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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건국신화 - 아이네이스

甘冥堂 2013. 6. 5. 08:06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1. 들어가며

아이네이스는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가 쓴 대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서양 사람들이 자기들 문화의 뿌리로 생각하는 로마의 문학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 그 내용은 트로이아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네아스가 여러 곳을 방랑하다가 이탈리아 땅에 닿아 정착하게 된다는 것을 쓴 것이다. 이 아이네아스는 여신 베누스와 인간인 앙키세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서, 이미 <일리아스>에 앞으로 트로아아 인들을 다스릴 사람이라고 예언되어 있던 인물이다.

 

이 작품은 전체가 열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 앞의 여섯 권은 <오뒷세이아>의 방랑을 본받았고, 뒤의 여섯 편은 <일리아스>의 전쟁을 본받았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흔히 작품의 두 단어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무기와 사내를 노래한다. 그는 처음 트로야를// 도망쳐 운명을 좇아 이탈랴의 라비늄에 왔다.// 그는 물에서 끔찍이 당하고 바다에 던져져// 하늘 뜻의 핍박, 성난 유노 때문에// 전쟁 또한 모질게 겪었으나, 건국의 의지로// 신들을 라티움에 모셨다. 거기서 라티움 백성// 알바의 선조들과 우뚝한 로마 성벽이 생겼다. (11~7)

 

여기에서 무기(무구)”<일리아스>의 내용을, “사내<오뒷세이아>의 첫 단어인 한 남자를 의식한 것이라고 한다. 이와는 다른 주장도 있는데, 이 작품이 구성에 있어서<오뒷세이아>를 본받고 있다는 것으로 <오뒷세이아>가 전반부에는 바다에서의 방랑을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고향에서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2. 줄거리 요약

전쟁 10년째에 희랍군에게 패배하던 날 아이네아스는 집에서 자다가 꿈에 헥토르의 모습을 본다. 헥토르는 죽을 때의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트로이아는 이미 함락되고 있으니 성물과 신상들을 모시고 탈출하라고 권한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을 데리고 탈출하다가 혼란 중에 아내 크레우사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의 아내는 이미 죽어 혼령으로 나타나, 어서 탈출하여 이탈리아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를 촉구한다. 여기서부터 아이네아스의 방랑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트로이아에서 크레테로, 그곳에서 다시 희랍의 북서쪽 악티움에 상륙하게 된다. 그들은 곧 에피루스에 들르게 되는데, 뜻밖에 거기서 헥토르의 아내와, 헥토르의 형제 헬레노스를 만나게 된다. 헬레노스는 원래 예언자였다. 그는 시칠리아 섬을 멀리 돌아 서쪽항로로 가라고 조언하고, 또 쿠마이에 가면 예언녀가 있으니 그녀의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한다. 그들은 시칠리아에 상륙하였다가 서북단의 드레파눔에 닿았을 때 아이네아스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 여기까지가 3권의 내용이다. 그곳에서 이탈리아를 향해 떠나다가 엄청난 푹풍우를 만나게 되고 배 한 척을 읽은 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 닿게 된다. 작품자체는 이 폭풍장면에서 시작된다.

 

4권은 예부터 많은 사랑을 받던 부분으로 아이네아스와 디도의 사랑, 그리고 그것의 파멸적인 결말을 그리고 있다. 디도는 쉬카이우스라는 사람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오라비인 튀로스 왕 퓌그말리온이 재산을 탐내서 그를 몰래 죽였다. 그래서 그녀는 왕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모아 이곳으로 이주한 것이다. 카르타고에 도착한 아이네아스는 정탐을 나가고 그의 어머니 베누스는 구피도(에로스)를 소년의 모습으로 바꿔 디도에게 보낸다. 구피도는 디도의 가슴속에 아이네아스에 대한 사랑을 불어 넣는다. 유노와 베누스는 디도와 아이네아스를 짝지여 주려고 두 사람이 사냥을 나갔을 때 폭풍우를 보낸다.

 

그때 하늘이 커단 굉음과 꾸물꾸물 섞이기// 시작했고, 우박과 뒤엉킨 구름이 몰려왔다.// .....급류가 산을 내려왔다// 디도와 트로야 장군은 같은 동굴로 함께// 피신하였다. 태초의 대지와 유노가 들러리로// 신호를 보냈다. 불이 번쩍이고 우주가 혼인의// 증인이 되었다. 산정에서 요정들이 환호 했다” (아이네이스 제4160~168)

 

행복한 시간도 잠시. 윱피테르는 메르쿠리우스를 보내 아이네아스에게 경고한다. 운명은 그에게 이탈리아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라는 것이다. 디도는 그가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을 눈치 채고 따지고 애원하나, 아이네아스는 운명과 신들의 뜻이라며 변명한다. 디도는 죽을 결심을 하고. 아이네아스 일행이 떠난 것을 확인한 순간 로마에 저주를 보내며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자결한다. 디도의 아이네아스에 대한 저주는 이렇다.

 

그때 사나운 백성들과 싸워 전쟁에 시달리며// 영토에서 내쫓겨 율루스와도 멀리 떨어지며// 도움을 청하나 보는 것은 전우들의 부당한// 죽음이게 하소서! 그가 불리한 평화 협정을// 수용하매, 왕국도 바라던 광영도 보지 못하고// 때 이르게 사망하여 들판에 버려지게 하소서!// ” (아이네이스 제4615~620)

 

디도의 예언은 그대로 실현된다. 아이네아스는 적들과 맞닥뜨리고, 라티움 족과 불리한 평화 협정을 맺는다. 그밖에 아이네아스는 전쟁터에서 죽었으며 그의 주검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김남우 옮김. 아이네이스 p212 하단)

나중에 로마는 카르타고와 세 차례 큰 전쟁을 치른다. 특히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로마로 진격할 때 국가 존망의 위기였다.

 

5권은 아이네아스 일행에 시킬리아에서 앙키세스를 기념하는 운동경기를 치르고, 6권은 아아이네아스의 저승 여행을 다룬다. 아이네아스는 여자 예언자 쿠마이 시뷜라를 찾아가 저승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아이네아스는 어머니 베누스가 보낸 비둘기들의 안내를 받아 황금가지를 구해 시뷜라에게 돌아간다. 그들은 시뷜라의 도움으로 저승길에 들어선다. 그곳에서 그들은 여러 신화적 인물들을 만나고, 엘뤼시움에 도착하여 돌아가신 아버지 앙키세스의 혼령을 만난다. 앙키세스는 영혼들의 환생에 대해 알려주고, 아들이 앞으로 얻게 될 명성과, 아들이 치를 전쟁과 도시들의 상황도 가르쳐주고, 위기들에 대한 방법도 가르쳐 준다. 아이네아스는 상아로 된 문을 통해 저승으로부터 이승으로 돌아온다.

 

이어서 <일리아스>를 본받은 것으로 알려진 후반부다. 저승에서 돌아온 아이네아스 일행은 좀 더 북상하여 티베리스 강 하구 라티움 지역에 도착한다. 한편 그 지역 왕인 라타누스는 신들로부터 그의 딸을 이방인과 결혼시키라는 명령을 받았었다. 아이네아스를 자신의 딸 라비니아와 결합시키려고 하였으나, 왕비인 아마타가 반대하고 나섰다. 유노가 저승에서 복수의 여신 알렉토를 불러 알렉토가 왕비의 가슴속에 뱀을 집어넣어 광기에 사로잡히게 한 것이다. 알렉토는 유력한 구혼자인 투르누스에게도 횃불을 던져 넣어 그 역시 광기에 사로잡혀 전쟁을 갈망하게 된다.

 

이제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아탈리아 쪽 동맹군들이 모여들고, 아이네아스는 로마를 방문하여 동맹군을 얻는다. 그 사이 베누스는 불카누스에게 청하여 아이네아스가 입을 무구들을 준비한다. 특히 그가 받은 무구 중 방패에는 로마의 역사가 새겨져 있었으며, 특히 악티움 해전이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그가 그 방패를 들어 메는 순간, 그는 전 로마의 역사를, 그 기초를 닦을 사명을 짊어진 것이다. 두 진영사이에 일진일퇴가 전투가 벌어지고, 그 와중에서 에우안드루스의 아들인 팔라스가 투르누스에게 죽는다. 투르누스는 젊은이의 가죽 띠를 빼앗아 자신의 몸에 두른다.

 

두 군대는 장례를 위해 일시 휴전하고, 아이네아스는 팔라스의 시신을 아버지에게로 보낸다. 에우안드루스 왕은 자기 아들의 죽음을 복수해 달라고 당부한다. 한편, 아이네아스와 투르누스가 단독으로 대결해서 그 결과를 따르자고 협정이 이루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약속했던 대로 단독 대결이 이루어진다. 몇 번의 타격 끝에 투르누스는 부상을 입고는 아이네아스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살려주면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를 돌보겠다는 것이다. 아이네아스가 마음이 흔들리다가 거의 살려주려고 마음먹는 순간, 투르누스가 전리품으로 빼앗아 두르고 있는 팔라스의 가죽띠를 발견하곤 격정에 사로잡혀 투르누스의 가슴에 칼을 꽂아 저승으로 보낸다.

 

이탈랴에서 큰 전쟁을 치르고 거친 족속들을// 제압하고 백성에게 도리와 도시를 세우리라.// 루틸리의 정복으로 겨울 숙영을 세 번 지나면// 셋째 여름이 라티움을 다스리는 그를 보리라.” (아이네이스 제1264)

 

로마 건국신화에 따르면,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3년 동안 전쟁을 치루며, 이후 아이네아스의 아들은 30년 동안 라비니움을 이어 다스리다가 근거지를 알바롱가로 옮기는데, 이후 알바롱가는 300년 동안 이어진다. 여기서 윱피테르는 아이네아스에게 주어진 사명을 두 가지 측면에서 언급하고 있는바 정복과 건설이다. (아이네이스 p 27.하단 주석)

 

3. 아이네아스의 영웅적 상과 그의 상대, 그리고 역사에 대한 암시

먼저, 아이네아스는 공적인 목표를 지닌 영웅의 상을 보여준다. 아이네아스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아킬레우스나,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옛 고향을 회복하겠다는 오뒷세우스 같이 개인적 목표를 좇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후손들이 대제국을 세울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공적 목표를 가지 영웅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사명을 짊어진 완성된 영웅은 아니었다. 동족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선 후에도 실수는 계속되고 디도에 당도하기까지 이미 7년을 엉뚱한 곳에서 돌아다녔다. 사명을 향해 그를 내 몬 것은 우선 신들이었고, 또 그의 아버지 앙키세스였다. 그가 고향을 떠나며 아버지를 어깨에 짊어진 순간, 그는 역사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이다.

 

다음으로, 아이네아스의 상대들은 격렬하나 순수했다. 경건은 종교적 의미보다는 그의 가족과 자기 집단 구성원을 충실하게 돌본다는 뜻이다. 이 경건함은 운명에 거역하지 않는 것이며, 반대로 운명을 맞서는 이들의 특징은 광기로 되어있다. 이 특성을 지닌 두 인물이 디도와 투르누스다. 디도의 경우에는 아이네아스에 대한 지나친 애착, 버림받은 것에 대한 수치심, 죽은 남편에 대한 죄책감등이 모두 지나치게 격하다. 투르누스의 경우에는 약혼녀를 잃게 된 것에 대한 분노, 명예손상에 대한 수치심, 그리고 무모한 살육에 대한 집착 등이 그 격렬함의 내용이다. 물론 이들이 광란을 하는 데는 신들의 작용이 있었지만, 운명을 몰라서 희생이 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순수한 자들이다.

 

세 번째로, <아이네이스>에는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정치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 시의 많은 부분에서 당시 로마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암시들을 찾아냈다. 먼저 디도의 모습에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으며. 8권 방패 속에는 로마의 역사가 새겨져 있으며, 묘사된 악티움 해전도 아우구스투스가 결정적 승리를 얻는 것을 암시한다.

 

4. 독후감

흔히 영웅들의 이야기에는 영웅다운 기개나, 엄청난 힘과 무술, 또는 지략 등이 묘사되는데 비해 아이네아스는 전혀 그러한 영웅다운 무언가가 없는 게 특징인 것 같다. 단지 예언과 신탁에 따라 무리들을 이끌고 고생 끝에 이탈리아에 당도하여 마지막 장면에서야 전투를 벌이고 투루누스와 일전을 벌이는 게 고작이다.

 

여기에서 인상 깊은 것은 베누스의 역할이다. 아들인 아이네아스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계속 도와준다. 카르타고에서는 아들의 험난한 여정을 끝냈으면 하는 마음에 디도를 맺어주게 하고, 투르누스와의 전쟁을 앞두고는 무구와 방패를 구해 주었으며, 이 전투에서 어디에서 날아온 화살에 부상을 입었을 때에도 베누스는 특별한 약초를 가져와 아들을 치료해 주는 등, 비록 신이지만 인간의 모성애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버지 앙키세스도 지극한 부성애로 아들을 돕고 앞일을 보여준다. 아들인 아이네아스 또한 트로이아를 빠져 나올 때, 아버지를 어깨에 둘러매고 아들 손을 잡고 탈출하는 장면은 동양적 가족애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해안에 상륙해 디도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운명과 신탁 앞에 사랑하는 이를 버리고 떠나는 장면은 차라리 비겁하기도 하다. 오라비인 퓌그말리온의 욕심 때문에 첫 남편이 죽고, 이어 만난 아이네아스와의 사랑이 무너지고 그가 떠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자결하는 디도의 불행은 비극 그 자체다. 디도가 슬픔에 못 이겨 퍼부은 무서운 저주의 말은 물론 이 장면이 후일의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을 염두에 둔 지어낸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너무 심한 것이나, 사랑하는 여인을 무정하게 뿌리치고 떠나고야 마는 영웅의 모습도 조금은 남자답지 못한 것이다.

 

건국신화를 이러한 대 장편 서사시로 써서 후세에 남긴 베르길리우스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는 사망하기 직전 아직 발표되지 않은 부분을 태워버리자고 하였으나, 아우구스투스의 뜻에 따라 세상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하마터면 위대한 작품이 사라질 뻔한 순간이었다. <18자역>으로 번역한 글이라, 고유의 운율에 따라 읽으면 더욱 그 의미를 되살릴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5. 참고문헌. 1.아이네이스. 김남우 옮김. 열린책들.

2. 그리스 로마 서사시. 강대진 지음. 북길드.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