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
공자는 말년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제자인 자공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련다.” 뜻밖의 말을 듣고 자공이 여쭈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면, 저희가 어떻게 도를 이어받아 전하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러고서 공자는 말문을 닫았습니다. 병세는 점점 나빠졌고, 7일 후에 공자는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陽貨第十七<제19장>
子曰予欲無言하노라
子貢曰 子如不言이시면 則小子 何述焉이리잇고
子曰 天何言哉시리오 四時 行焉하며 百物이 生焉하나니 天何言哉시리오
후대의 사람들은 왈가왈부합니다.
공자가 유언을 남겼느냐, 아니면 유언을 남기지 않았느냐. 이걸 가지고 논쟁을 벌입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궁리해 보세요. 공자의 유언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공자의 침묵’이라고 말합니다. ‘침묵=유언’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공자가 침묵할 때 누가 말을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창밖의 새가 울었습니다. 처마 끝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위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와 함께 구름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달이 뜨고, 별이 반짝였습니다.
그렇게 온 우주가 숨을 쉬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공자의 유언은 ‘침묵’이 아니라 ‘침묵 너머’였습니다.
공자가 침묵할 때 한시도 쉬지 않고 쏟아진 ‘우주의 설법’이 바로 공자의 유언이었습니다.
#풍경 둘
허주 선사(1805~1888)는 전라도 순천 송광사에서 수행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강백(講伯)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깨달음을 이룬 후에는 말없이 진리를 드러내는 불언무위(不言無爲) 설법을 했습니다.
허주 선사의 침묵도 공자의 침묵과 마찬가지입니다.
침묵 자체가 설법은 아닙니다.
침묵할 때 드러나는 사람들의 꼼지락거리는 소리들, 하품하는 소리들, 세상의 소리들,
우주의 소리들이 허주의 설법입니다.
그 모든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불교의 눈으로 말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우리 안의 ‘주인공 자리’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리스도교의 눈으로 말하자면 천지창조가 빚어진 근원의 자리, 다시 말해 ‘신의 자리’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 세상에 거기로부터 나오지 않는 소리는 단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때는 지겨워서 꼼지락거리는 동작,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을 하는 일도 '부처의 나툼'입니다.
법상에 앉은 이가 침묵할 때, 처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은 '신의 화현(化現)'입니다.
그러니 어렵기만 할까요. 우주의 설법을 듣는 일 말입니다.
우선 침묵하고, 다음에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그럼 이 우주가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쏟아내는 거대한 법문과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공자가 침묵으로 설한 침묵 너머의 가르침 말입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말입니다.
먼저 침묵한 뒤, 내가 귀를 기울인다면 말입니다.
사람을 향해서든, 자연을 향해서든, 우주를 향해서든, 아니면 나 자신을 향해서든.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