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소봉처사의 여름나기

甘冥堂 2024. 6. 16. 19:15

하릴없는 북한산 처사가
친구들 앉혀놓고
무더운 여름 나기에 대한 구라를 푼다.

첫째. 점심 먹고 낮잠 자기
둘째. 컴퓨터 앞에 앉아 호작질하기
셋째. 가지도 않을 여행계획 짜기
넷째. 친구들 꼬셔내어 술 먹을 궁리
다섯째. 꽃밭에 물 주고 잡초 뽑기
여섯째. 멍때리며 문간 위를 들고 나는 제비 보기
일곱째. 건너방에 앉아 옛날 시서화(詩書畵) 뒤적이기
여덟째. 지난날 또는 앞날을 손꼽아 헤어보기.

 


감히 다산의  消暑八事(소서팔사)와 비교할 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더위 쫓는 방법이니 뭐라 하기도 민망하다.

제일 웃기는 건, 지난날 앞날에
무엇을 했고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길래
그것들을 손꼽아 헤어본다는 것인가?

지난날은 후회 덩어리요
앞날은 '뻔할 뻔자'인데
어찌하여 이 더운 여름에 그딴 것들을 헤어 보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하여튼 자기가 그렇게 한다니 할 말은 없다.
무슨 짓을 하던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 된다는데
건강하게 잘 지내기 바란다.

정 못 견디겠으면
토종닭 백숙 삶아 줄 테니 내려오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