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7년 플라시전투 승리로 프랑스 세력을 인도에서 완전히 몰아낸 영국은
콜카타를 중심으로 한 벵골을 거점 삼아 세력을 계속 넓혀가고 있었다.
북쪽의 네팔 지방에서는 용맹한 산악민족 구르카족의 고르카왕국이
계속 남진하며 영토를 확장하다가 북진하던 영국과 충돌했는데
이것이 1814년 제1차 영-네팔전쟁이다.
고르카왕국을 대수롭지 않게 본 영국 동인도회사는 세포이가 주축인 군인
3,500명을 투입했는데
무려 740명이 전사하고 영국 최고 지휘관조차 전사하는 대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듬해 영국은 대군 4만 명을 동원해 네팔군 1만여 명을 공격했는데
이것이 제2차 영-네팔 전쟁이다.
네팔은 결국 1816년 굴복해 수가울리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맺었다.
조약의 핵심은 네팔이 동인도회사에 영토를 대폭 할양하고
독자적 외교가 금지되며 군사력을 제한받는 등 영국 동인도회사의 '보호령'이 되지만
네팔의 주권은 절대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강력한 세력사이에 낀 현실을 깨달은 네팔은 급격히 변신한다.
수가울리조약 이후 네팔은 거침없이 알아서 영국에 적극 협조하기 시작했고
용맹하기 그지없는 구르카 부대는 항상 영국군의 최전방에 섰다.
1857년 인도인 용병 세포이들의 항쟁 때도, 암리차르 학살 때도(1919.4.)
영국군 진압대의 최선봉에서 시위 군중에게 기관총을 발사한 것도 그들이었다.
구르카 부대는 인도 독립운동 시위진압에 앞장섰고
1차 대전이 터지자 먼저 영국에 파병하겠다고 제안했으며
2차 대전 때도 아시아와 유럽전선에서 영국을 위해 맹활약했다.
그래서 지금도 영국 군대의 행진 선두에는 스코틀랜드 취주악단과
구르카 부대가 서고 있으며
중요한 인물이 오거나 회의가 열리면 경비를 맡는 경우가 많다.
독립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며 강자와 싸우는 방법도 있지만
강자의 입안에서 혀처럼 알아서 기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은 아닌지...?
(글: 이원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