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석 당시삼백수

069. 燕歌行幷序 / 高適

甘冥堂 2023. 1. 22. 15:07

069. 燕歌行幷序 / 高適

       연나라 노래와 그 서문

 

開元二十六年 (개원이십육년) 개원26,

客有從御史大夫張公 (객유종어사대부장공) 어사대부 장공을 따라

出塞而還者 (출새이환자) 변방에 갔다가 돌아온 객이 있었는데

燕歌行以示適 (작연가행이시적) 연가행을 지어 이것을 나에게 보였다.

感征戍之事, 因而和焉 (감정수지사 인이화언) 국경수비의 일에 감흥이 일어 이에 화답한다.

 

漢家煙塵在東北 (한가연진재동북) 한나라 동북쪽에서 봉화와 전진이 일어

漢將辭家破殘賊 (한장사가파잔적) 한나라 장수 집을 떠나 잔악한 적을 토벌한다.

男兒本自重横行 (남아본자중횡행) 남아는 본래 종횡으로 치달리는 것을 중시하는 법

天子非常賜顔色 (천자비상사안색) 천자께서 특별히 용안을 보여 주셨다.

摐金伐鼓下榆關 (창금벌고하유관) 징치고 북을 치며 유관으로 내려가니

旌旗逶迤碣石間 (정기위이갈석간) 깃발은 기다랗게 갈석산 사이에 이어졌다.

校尉羽書飛瀚海 (교위우서비한해) 교위는 급한 문서 드넓은 사막으로 날리고

單于獵火照狼山 (선우엽화조낭산) 흉노 선우의 사냥 횃불은 낭산을 비춘다.

山川蕭條極邊土 (산천소조극변토) 산천의 스산함이 변경을 덮을 적에

胡騎憑凌雜風雨 (호기방릉잡풍우) 비바람 몰아치듯 오랑캐 기병 쳐 들어온다.

戰士軍前半死生 (전사군전반사생) 전사들은 전쟁에서 반은 죽고 반은 사는데

美人帳下猶歌舞 (미인장하유가무) 미인은 장막 아래서 여전히 노래하고 춤췄다.

大漠窮秋塞草衰 (대막궁추새초쇠) 가을 끝난 넓은 사막에 요새의 풀은 시들고

孤城落日鬭兵稀 (고성낙일투병희) 외로운 성에 해 떨어지니 전투병들 거의 없다.

身當恩遇恒輕敵 (신당은우항경적) 몸은 은혜를 입었으나 항상 적을 가벼이 여겨

力盡闗山未解圍 (역진관산미해위) 관산에서 힘이 다해 포위를 풀지 못했다.

鐵衣逺戍辛勤乆 (철의원수신근구) 갑옷 입고 멀리 수자리 근무 오래되었는데

玉筯應啼别離後 (옥저응제별리후) 이별한 후 틀림없이 옥저같은 눈물 흘렸겠지.

少婦城南欲斷腸 (소부성남욕단장) 젊은 아낙 성남에서 애간장이 끊어지는데

征人薊北空回首 (정인계북공회수) 원정 간 사람 계북에서 부질없이 돌아본다.

邊風飄颻那可度 (변풍표요나가도) 변경 회오리바람에 그 추위를 어떻게 보내나

絶域蒼茫何所有 (절역창망하소유) 외딴 곳 아득하니 또 무엇이 있으랴?

殺氣三時作陣雲 (살기삼시작진운) 살기어린 기운 하루 종일 전운을 일으키고

寒聲一夜傳刁斗 (한성일야전조두) 써늘한 소리는 밤새도록 순라 치는 소리 전한다.

相看白刃血紛紛 (상간백인혈분분) 마주 보며 백병전에 핏방울 분분히 날고

死節從來豈顧勲 (사절종래기고훈) 예로부터 절개에 죽지 어찌 공훈을 바랐던가?

君不見沙塲征戰苦(군불견사장정전고)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사막 전장에서 싸우는 고통을?

至今猶憶李將軍 (지금유억이장군) 지금도 여전히 이장군을 기억하고 있다.

 

 

연가행樂府의 옛 제목. 相和歌. 平調曲에 속하고, 曺丕(조비)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하여,

변새의 고통과 혹한을 그리거나 혹은 정벌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부녀자의 생각을 내용으로 한다.

御史大夫張公(어사대부장공)하북 절도부사 張守珪, 개원 26(738)에 장수규 부대는 5번 싸워 패했으나,

은 오히려 반대로 대승이라고 우겼다.

 

漢家(한가)당나라 때에는 사람들이 항상 한나라를 당에 비유했다. 당나라 조정.

非常(비상)파격적으로.

賜顔色(사안색)恩遇(은우)를 주다. 임금이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장수를 격려한다는 의미이다.

()擊打. 치다.

榆關(유관)산해관.

 

逶迤(위이)연면 부절한 모양. 길게 이어진 모양.

碣石(갈석)산 이름. 지금의 하북성 창려에 있다.

羽書(우서)새의 깃털을 끼운 군용 문서로 위급한 상황일 때 사용되었다.

瀚海(한해)대 사막.

單于(선우)고대 흉노의 수령.

獵火(엽화)사냥할 때 들고 다니는 횃불. 고대 유목민족은 전쟁을 하기 전에 간혹 대규모 사냥을 거행했으니

지금의 군사훈련과 유사한 것이었다.

憑凌(빙릉)침범하다.

雜風雨(잡풍우)비바람을 뒤섞다. 오랑캐 기병의 기세가 마치 폭풍과 소나기 같이 사납고 맹렬하다는 뜻이다.

蕭條(소조) :스산하다.

 

美人帳下猶歌舞(미인장하유가무)이 구절은 변방의 장수들이 병사들을 중하게 여기지 않아,

그들이 전장에서 처참하게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군영 안에서 미인들의 노래와 춤을 즐기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逺戍(원수)멀리 고향을 떠나 국경을 지키다.

 

玉筯옥저. 눈물에 비유. 이를 빌려 閨中少婦(규중소부)를 지칭한다.

薊北(계북)지금의 천진 소현. 변경을 말한다.

三時하루 종일.

陣雲(진운)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험악한 형세. 즉 전운을 가리킨다.

刁斗(조두)군대에서 쓰는 동으로 만든 그릇. 낮에는 밥 짓는데 사용하고 밤에는 두드려서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했다.

顧勲(고훈)전공으로 功名利祿(공명이록)을 얻다.

李將軍서한의 명장 이광. 李广(이광)의 호는 ()장군으로, 변경을 지킬 때 사졸들과 동고동락을 같이하여,

흉노가 수년간 감히 국경을 범하지 못했다.

 

해설

시는 전쟁의 고통과, 책임지는 장수가 오만하여 적을 가벼이 여기며, 荒淫(황음)하여 전쟁에서 날카로움을 잃어

전투병들로 하여금 막대한 고통과 희생을 당하게 한 것을 개탄하고,

사병과 장수들 간에 苦樂이 서로 다른 현실을 반영했다.

시는 비록 변경의 전쟁을 서술했지만 민족 모순의 부재를 무겁게 지적했고 풍자했다.

동시에 전사들이 국가를 위해 힘들게 근무하는 것을 그렸다.

주제는 雄建 激昻(웅건격앙)되고 비장한 慷慨(강개)를 잘 전달했다.

 

고적은 20세 때 장안을 유람하며 벼슬에 대해 커다란 포부를 지니고 있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후 북쪽으로 계문, . 조 및 양. 송 일대를 유람하며 변방 생활을 경험했다.

그러던 중 천보 4(745)에는 이백. 두보와 만나 함께 변. 송 등지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천보 850세 때 봉구현위를 제수 받았으나 3년 후 그만 두었다.

안사의 난 이후에는 관운이 순통하여 간의대부에까지 올랐다.

이에 구당서에 당 이래 시인 가운데 현달한 자로는 고적이 유일하다라고 했다.

젊은 시절 겪었던 변방 생활의 경험은 그를 성당의 대표적인 변새시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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