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버려진 장화

甘冥堂 2024. 10. 13. 12:05

홍원항 /  박성우

홍원항은 늙은 작부다
소주 한 병 더 달라는 사내의 말을 무시한 채
욕설 가득 퍼담은 뜨거운 국밥을 넌지시 밀어놓고
담배에 불을 댕겨 무는 늙은 작부다
한때 밤마다 몇송이고 피워올리던 해당화,
잔뿌리조차 말라버린 지 오래인 음부를 가진 늙은 작부다
새벽 갯바람에 미닫이문이라도 덜컹거리면
딱히 기다리는 사람도 올 사람도 없는데 습관처럼 문을 열어보는 늙은 작부다
속 쓰린 사내들에게 꿀물을 타준 적은 뭇별처럼 많아도
정작 자신의 뒤틀리는 속을 위해서는 꿀물을 한번도 타본 적이 없는 늙은 작부다.


선창가에 버려진 장화가
아무렇게나 신는 신발보다 오히려 쉽게 삭고 헐거워진다는 것에 새삼 놀라며
막무가내로 슬퍼지겠지
...


...  그때쯤 나는 술상을 물리고 늙은 작부와 비린내가 풍기는 쪽방으로 들고 싶다.
생선을 담았던 나무상자처럼 비린내 가득한 늙은 작부의 품에
나는 갓 잡아올린 도미처럼 담겨, 등허리로 바닷가 푸른 달빛이 땀을 타고 흘러내릴 때까지
있는 힘껏 파닥거려주고 싶다.
거친 파도가 방 안 가득 들어와 철썩철썩, 철썩거리다가 곤한 잠에 빠지겠지.
나는 도마위를 콧노래처럼 지나가는 칼소리나 북어포를 내려치는 방망이소리에 잠을 깨겠지.
늙은 작부는 내가 북엇국을 먹는 모습 애써 보지 않는 척 담배에 불을 댕기겠지. 한술 뜨고 어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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