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86세 할머니의 중학교 등굣길

甘冥堂 2024. 3. 10. 11:58

86세 할머니의 중학교 등굣길

 

"열네 살 마음으로 못 할 게 없죠."

서울 '만학도 학교' 일성여중 올해 최고령 입학생 김경애 할머니 인터뷰

"어렵게 살며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봐" 눈시울 붉혀암 수술 후에도 '열공'

 

2024.3.5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2024학년도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입학식'에서 이선재 교장이

최고령 일성여중 입학생인 김경애 할머니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이면 열네 살이잖아요? 내가 열네 살이라는 생각으로

'이제 시작이다' 하고 공부하고 있어요."

 

지난 8일 만학도들의 학교인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학교에서 만난

김경애(86) 할머니는 소녀같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 할머니는 올해 일성여중의 최고령 입학생이다.

미국에 사는 딸이 혼자 사는 어머니가 외로울까 걱정하며 입학을 추천했다.

 

지난 5일 새 학기가 시작돼 새로운 학우들을 사귀고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김 할머니는

"재밌다. 시간도 너무 잘 가고 여럿이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난생처음 배워보는 영어가 좀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이마를 짚기도 했지만

주위에 앉은 다른 학생들은 "잘하고 계신다. 귀가 조금 안 들리셔서 그렇지

젊은 사람만큼 빠르게 뭐든 잘하신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등록상 1939년생인 김 할머니는 실은 한 해 빠른 1938년에 태어났다.

호랑이가 수시로 나오는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자랐다는 그는

열두 살 무렵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는 등 곡절을 겪었지만

홀로 남은 어머니는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도 김 할머니를 학교에 보냈다.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에 한이 맺혀서였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엔 중학교에도 진학했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1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위에 언니 오빠들은 출가했는데 나랑 남동생이 남아 있으니

어머니께서 어떻게든 애를 쓰시면서 살았어요.

그 살아온 길은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지. 그때만 해도 학교에 월사금을 냈는데

어머니가 너무 힘드시니 '나 이제 그만 둘래'하고 나와서 농사일을 거들었죠."

 

한때 국민학교 교사를 꿈꾸기도 했던 그는 그 뒤로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19세에 결혼을 해 21녀를 낳았고 그다지 가정적이지 않았던 남편 대신

자녀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나는 어렵게 살았어도 자식들은 나같이 만들면 안 된다는 정신 하나로 버텼다"

김 할머니는 "노점 장사도 해보고 다 했다. 도둑질 빼고는 다 했다고 할 정도로

안 해본 게 없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80대에 접어들었다.

김 할머니는 지난 5년간 건강이 악화해 병원 신세를 여러 번 졌고

지난해 5월에는 대장암 수술도 했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 진료를 봐야 하는 '환자'라고 김 할머니는 설명했다.

 

하지만 자녀들의 응원을 받으며 60여년 만에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일은 새로운 활력이 됐다.

 

김 할머니는 "허리도 아프고 힘들기도 하지만 나는 강하다. 엄마는 강한 것"이라며

"이제 나이가 있으니 좀 힘들 것도 같지만

그래도 정신력으로 버티며 한번 해보려고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건강이 따라주면 고등학교도 갈 생각"이라며

"공부해서 뭔가 이루고 싶은 건 없다.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두려워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많은 이들,

특히 인생의 후배들을 향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도 할 수 있죠.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삶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고, 우리 같은 사람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사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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