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판에서는 장기 두는 이 보다 옆에서 훈수하는 사람이 더 흥분하고,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고 간섭한다. 귀찮기도하고 시끄럽기도 하지만, 훈수꾼이 있어야 장기 두는 맛이 나니 어쩔 수 없다.
비평이라는 단어도 결코 좋은 의미로는 들리지 않는다. 자기 자신은 그리 하지도 못하면서 남의 젯상에 감 놔라 대추 놔라, 뭐가 빠졌느니 순서가 잘못되었느니 잔소리를 해쌓는다. 결코 유쾌할 리 없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비평가의 말을 듣기보다는 차라리 12월에 장미꽃을 찾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또한 콜리지는 "시인이나 역사가 또는 전기 작가가 되려고 하다가 재능이 부족한 것이 드러나면 비평가가 된다"고 비평가를 폄하하기도 했다. 처칠은 비평가 보다는 차라리 배우가 되라고 하면서, 죽어도 비석도 안 세운다라고 비평가들을 미워했다.
20세기말 이후 비평방법으로서 탈 구조주의 비평, 페미니즘비평, 독자중심 비평, 문화연구, 생태주의 비평이 있다. 명칭 자체만으로도 골치아픈 개념들이다. 구조주의에 '脫' 자를 붙인 건 뭐며,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비평론에까지 영역을 넓혔는지, 또 생태주의는 무언지.. 어렵기만 하다. 여성 상위시대니 페미니즘 비평을 모르면 곤란할 것 같아 공부해 보려고 한다.
페미니즘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1792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권옹호론>이란 글을 써서 프랑스 수상에게 보냈다. 이 글을 보내기 불과 넉달전에 프랑스의 구즈라는 여인이 '여성의 제 권리'라는 가두 팸플랫 사건에 연루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시기의 여성의 위치는 참혹하게 무시되던 시대였다. 그런 마당에 메리의 글은 상당히 의미있는 글이었던 것이다.
페미니즘 비평이론은 크게 페미니스트 비평, 여성 비평, 여성적 글쓰기의 변화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페미니스트 비평은 텍스트 속에 나타나 있는 여성 이미지의 분석을 통해 여성억압적 요소를 밝혀내는 비평이다. 이 비평은 다소 이념적이며, 남성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 재현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중심을 이루었다.
밀레트의 저서는 1960년대 일어난 여성운동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이론서로서 신화와 종교가 남성중심으로 여성 이미지를 창조해 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남녀차별과 가부장제의 기틀을 다지는데 공헌했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특히 여성을 남근의 결핍, 혹은 거세된 존재로 해석함으로써 남성에게 타고난 우월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어 1970년 초반에 일레인 쇼월터는 남성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여성중심적인, 그리고 여성들의 경험으로 부터 나오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비평형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작가로서의 여성, 또는 여성비평이다. 그는 여성 글쓰기의 단계를 여성적 단계,여성해방 단계, 여성문화 단계의 3단계로 구분하였다.
먼저 여성적 단계(1840~80)로서 이 시기의 여성소설가들이 지배적 문화전통인 남성적 기준을 내면화하고 모방하던 단계인데, 당시의 지배문화를 모방하던 브론테와 조지 엘리엇의 시대이다.
다음으로 폐미니스트 단계, 여성 해방단계(1880~1920)로서 여성집단의 가치와 권리을 옹호하는 단계, 다시말해 기본 가치에 저항하고 여성의 결속를 강화하려 하였으나 창조성은 약화되던 시대이다.
세번째는여성의 단계(1920~)로서 여성 자신의 내부로 향하는 단계, 곧 내적 탐색과 여성미학을 발전시킨 캐더린 맨스필드와 버지니아 울프의 시대이다.
여성적 글쓰기는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가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로서 여성작가들에게는 해방의 한 형식으로 간주된다
여성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그들의 글쓰기는 남성에 비해 어떻게 다른가를 분석한다. 예를 들어 남성들의 글쓰기란, 종결을 시도하고 권위와 합리성을 강조하지만, 여성들의 글은 유동적이고 이완된 형식의 글로, 명백한 결론도 아니고 긴장감도 떨어진다고 비교했다.
프랑스 페미니즘은 언어학과 정신분석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즉 소쉬르의 언어학과 라캉의 정신분석을 통해 글쓰기에서 여성의 재현에 대한 질문들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의 주장은 페미니즘 전반을 이끌던 영미계통의 페미니스트들의 작업을 침묵시킬만한 이론적 입장을 세웠다. 엘렌 식수 Helene Cixous는 '차이'라는 급진적 형태로 나타났고,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여성은 틈새이며, 침묵이며, 비가시적이고 비청취적이며 무의식속에 억압된 것으로 본다.
뤼스 이리가레이 Luce Irigaray라는 사람은 서구 철학담론에서 여성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제외되고 있는지를 밝혀내면서, 성의 차이가 은폐되고 여성은 결핍 내지는 부재로 특징지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의 글쓰기에 대하여 남성과 여성의 육체적 특성과 연결시켜 설명을 하였다.
즉 여성의 육체는 두 입술의 복수성과 열림이 특징이라고 한다. 두 입술이란 여성의 성기 모양이다. 두 개의 입술이 서로 포옹하고 있어 하나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닌 '하나 속의 둘'로서, 여성은 복수이고 열림이라는 것이다. 또 남성과 달리 다수의 성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늘 자신을 되만질뿐 어느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고 하며, 따라서 항상 유동적이라고 하였다.
여성의 이런 신체적 특징으로 인하여 여성들의 문체는 여성의 몸이 갖는 유체성과 친밀한 촉각 등으로 동시성을 재현하며. 기존의 형식과 비유, 개념들을 해체하며, 나를 분산시킴으로써 다양하고 유동적인 글쓰기를 한다고 설명했다.
쇼월터는 이런 프랑스 여성문학론을 가르켜,"정신분석학적인 것으로서 억압을 강조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여성문학론자들과는 달리 식수나 크리스테바 같은 프랑스 비평가들은 여성운동론을 반대했는데, 그것은 여성운동론 자체가 "남성:여성"이라는 성에 의한 이원적 대립구조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진 박태상 문학비평론)
뤼스 이리가레이가 남성과 여성의 육체적 특성을 연결시켜 설명한 것에 부연한다면, 앞으로는 남성 여성을 가릴 것 없이 그들 자신의 고유한 특성에 인한 문체는 그들이 갖는 관상적, 심성적, 골격적 특성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혈액형에 의한 특성, 오행상의 특성 등으로 기존의 형식과 개념을 모두 해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이미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도 사라질지도 모르며, 생물학적 비평이니 언어학적 비평이나 정신분석학적 비평이니 문화적 비평같은 여성중심 비평도 의미를 잃게 되며, 정체성에 대한 문제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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