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석 당시삼백수

068. 讀韓碑詩 / 李啇隱

甘冥堂 2023. 1. 19. 10:33

068. 讀韓碑詩 / 李啇隱

        한유의 비문을 읽고

 

元和天子神武姿 (원화천자신무자) 원화시대 천자의 신성하고 용감한 자세는

彼何人哉軒與羲 (피하인재헌여희) 저 분이 어떤 분인가, 헌원씨와 복희씨라.

誓將上雪列聖恥 (서장상설열성치) 맹세코 위로 열성조의 수치를 씻으려고

坐法宫中朝四夷 (좌법궁중조사이) 법궁에 앉아 사방의 오랑캐들 조회하게 하였다.

淮西有賊五十載 (회서유적오십재) 회수 서쪽에 도적들 오십 년에 걸쳐 할거하여

封狼生貙貙生羆 (봉랑생추추생비) 이리가 살쾡이 낳고 살쾡이가 말곰을 낳아

不據山河據平地 (불거산하거평지) 산과 강에 거처하지 않고 평지에 거하면서

長戈利矛日可麾 (장과이모일가휘) 긴 창과 날카로운 창이 해도 찌를 만 했다.

帝得聖相相曰度 (제득성상상왈도) 황제는 배도라는 어진 재상을 얻었는데

賊斫不死神扶持 (적작불사신부지) 적의 암살로도 죽지 않았으니 신의 도움이라.

腰懸相印作都統 (요현상인작도통) 허리에 재상의 인뚱이 차고 도통이 되어

隂風慘淡天王旗 (음풍참담천왕기) 음풍 참담한 곳에 황제의 깃발 세웠네.

愬武古通作牙爪 (소무고통작아조) 이소. 한공무. 이도고와 이문통이 부관이 되고

儀曹外郎載筆隨 (의조외항재필수) 예부의 원외랑 이종민은 붓을 들고 따라 간다.

行軍司馬智且勇 (행군사마지차용) 행군사마 한유는 지혜롭고 용감하며

十四萬衆猶虎貔 (십사만중예호비) 십사만 군대는 호랑이와 맹수 같았다.

入蔡縛賊獻太廟 (입체박적헌태조) 채주 땅에 들어가서 적을 묶어 태묘에 바치니

功無與比恩不訾 (공무여비은불자) 공은 비할 사람 없고 성은은 헤아릴 수 없다.

帝曰汝度功第一 (제왈여도공제일) 황제가 말하기를 당신 배도의 공이 제일이라,

汝從事愈宜為辭 (여종사유의위사) 그대의 종사관 한유가 글을 지어야겠다하신다.

愈拜稽首蹈且舞 (유배계수도차무) 한유가 머리숙여 배알하고 발을 구르고 춤추며

金石刻畫臣能為 (금석각화신능위) 금석에 새길 문장은 제가 지을 수 있사오나

古者世稱大手筆 (고자세칭대수필) 예로부터 이른바 저명한 글이라 하는 터라

此事不繫於職司 (차사불번어직사) 이 일은 제가 할일이 아니지만

當仁自古有不避 (당인자고유불피) 은 예로부터 양보하지 않지요,

言訖屢頷天子頥 (언흘누함천자이) 말을 다하자 천자께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셨다.

公退齋戒坐小閣 (공퇴재계좌소각) 공은 물러나 제계하고 작은 누각에 앉아서

濡染大筆何淋漓 (유염대필하임리) 큰 붓을 적시니 어찌 흥건하지 않은가.

点竄堯典舜典字 (점찬요전순전자) <요전><순전>의 글을 손질해 놓고

塗改清廟生民詩 (도개청조생민시) <청묘><생민>의 시를 새롭게 고쳐 놓았네.

文成破體書在紙 (문성파체서재지) 문장이 완성되자 파격적 필체로 종이에 써서

清晨再拜鋪丹墀 (청신재배포단지) 새벽에 임금께 재배하고 단청 위에 펼친다.

表曰臣愈昧死上 (표왈신유매사상) 표문에 이르기를, 신 한유가 죽음을 무릅쓰고

詠神聖功書之碑 (영신성공서지비) 신성한 공적을 노래했으니 비에 새겨 주소서 했다.

碑髙三丈字如手 (비고삼장자여수) 비석의 높이는 삼장에 글자는 손 만 하고

負以靈龜蟠以螭 (부이영귀반이이). 신령한 거북이가 등에지고 용이 서리어 둘렀다.

句竒語重喻者少 (구기어중유자소) 글귀는 기묘하고 말이 심오하여 아는이 드문데

讒之天子言其私 (참지천자언기사) 어떤 이가 천자에게 참언하여 사사롭다 말했다.

長繩百尺拽碑倒 (장승백척예비도) 긴 포승줄 백 척으로 비를 넘어뜨려 끌어내어

鹿砂大石相磨治 (녹사대석상마야) 녹사 큰 돌로 서로 갈아 없애 버렸다.

公之斯文若元氣 (공지사문약원기) 한유의 이 문장은 원기와도 같아서

先時已入人肝脾 (선시이입인간비) 그 전에 이미 사람들의 간과 비위에 들어갔다.

湯盤孔鼎有述作 (탕반공정유술작) 탕왕의 대야와 공씨의 솥에 명문이 있었는데

今無其噐存其辭 (금무기기존기사) 지금 그 기물은 없어도 그 말은 남아 있다.

嗚呼聖皇及聖相 (명호성황급성상) 오호라. 성스런 임금과 성스런 재상의 이름

相與烜爀流淳熈 (상여훤혁유순희) 서로 함께 빛나며 환하게 전해지고 있다.

公之斯文不示後 (공지사문불시후) 한유의 이 문장이 후세에 보이지 않았다면

曷與三五相攀追 (갈여삼오상반추) 어찌 삼황오제와 더불어 반추될 수 있겠는가?

願書萬本頌萬遍 (원서만본송만편) 바라건대, 만 번을 쓰고 만 번을 읽어

口角流沬右手胝 (구각류말우수지) 입에 거품이 나오고 오른손에 못 박히게 하여

傳之七十有二代 (전지칠십유이대) 일흔두 세대에 까지 전하여

以為封禪玉檢明堂基 (이위봉선옥검명당기) 봉선문이 되고 명당의 기초가 되기를 바라네.

 

 

韓碑(한비)한유가 지은 <平淮西碑>를 말한다. 당헌종 원화12(817) 10, 승상 裵度는 군대를 이끌고

반란군인 회서번진 吳元濟를 토벌하였는데, 절도사 李愬가 눈 내리는 밤중에 채주에 들어가 오원제를 생포하였다.

12월 황제의 명으로 한유에게 <평회서비>를 짓게 하였다. 비문 중에 배도의 공을 돌출 나게 하자 이소의 불만이 생겼다.

 

이소의 처는 唐安公主(당안공주)의 여식이었음으로 궁에 들어가 당 헌종에게 비문이 부실하다고 진술하였다.

그래서 어명을 내려 한유의 비문을 지워 없애고, 한림학사 段文昌(단문창)에게 다시 짓도록 하였다.

이 두 편의 비문을 비교하니 한유의 비문에는. 배도와 이소의 전쟁 중의 역할과 공적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진술되어

있었고, 더구나 문학적 가치가 단문창의 것 보다 우수하였다. 이상은은 한유의 객관성을 지지하여,

시에서 한비를 추승하며 칭찬하였다.

 

列聖恥(열성치)안사의 난 이후 번진이 여러 번 반란을 일으켜 황제가 피란 가는 치욕을 당했다.

封狼(봉랑)큰 이리. 貙貙(.chu)살쾡이와 비슷한 맹수.

(.pi)말곰. 모두 맹수들로서, 번진의 흉포함을 비유하며, 이들은 몇 대에 이어졌다.

日可麾(일가휘)(hui)와 통한다. 이 두 구는 번진이 스스로 군대가 강병하다는 긍지로, 山下의 험한 지세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며 평원에 거하면서 공공연하게 조정에 대항하였다.

벨 작.

 

賊斫不死(적작불사)당시 재상 무원형, 어사 배도는 출병하여 회서를 평정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절도사 왕승종, 이사도는 오히려 오원제를 사면하여 전쟁을 피할 것을 요구하여, 조정이 격렬히 논쟁하였다. 원화 106,

이사도는 자객을 보내 무원형과 배도를 암살하려 했다. 무원형은 비명에 죽었으나 배도는 요행히 살아남아

후에 재상이 되었다.

神扶持(신부지)하늘이 보우하여. 헌종이 배도가 죽지 않았음을 알고, 말하기를 배도는 모든 것을 얻었으니

하늘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愬武古通(소무고통)배도의 부장이었던 이소. 한공무. 이도고. 이문통을 가리킨다.

이소는 원화 11(816) 당등수 절도사가 되어 오원제를 평정 했다.

牙爪(아조)무장. 배도의 부장을 가리킨다.

비휴 비(맹수의 일종) 헤아릴 자. 비방할 자.

屢頷(루암)(여러 루, 끄떡일 암). 턱 이.

淋漓(임리)물 뿌릴 림. 스며들 리. 많이 흘러 흥건하다.

点竄(점찬)字句를 수정하다. 점은 지워서 없애는 것이고, 찬은 바꾸는 것이다. 점찬 두 글자는 한유의 필법이

<서경><요전><순전> <시경><><>에 필적함을 칭송한 것이다.

破體(파체)서체 중 행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하나, 여기서는 당시의 보통 서체와는 다르게 파격적으로 썼다는 의미다.

丹墀(단지)붉은 계단. 궁궐 안의 붉은 계단을 말한다.

昧死(매사)죽을죄를 범하다. 신하가 왕에게 표문을 올릴 때 자신의 글이 형편없다는 뜻에서 상투적으로 쓰던 말이다.

靈龜(영귀)신령스런 거북이. ()서리다. 똬리를 틀다.

()교룡. ()참언하다.

 

湯盤(탕반)탕왕의 세숫대야. 그 세숫대야에 "날마다 새롭게 하면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 질 것이다.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孔鼎(공정)공자의 조상인 孔正考父의 솥. 그 솥에 한 번 명함에 숙이고 두 번 명함에 구부리고, 세 번 명함에 숙이면,

담장을 따라 걸음에 나를 감히 업신여기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一命而僂, 再命而傴, 三命而俯. 循墻而走, 亦莫予敢侮)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烜爀(훤혁)명성과 위엄이 밝게 빛나는 모양.

淳熈(순희)환히 빛나다. 三五상황오제.

攀追(반추)따라잡다. ()굳은 살.

傳之(전지)한유의 문장이 천추만대로 이르도록 전해지기를 바란 것이다.

~. .

封禪(봉선)천지신명께 제사 지내다. 태산 위에 흙으로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을 이라 하고,

태산 아래의 작은 산인 梁父山 위에 땅을 쓸고 평평하게 하여 산천에 제사 지내는 것을 이라 한다.

玉檢(옥검봉선문을 넣어두는 옥상자. 봉선문을 가리킨다.

明堂(명당)황제가 정교를 펼치고 제후를 접견하고 제사를 거행하고 인재를 선발하는 일을 하던 곳.

 

[작자] 이상은(813~858) 義山. 호 옥계생. 회주 하내 사람으로 대화 년간에 천평절도사 令狐楚와 알게 되어,

837년 진사에 등과되었다.

 

영호초가 죽자 경원절도사 王茂元의 서기가 되었고, 왕씨 딸과 결혼하였다. 당시 영호초 父子牛黨이였고

왕무원은 李黨이 되어 서로 배척하였다. 우당이 득세하자 이당의 왕무원의 딸과 결혼한 이상은을 배은망덕하다 하여,

종신토록 坎凛(감름)되어 불우하였다.

 

이상은은 변려문의 대가이자 晩唐 唯美主義의 대표시인이다. 그는 典故와 수식이 번다하여 시의가 모호하다는

평을 받기는 하지만 애정시와 詠史詩에 있어서는 높은 성취를 이룩했다.

만당시의 거벽으로 두목과 더불어 "小李杜"라 불렸다. 작은 이백, 두보라는 뜻이다.

 

 

해설

시는 내용상 크게 다섯 단락으로 너누어 진다. 1~8구는 변방 평정에 대한 헌종의 의지와

번진이 할거하고 있는 회서 지역의 상황이 나타나 있으며

9~16구는 회서지역 평정에 공헌한 배도의 공을 기리고 있다.

17~26구에는 한유가 명을 받들어 회서지방을 평정한 기념비를 쓰게 된 상황이 나타나 있으며

27~40구에는 비문이 완성되고 비로 세워졌다가 후에 철거되고 알아 없어지게된 과정이 서술되고 있다.

41~52구는 한유 비문의 뛰어남을 찬양하며 만세토곡 영구불멸하기를 바라고 있다.

 

淸 田雯(전문)두보를 잘 배운 것으로는 한유의 가행체만한 것이 없는데, 이상은의 한유 비한 수는

두보와 짝하고 한유를 능가하니, 음성과 리듬의 절묘함이 아무리 음미해도 끝이 없는 느낌을 갖게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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