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괴테의 연인들

甘冥堂 2024. 4. 2. 16:58


곱게 펼쳐진 인생에서 괴테는 무수한 여자와 사귀면서 사랑에 관한 글을 많이 남겼다.
오죽하면 괴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괴테와 사귀었던 여자들도 같이 연구해야지

괴테를 알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다.

괴테는 연애를 통해 시인으로서의 생명력과 감성을 습득했으며
이는 죽는 그 날까지 마르지 않는 위대한 시상의 밑거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괴테가 만난 수많은 여인들은 종종 괴테가 새로운 분야의 눈을 뜨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

괴테는 자신의 연인을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대표자가 파우스트의 그레트헨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샤를롯테 부프 (1753년 ~ 1828년)이다.

그레트헨은 괴테가 십대 때 첫 눈에 반한 첫사랑의 대상이었고,
샤를롯테는 괴테의 친구의 아내였다.

사귀던 여자들과의 나이 차도 폭 넓어서 19살에는 어머니의 친구이자 26살이나 연상인

주잔네 폰 클레텐베르크 (1723년 ~ 1774년)란 여자와 사귀었고

그보다 훨씬 뒤인 74살에는 55살 연하인 울리케 폰 레베초프 (1804년 ~ 1899년)에게 청혼하기까지 한다.

첫 결혼은 16살 연하인 크리스티아네 폰 불피우스 (1765년 ~ 1816년)와 했으며

그녀에게서 아들인 아우구스트 폰 괴테 (1789년 ~ 1830년)를 얻었다.

그런데 괴테는 크리스티아네와 동거한 지 18년이나 지난 1806년에서야 혼인했고

결혼 9년만에 크리스티아네는 병사했다.

크리스티아네는 평민이어서 주변에서는 괴테의 사실혼을 말렸으며

괴테와 크리스티아네의 관계를 곱게 보지 않았다.

더군다나 크리스티아네는 사교적으로 활발한 인물도 아니었고

식자층의 교양이 있는 인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친하게 지내던 샤를로테 슈타인과의 관계는 이 일로 인해 잠시 껄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크리스티아네는 괴테가 가진 작가로서의 자유분방함과 감수성을 이해했고

그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해 여러 시문학을 남기게 했다.

아내 사후에도 여러 여자와 사귀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울리케 폰 레베초프라는 여성이었다.
울리케는 괴테를 만날 당시 17세였다.

사랑을 처음 느꼈을 때 괴테는 이젠 늙은이가 된 스스로를 타이르며 나무랐지만
내내 사랑을 앓다가 2년 뒤인 1823년에는 울리케에게 청혼을 하고 만다.
이런 청혼에 친구이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은 배를 다 잡고 웃으면서
"일흔 넷에 19살 여자를 사랑하다니 이건 심하다고!"라면서 놀려댔다.

하지만 괴테의 사랑은 마음에서 우러난 진심이었다.
괴테는 의사까지 찾아가 이 나이에 혼인을 할 수 있냐는 진단까지 받았고
의사는 매우 건강하니 걱정할 것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괴테를 놀리던 공작 아우구스트도

괴테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깨닫고 괴테의 부탁을 승낙하여
레베초프 부인을 찾아가 괴테를 소개하고 괴테가 부인의 딸을 좋아한다고 뜻을 전한다.

그러자 울리케의 어머니인 레베초프 부인는

"괴테 씨야 너무나도 유명하고 그런 분이 우리 집안과 한 집안이 되는 건 나쁘진 않지만 아무래도..."

라는 식으로 곤란하단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울리케가 괴테에게 보낸 시선은 연인에 대한 성애라기보다는

이름 높고 위대한 인물에 대한 존경 섞인 애정에 가까웠고
괴테의 아들인 아우구스트 또한 결혼을 결사반대했기 때문에 혼인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도 괴테는 이 사랑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나는 사랑을 하고 그리하여 사랑받으면서 행복했노라."
"Hier war ich glücklich, liebend und geliebt."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냥 걷기만 하세요  (0) 2024.04.03
노년의 자세  (0) 2024.04.02
기이한 말  (0) 2024.03.31
친구  (0) 2024.03.30
호작질과 저지레  (0) 202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