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거시기한 곡조

甘冥堂 2019. 11. 16. 09:54

한참을 앉아 계시다가 "이제 집에 가야지"하고 지팡이를 찾으시는 할머니.

여태 앉아 계시던 곳이 할머니 집이라는 걸 잊어버린 것이다.


바지 뒷주머니에 지갑을 넣어두고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난리를 쳤다.

어제 들렸던 서실 선생에게,

또 차를 태워다 준 동학에게 전화를 걸어 행방을 찾다가

할 수 없이 카드회사에 분실신고를 했다.


저녁모임에 나가야 하는데

지갑이 없으니 교통카드도 돈도 없다.

아들이 준 용돈으로 시내를 나가는데, 

전화가 온다. 지갑을 찾았다는 연락이다.

어제 입었던 바지 뒷주머니에 있더라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통을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이렇게 정신이 없단 말인가?


모임에서도 아무 말도 아니하고 멍하니 앉았다가 돌아왔다.

하기야 오전에 읽은 게 지금까지 머리에 남아있을 리도 없고

돌아서면 잃어버리는데, 공부가 뭔 놈의 공부냐?

시간만 때우다가 전철을 타고 오면서도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낙엽은 떨어져

찬바람 써늘한데

움추린 어깨 위로 하현달이 기운다.


내 나이 언제 벌써 여기까지 왔는지

곡조가 상당히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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