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餘恨歌

甘冥堂 2024. 10. 21. 11:22

어머니의 여한가(餘恨歌)

옛 어머니들의 시집살이 자식 거두기
질박한 삶을 노래한 글.

한국 여인들의 결혼 후 시집살이에서 생기는 한(恨)을 이야기한 순박한 글입니다.

   열여덟살  꽃다울제
   숙명처럼  혼인하여
   두세살씩  터울두고
   일곱남매  기르느라
   철지나고  해가는줄
   모르는채  살았구나

   봄여름에  누에치고
   목화따서  길쌈하고
   콩을갈아  두부쑤고
   메주띄워  장담그고
   땡감따서  곶감치고
   배추절여  김장하고
   호박고지  무말랭이
   넉넉하게  말려두고
   어포육포  유밀등과
   과일주에  조청까지
   정갈하게  갈무리해
   다락높이  간직하네

   찹쌀쪄서  술담그어
   노릇하게  익어지면
   용수박아  제일먼저
   제주부터  봉해두고
   시아버님  반주꺼리
   맑은술로  떠낸다음
   청수붓고  휘휘저어
   막걸리로  걸러내서
   들일하는  일꾼네들
   새참으로  내보내고
   나머지는  시루걸고
   소주내려  묻어두네

   피난나온  권속들이
   스무명은  족하온데
   더부살이  종년처럼
   부엌살림  도맡아서
   보리쌀로  절구질해
   연기불로  삶아건져
   밥도짓고  국도끓여
   두번세번  차려내고
   늦은저녁  설거지를
   더듬더듬  끝마치면
   몸뚱이는  젖은풀솜
   천근만근  무거웠네

   동지섣달  긴긴밤에
   물레돌려  실을뽑아
   날줄들을  갈라늘여
   베틀위에  걸어놓고
   눈물한숨  졸음섞어
   씨줄들을  다져넣어
   한치두치  늘어나서
   무명한필  말아지면
   백설같이  희어지게
   잿물내려  삶아내서
   햇볕으로  바래기를
   열두번은  족히되리

   하품한번  마음놓고
   토해보지  못한신세
   졸고있는  등잔불에
   바늘귀를  겨우꿰어
   무거운눈  올려뜨고
   한뜸두뜸  꿰매다가
   매정스런  바늘끝이
   손톱밑을  파고들면
   졸음일랑  혼비백산
   간데없이  사라지고
   손끝에선  검붉은피
   몽글몽글  솟아난다

   내자식들  헤진옷은
   대강해도  좋으련만
   점잖으신  시아버님
   의복수발  어찌할꼬
   탐탁잖은  솜씨라서
   걱정부터  앞서는데
   공들여서  마름질해
   정성스레  꿰맸어도
   안목높고  까다로운
   시어머니  눈에안차
   맵고매운  시집살이
   쓴맛까지  더했다네

   침침해진  눈을들어
   방내부을  둘러보면
   아랫목서  윗목까지
   자식들이  하나가득
   차내버린  이불깃을
   다독다독  여며주고
   막내녀석  세워안아
   놋쇠요강  들이대고
   어르리고  달래면서
   어렵사리  쉬시키면
   일할엄두  사라지고
   한숨만이  절로난다

   학식높고  점잖으신
   시아버님  사랑방에
   사시사철  끊임없는
   접빈객도  힘겨운데
   사대봉사  제사들은
   여나무번  족히되고
   정월한식  단오추석
   차례상도  만만찮네
   식구들은  많다해도
   거들사람  하나없고
   여자라곤  상전같은
   시어머니  뿐이로다

   고추당추  맵다해도
   시집살이  더매워라
   큰아들이  장가들면
   이고생을  면할건가
   무정스런  세월가면
   이신세가  나아질까
   이내몸이  죽어져야
   이고생이  끝나려나
   그러고도  남는고생
   저승까지  가려는가
   어찌하여  인생길이
   이다지도  고단한가

   토끼같던  자식들은
   귀여워할  새도없이
   어느틈에  자랐는지
   짝을채워  살림나고
   산비둘기  한쌍같이
   영감하고  둘만남아
   가려운데  긁어주며
   오순도순  사는것이
   지지리도  복이없는
   내마지막  소원인데
   마음고생  팔자라서
   그마저도  쉽지않네

   안채별채  육간대청
   휑ㅡ하니  넓은집에
   가문날에  콩나듯이
   찾아오는  손주녀석
   어렸을적  애비모습
   그린듯이  닮았는데
   식성만은  입이짧은
   제어미를  택했는지
   곶감대추  유과정과
   수정과도  마다하고
   정주어볼  틈도없이
   손님처럼  돌아가네

   명절이나  큰일때는
   객지사는  자식들이
   어린것들  앞세우고
   하나둘씩  모여들면
   절간같던  집안에서
   웃음꽃이  살아나고
   하루이틀  묵었다가
   제집으로  돌아갈땐
   푸성귀에  마른나물
   간장된장  양념까지
   있는대로  퍼주어도
   더못주어  한이로다

   손톱발톱  길새없이
   자식들을  거둔것이
   허리굽고  늙어지면
   효도보려  한거드냐
   속절없는  내한평생
   영화보려  한거드냐
   꿈에라도  그런것은
   상상조차  아니했고
   고목나무  껍질같은
   두손모아  비는것이
   내신세는  접어두고
   자식걱정  때문일세

   회갑진갑  다지나고
   고희마저  눈앞이라
   북망산에  묻힐채비
   늦기전에  해두려고
   때깔좋은  안동포를
   넉넉하게  끊어다가
   윤달든해  손없는날
   대청위에  펼쳐놓고
   도포원삼  과두장매
   상두꾼들  행전까지
   두늙은이  수의일습
   내손으로  다지었네

   무정한게  세월이라
   어느틈에  칠순팔순
   눈어둡고  귀어두워
   거동조차  불편하네
   홍안이던  큰자식은
   중늙은이  되어가고
   까탈스런  울영감은
   자식조차  꺼리는데
   내가먼저  죽고나면
   그수발을  누가들꼬
   제발덕분  비는것은
   내가오래  사는거라
   내살같은  자식들아
   나죽거든  울지마라
   인생이란  허무한것
   이렇게도  늙는것을
   낙이라곤  모르고서
   한평생을  살았구나
   원도한도  난모른다
   이세상에  미련없다

   서산마루  해지듯이
   새벽별빛  바래듯이
   잦아들듯  스러지듯
   흔적없이  지고싶다


☆ <어머니의 여한가>

짠한 감동을 준다.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누가 지었을까?

작자는 청은 구자옥(1887~1950)이라는 설이 있다.
생각보다 그다지 오래전 분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 시대상이 급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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