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Slow Reading

甘冥堂 2025. 3. 1. 20:29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느리게 읽기를 강조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용 선생은

정독 질서 초서를 독서의 방법으로 소개했다.

 

精讀은 글을 아주 꼼꼼하고 세세하게 읽는 것이다.

한 장을 읽더라도 깊이 생각하면서 내용을 정밀하게 따져서 읽는 습관이다.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철저하게 근본을 밝혀 나가는 독서법이다.

 

疾書란 책을 읽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들을 적어가며 읽는 것을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때 메모지를 갖추어 두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깨달음이 있으면

그 생각들이 달아나기 전에 종이에 기록하는 것이다.

곧 질서는 읽으면서 메모하는 습관이다.

 

抄書는 책을 읽다가 중요한 구절이 나오면 그대로 필사하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울림이 있는 것을 뽑아서 적는 초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가장 역점을 두고 강조했던 독서법이다.

 

다산의 독서법은 유배지에서 자녀 정학유에게 보낸 편지 중에도 이 내용이 잘 드러나 있다.

 

수천 권의 책을 읽어도 그 뜻을 정확히 모르면 읽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읽다가 모르는 문장이 나오면 관련된 다른 책들을 뒤적여 반드시 뜻을 알고 넘어가야 하느니라.

또한 그 뜻을 알게 되면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읽어 너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게 해라.

 

마구잡이로 읽어 내리기만 한다면 하루에 백 번 천 번을 읽어도 읽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 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의 대 사상가인 孔子(공자)의 사례

韋編三絶(위편삼절) 고사 성어의 유래에서도 정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종이가 없던 옛날에는 대나무에 글자를 써서 책으로 만들어 사용했는데,

孔子가 책을 하도 많이 읽어서 그것을 엮어 놓은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단 데에서 비롯된 말로

한 권의 책을 몇 십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많은 옛 현인들은 다독과 속독보다는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성심을 다해 읽으라는 精讀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에는 이러한 精讀, 느리게 읽기. 遲讀, 슬로 리딩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까?

 

의 독서에서 의 독서로의 전환을 주장한, 데뷔작 <일식>으로 1999년 일본 최고 문학상을 받은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郞)는 다독과 속독의 시대에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느리게 음미하며 읽는 슬로 리딩이 한 인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독서법이라며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거쳐 작가가 됐다고 그의 저서 [책을 읽는 방법]에서 소개한다.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으면, 실은 열 권, 스무 권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비유도 무엇도 아니다. 실제로 그 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열 권, 스무 권이라는 책의 존재가 필요하며,

우리는 슬로 리딩을 통해 그들 존재를 향하여 열린 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후배시민론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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