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八風吹不動

甘冥堂 2019. 11. 15. 06:12

동파지림東坡志林에

 

동파東坡 소식蘇軾은 일생 동안 선사들과 빈번히 교류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의기가 통했던 인물이 불인선사佛印禪師였습니다.

 

소동파의 스승인 동시에 벗이기도 했던 불인선사는

북송 시기의 유명한 승려로서 이름이 요원了元이고 자는 각로覺老였습니다.

 

소식은 호주湖州에 있을 때 처음 불인선사를 알게 되었는데

나중에 황주黃州로 좌천된 뒤 대량의 불교 전적을 열람하기 시작하면서

대사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늘 차를 즐기며 도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이를 통해 산림에 적지 않은 공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영감을 받은 소식이 위의 시 한 수를 지어 불인선사에게 보냈습니다.

 

稽首天中天 (계수천중천)  하늘 중 하늘에게 머리 숙여 절하오니

毫光照大千 (호광조대천)  한줄기 빛으로 천하를 비추는 이

八風吹不動 (팔풍취부동)  팔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端坐紫金蓮 (단좌자금련)  자금련에 단정히 앉아 계시네

 


부처님께 절을 올리오니

백호광명을 대천세계에 두루 비추시고

여덟가지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해 주시어

단정히 앉은 부처님처럼 되게 해 주소서.

 

(稽:상고할 계. 稽首: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함. 天中天:부처님

毫:가는털 호. 호광:백호광명 의 준말. 부처님 미간에서 비취는 지혜의 빛.

吹:불 취 (바람이 불다). 紫金蓮:불상을 뜻한다)

 

 


이 시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소동파와 선사가 함께 마주 앉아 좌선을 하고 있었는데, 소동파는 문득 깨달음이 있어,

선사에게 '내가 무엇으로 보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불인선사는 주저없이 '장엄한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소동파는 이에 아주 만족을 했는데,

이번엔 선사가 소동파에게 '나는 어떻게 보입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소동파도 주저없이 '쌓여진 소똥으로 보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불인선사는 미소를 지으며 '아미타불 !'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소동파는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의 여동생이 오빠를 맞이하면서 '오빠, 오늘 무슨 일로 그렇게 기쁘세요?'라고 물으니,

내가 항상 불인선사와의 담론에서 당했는데, 오늘은 내가 이겨서 이렇게 기분이 좋다.' 하면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여동생에게 해 줍니다.

 

오빠의 이야기를 듣고난 여동생은,

불인선사는 사대 육근이 청정하고 마음이 청정하니 보이는 것마다 청정한 부처님으로 보였는데,

오빠는 승부욕이 강하고 질투심이 강하며 심신이 청정하지 못한 것이 쌓여진 소똥과 같으니,

그렇게 훌륭한 스님도 소똥으로 볼 수 밖에는 없었으니,

오늘이 오빠가 가장 처참한 날 같네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소동파는 동생의 말에 아무 대꾸도 못하고, 더욱 신심을 내어서 부지런히 정진하였는데,

어느날 집에서 좌선을 하다가 또 어떤 경계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위의 시를 써 書童에게 일렀습니다.

 

'강 건너 금산사에 가서 불인선사에게 이 서신을 전해드리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었다가 돌아와서 나에게 알려달라.'

소동파는 "선사께서 이번에는 온갖 아름다운 언어로 나를 칭찬하실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서동이 돌아와서 건네주는 선사의 회신을 열어보니, 단지

'방귀 뀌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라고 써있었습니다.

 

소동파는 화가 대단히 많이 났습니다.

"칭찬은 못해 줄 망정 모욕이라니, 내가 당장 가서 따져야 겠다."며 즉시 강을 건너 금산사에 갔습니다.

 

빙긋이 웃으며 맞이하는 불인선사에게

'나의 게송에 어디가 잘못되었다고, 방귀 뀌는 소리라며 모욕을 주십니까?'

하고 잡아먹을 듯이 대들었습니다,

 

불인선사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八風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방귀 뀐다는 소리에 강을 건너 오셨군요.' 라고 대답했답니다.

 

소동파는 바로 알아 듣고 얼굴을 들지 못했죠.(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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