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 류시화
히말라야 싱잉볼
어떤 이가 네팔에서 가져와 선물한
히말라야 싱잉볼
노래하는 그릇이라는 뜻의
황동으로 만든 명상 도구
작은 나무봉으로 가장자리를 치거나
원을 그리면서 문지르면
태고의 소리 같은 음이,
노래라기보다는
소리의 근원 어딘가에 모여 있던 음이
귓속의 귀를 채운다 혹시
내 영혼에 중첩된 고요와 닿아서일까
듣고 있으면 소리만이 남고
듣는 자는 사라지는
노래하는 그릇
무겁거나 가벼운 영혼에게
생을 견디는 법을 일깨우는 듯
진정한 음을 내기 위해
쇠망치로 천 번 두드려 만들었다는,
그래서 모든 전생과 이생의 반향음으로 우는
그렇구나, 다름 아닌
내가 싱싱볼이었구나
나 자신이 천 번 두드린 자국 있는
황동 그룻이어서
싱잉볼이 내 심장을 닮았구나 한다

나의 사랑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랑 / 류시화
나의 사랑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랑이여
나의 마음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여
내가 가진 것은 부서진 음표밖에 없는데
나의 노래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노래여
불이었다가 얼음이었다가
나의 삶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의 삶이여
절반은 사랑하고 절반은 미워하며
긍정이었다가 부정이었다가
나의 꿈이 되기를 거부하는 나의 꿈
나의 것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의 모든 것이여
나의 얼굴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의 낯선 얼굴
나의 사랑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의 서툰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