而去就之義潔하고 出處之分明이니 然後에 爲君子之全德也니라
치세(治世)에 행할 만한 도(道)가 없고, 난세(亂世)에 능히 지킬 만한 절개(節介)가 없으면, 보잘것없는 용렬한 사람이다. 선비가 될 수 없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 조씨(晁氏)가 말하였다. “학문도 있고 지조도 있으면 거취(去就)의 의리가 깨끗하고, 출처(出處)의 분별이 명백한 뒤에야 군자(君子)의 온전한 덕(德)이 되는 것이다.”
▣ 제14장(第十四章)
子曰 不在其位하여는 不謀其政이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政事)를 도모하지 않아야 한다.”
程子曰 不在其位는 則不任其事也라 若君大夫問而告者는 則有矣니라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그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것은 그 일을 맡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인군(人君)과 대부(大夫)가 물으면 대답하는 경우는 있는 것이다.”
▣ 제15장(第十五章)
子曰 師摯之始에 關雎之亂이 洋洋乎盈耳哉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악사(樂師)인 지(摯)가 처음 벼슬할 때에 연주하던 관저(關雎)의 끝장 악곡(樂曲)이 아직까지도 양양(洋洋)하게 귀에 가득하구나!”
師摯는 魯樂師니 名摯也라 亂은 樂之卒章也니 史記曰 關雎之亂이 以爲風始라하니라 洋洋은 美盛意라 孔子自衛反魯而正樂하시니 適師摯在官之初라 故로 樂之美盛이 如此하니라
사지(師摯)는 노(魯)나라 악사(樂師)로 이름이 지(摯)이다. 난(亂)은 악(樂)의 끝장이다. 《사기(史記)》에 “관저(關雎)의 끝장은 〈국풍(國風)〉의 시작이 된다.” 하였다. 양양(洋洋)은 아름답고 성한 뜻이다. 공자(孔子)께서 위(衛)나라로부터 노(魯)나라에 돌아오시어 악(樂)을 바로잡으셨는데, 이때 마침 악사인 지(摯)가 악관(樂官)에 임명된 초기였다. 그러므로 악(樂)의 아름답고 성함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 제16장(第十六章)
子曰 狂而不直하며 而不愿하며 而不信을 吾不知之矣로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광(狂)이면서도 곧지 못하며, 무지(無知)하면서도 근후(謹厚)하지 못하며, 무능(無能)하면서도 신실(信實)하지 못한 사람을 나는 모르겠다.”
은 無知貌요 愿은 謹厚也라 은 無能貌라 吾不知之者는 甚絶之之辭니 亦不屑之敎誨也라
○ 蘇氏曰 天之生物에 氣質不齊하니 其中材以下는 有是德이면 則有是病이요 有是病이면 必有是德이라 故로 馬之蹄齧者는 必善走하고 其不善者는 必馴하나니 有是病而無是德이면 則天下之棄才也니라
동( )은 무지(無知)한 모양이다. 원(愿)은 근후(謹厚)한 것이다. 공공( )은 무능(無能)한 모양이다. 나는 모르겠다는 것은 심히 거절하는 말이니, 또한 좋게 여기지 않는 가르침인 것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하늘이 만물(萬物)을 낳음에 기질(氣質)이 일정치 않아 그 중재(中材) 이하는 이 덕(德)이 있으면 이 병통이 있고, 이 병통이 있으면 반드시 이 덕(德)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발로 차고 입으로 물고 하는 말은 반드시 잘 달리고, 잘 달리지 못하는 말은 반드시 순하다. 그런데 이러한 병통만 있고 이러한 덕(德)이 없다면 천하(天下)에 버림받을 재질이다.”
▣ 제17장(第十七章)
子曰 學如不及이요 猶恐失之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배움은 따라 가지 못할 듯이 하면서도 행여 때를 잃을까 두려워하여야 한다.”
言人之爲學이 旣如有所不及矣요 而其心猶 然하여 惟恐其或失之니 警學者當如是也라
○ 程子曰 學如不及이요 猶恐失之하여 不得放過니 才( ) 說姑待明日이면 便不可也니라
사람이 학문을 함에 있어서, 이미 따라 가지 못할 듯이 여기면서도 그 마음에 오히려 두려워하여 혹시라도 때를 잃을까 염려해야 함을 말한 것이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이처럼 해야 함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학문을 함에 따라 가지 못할 듯이 <부지런히> 하면서도 오히려 잃을까 두려워하여, 방과(放過)할 수 없는 것이니, 잠깐이라도 우선 내일을 기다린다고 말한다면 불가(不可)한 것이다.”
▣ 제18장(第十八章)
子曰 巍巍乎라 舜禹之有天下也而不與焉이여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위대하시다! 순(舜)임금과 우(禹)임금은 천하(天下)를 소유하시고도 그것을 관여치 않으셨으니.”
巍巍는 高大之貌요 不與는 猶言不相關이니 言其不以位爲樂也라
외외(巍巍)는 높고 큰 모양이다. 불여(不與)는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으니, 그 지위를 즐겁게 여기지 않았음을 말씀한 것이다.
▣ 제19장(第十九章)
子曰 大哉라 堯之爲君也여 巍巍乎唯天爲大어시늘 唯堯則之하시니 蕩蕩乎民無能名焉이로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위대하시다. 요(堯)의 임금노릇 하심이여! 높고 크다. 오직 저 하늘이 가장 크거늘, 오직 요(堯)임금만이 그와 같으셨으니, <그 공덕(功德)이> 넓고 넓어 백성들이 무어라 형용하지 못하는구나.
唯는 猶獨也요 則은 猶準也라 蕩蕩은 廣遠之稱也라 言物之高大莫有過於天者어늘 而獨堯之德이 能與之準이라 故로 其德之廣遠이 亦如天之不可以言語形容也라
유(唯)는 독(獨)[홀로]과 같다. 칙(則)은 준(準)[같음] 과 같다. 탕탕(蕩蕩)은 넓고 원대한 것을 지칭한다. 물건 중에 높고 큰 것은 하늘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요(堯)임금의 덕(德)만이 능히 하늘과 더불어 평준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 덕(德)의 넓고 원대함이 또한 하늘과 같아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과 같음을 말씀한 것이다.
巍巍乎其有成功也여 煥乎其有文章이여
높고 높은 그 성공이여! 찬란한 그 문장이여!”
成功은 事業也라 煥은 光明之貌라 文章은 禮樂法度也라 堯之德은 不可名이요 其可見者此爾니라
○ 尹氏曰 天道之大 無爲而成이어늘 唯堯則之하여 以治天下라 故로 民無得而名焉이요 所可名者는 其功業文章이 巍然煥然而已니라
성공(成功)은 사업(事業)이다. 환(煥)은 찬란히 빛나는 모양이다. 문장(文章)은 예악(禮樂)과 법도(法度)이다. 요(堯)임금의 덕(德)은 형용할 수 없고, 볼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천도(天道)의 큼은 무위(無爲)이면서 이루어지는데, 오직 요(堯)임금만이 이것을 본받아서 천하(天下)를 다스렸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그 덕(德)을 형용[이름]할 수 없고, 형용할 수 있는 것은 그 사업과 문장이 위대하고 찬란할 뿐인 것이다.”
▣ 제20장(第二十章)
舜有臣五人而天下治하니라
순(舜)임금이 어진 신하 다섯 사람을 두심에 천하(天下)가 다스려졌다.
五人은 禹稷契皐陶伯益이라
다섯 사람은 우(禹)·직(稷)·설(契)·고요(皐陶)·백익(伯益) 이다.
武王曰 予有亂臣十人호라
무왕(武王)이 말씀하셨다. “나는 다스리는 신하 열 사람을 두었노라.”
書泰誓之辭라 馬氏曰 亂은 治也라 十人은 謂周公旦, 召公奭, 太公望, 畢公, 榮公, 太顚, 夭, 散宜生, 南宮适이요 其一人은 謂文母라 劉侍讀은 以爲子無臣母之義하니 蓋邑姜也니 九人은 治外하고 邑姜은 治內라 或曰 亂은 本作 하니 古治字也라
이것은 《서경(書經)》〈태서편(泰書篇)〉의 말이다.
마씨(馬氏)가 말하였다. “난(亂)은 다스림이다. 열 사람은 주공단(周公旦)·소공석(召公奭)·태공망(太公望)·필공(畢公)·영공(榮公)·태전(太顚)·굉요( 夭)·산의생(散宜生)·남궁괄(南宮适)이요, 그 한 사람은 문모(文母)[문왕(文王)의 비(妃)] 이다.”
유시독(劉侍讀)이 말하였다.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신하로 삼는 의리(義理)가 없으니, 아마도 읍강(邑姜)[무왕(武王)의 비(妃)] 일 것이다. 아홉 사람은 밖을 다스리고 읍강(邑姜)은 안을 다스렸다.”
혹자는 말하였다. “난(亂)은 본래 치자( 字)이니, 치자(治字)의 고자(古字)이다.”
孔子曰 才難이 不其然乎아 唐虞之際가 於斯爲盛하나 有婦人焉이라 九人而已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인재 얻기가 어렵다 한 말이 맞는 말이 아니겠는가? 당우(唐虞)의 즈음만이 주(周)나라보다 성하였다. 그런데도 열 사람 중에 부인이 들어 있으니, <남자(男子)는> 아홉 사람일뿐이다.
稱孔子者는 上係武王하니 君臣之際라 記者謹之니라 才難은 蓋古語而孔子然之也라 才者는 德之用也라 唐虞는 堯舜有天下之號라 際는 交會之間이라 言周室人才之多가 惟唐虞之際에 乃盛於此요 降自夏商으로는 皆不能及이라 然이나 猶但有此數人爾니 是才之難得也라
공자(孔子)라 칭함은 위에 무왕(武王) 말씀이 있고, <그 뒤에 공자(孔子)의 말씀을 붙였으므로> 군신간(君臣間)이라서 이것을 기록하는 자가 삼간 것이다. 인재를 얻기가 어렵다〔才難〕 함은 아마도 옛말인데, 공자(孔子)께서 그 말을 옳게 여기신 듯하다. 재(才)는 덕(德)의 용(用)이다. 당우(唐虞)는 요(堯)·순(舜)임금이 천하(天下)를 소유한 칭호이다. 제(際)는 서로 만나는 사이를 말한 것이다. 주(周)나라 왕실에 인재가 많아, 오직 당우(唐虞)의 즈음만이 주(周)나라보다 성하였고, 그후 하(夏)·상(商)으로부터는 모두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다만 이 몇 사람이 있을 뿐이니, 이는 인재 얻기가 어려운 것이다.
三分天下에 有其二하사 以服事殷하시니 周之德은 其可謂至德也已矣로다
문왕(文王)은 천하(天下)를 삼분(三分)하여 그 둘을 소유하시고도 복종하여 은(殷)나라를 섬기셨으니,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덕(德)은 지극한 덕(德)이라 말할 만하다.”
春秋傳曰 文王率商之畔國하여 以事紂하시니 蓋天下에 歸文王者六州니 荊梁雍豫徐揚也요 惟靑 冀尙屬紂耳라 范氏曰 文王之德이 足以代商하여 天與之요 人歸之로되 乃不取而服事焉하니 所以爲至德也라 孔子因武王之言하여 而及文王之德하고 且與泰伯으로 皆以至德稱之하시니 其指微矣로다 或曰 宜斷三分以下하여 別以孔子曰起之하여 而自爲一章이니라
《춘추전(春秋傳)》에 “문왕(文王)이 상(商)나라를 배반한 나라를 거느리고 주왕(紂王)을 섬겼다. 천하(天下)에서 문왕(文王)에게 귀속한 주(州)가 여섯이니, 형주(荊州)·양주(梁州)·예주(豫州)·서주(徐州)·양주(揚州)이고, 오직 청주(靑州)·연주( 州)·기주(冀州)만이 아직도 주왕(紂王)에게 소속해 있었다.” 하였다.
범씨(范氏)가 말하였다. “문왕(文王)의 덕(德)은 족히 상(商)을 대신할 만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이 주고 사람들이 귀의하는데도 마침내 취하지 않고 복종하여 섬겼으니, 이 때문에 지극한 덕(德)이 되는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무왕(武王)의 말씀을 인하여 문왕(文王)의 덕(德)을 언급하셨고, 또 태백(泰伯)과 함께 모두 지극한 덕(德)이라 칭하셨으니, 그 뜻이 은미 하다.”
혹자는 말하였다. “마땅히 삼분(三分) 이하를 끊어 따로 공자왈(孔子曰)로 시작하여 한 장(章)을 만들어야 한다.”
▣ 제21장(第二十一章)
子曰 禹는 吾無間然矣로다 菲飮食而致孝乎鬼神하시며 惡衣服而致美乎 冕하시며 卑宮室而盡力乎溝 하시니 禹는 吾無間然矣로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우(禹)임금은 내 비난할 데가 없으시다. 평소의 음식(飮食)은 간략하게 하시면서도 <제사(祭祀)에는> 귀신(鬼神)에게 효도(孝道)를 다하시고, 의복(衣服)은 검소하게 하시면서도 불( )·면(冕)의 제복(祭服)에는 아름다움을 다하시고, 궁실(宮室)은 낮게 하시면서도 <백성을 위한> 치수(治水) 사업에는 힘을 다하셨으니, 우(禹)임금은 내 비난할 데가 없으시다.”
間은 隙也니 謂指其 隙而非議之也라 菲는 薄也라 致孝鬼神은 謂享祀 潔이라 衣服은 常服이라 은 蔽膝也니 以韋爲之요 冕은 冠也니 皆祭服也라 溝 은 田間水道니 以正疆界하고 備旱 者也라 或豊或儉이 各適其宜하니 所以無 隙之可議也라 故로 再言以深美之하시니라
○ 楊氏曰 薄於自奉하되 而所勤者는 民之事요 所致飾者는 宗廟朝廷之禮니 所謂有天下而不與也라 夫何間然之有리오
간(間)은 틈이니, 그 틈을 지적하여 비난하는 것이다. 비(菲)는 박(薄)[간략]한 것이다. 귀신(鬼神)에게 효도(孝道)를 다한다 함은 선조(先祖)에게 제사 지낼 때에 풍부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의복이란 평상복(平常服)이다. 불( )은 무릎을 가리우는 것인데, 가죽으로 만들며, 면(冕)은 관(冠)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 제복(祭服)이다. 구혁(溝 )은 전답(田畓) 사이의 물길〔水道〕이니, 경계를 바르게 하고 가뭄과 장마를 대비한 것이다. 혹 풍부하게 하기도 하고, 혹 검소하게 하기도 하여, 각각 그 마땅함에 맞게 하였으니, 이 때문에 비난할 만한 틈[흠] 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번 말씀하시어 깊이 찬미(贊美)한 것이다.
○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자기를 받드는 데는 간소하게 하면서 부지런히 한 것은 백성을 위한 일이었고, 꾸밈을 지극히 한 것은 종묘(宗廟)와 조정(朝廷)의 예(禮)였으니, 이른바 천하(天下)를 소유하고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찌 흠잡아 비난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논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論語 名句 300 - 上 (0) | 2021.01.02 |
---|---|
論語名句 300 (0) | 2020.12.31 |
八佾 20~26篇 (0) | 2018.04.25 |
孔子의 名言 (0) | 2018.02.16 |
논어 명구 100선 (0) | 2017.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