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厭家鷄愛野雉

甘冥堂 2024. 4. 12. 06:52

중국 남북조 시대에 하법성(何法盛) 이라는 사람이 쓴 역사서 <진중흥서(晉中興書)>에
가계야치(家鷄野雉)라는 말이 나온다.

집에 있는 닭은 싫어하고 들에 있는 꿩은 좋아한다는 말로써
염가계애야치(厭家鷄愛野雉)라고도 한다.

염가계 애야치 : 집에 있는 닭은 싫어하고 들에 있는 꿩은 좋아한다는 고사성어

부부가 50대 중년, 지천명의 시기까지 수십 년을 같이 살게 되면
권태기는 물론 폐경기, 갱년기까지 경험한다.
연애 시절이나 신혼 시절에 느꼈던 상대방에 대한 성적인 감흥이 줄어들고 정력도 떨어지게 되면
배우자와 적벽대전을 치르는 것도 뜸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부부끼리 섹스를 하면 “가족끼리 왜 이래” 또는 “변태 아냐”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섹스리스 부부가 흔해진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집에 있는 닭은 싫어하고 들에 있는 화려해 보이는 꿩에 눈길을 주기 마련이다.
싫어하다는 의미를 지닌 ‘염(厭)’자는 ‘물리다’, ‘가위눌리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집에서 매일 보는 배우자는 물리고, 이제는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 형국이 되어가는 것이다.

반면에 밖에서 새롭게 보거나 가끔 만나는 들꿩은

볼 때마다 새록새록 하고 만나면 원기가 솟는다.
특히, 지천명의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정력도 감소되어

집에 있는 닭에게 쏟을 정력이 부족하게 된다.
이런 빈틈을 파고들어 오는 것이 바로 화려해 보이는 들꿩이다.
그래서 지천명시기의 중년 부부들이 동창회, 친목회,

각종 동호회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은 집에 있는 닭이 결혼기념일, 첫 만남의 날, 눈 오는 날 등에
“여보 오늘 당신 좋아하는 안주와 좋은 술 준비했어, 일찍 들어올 거지?”라고 메시지나 톡을 보낸다.
그러면 이걸 받은 당사자는 지천명의 시기라 정력도 달리는 관계로 밤이 무서워
순식간에 가위에 눌리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비슷한 상황에서 들에 있는 꿩이 “자기야, 오늘 눈이 오네, 시간 나면 우리 거기서 만날까?” 라고

역시 메시지나 톡을 보낸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1초도 채 안돼서 “오우 케이”라는 답장 문자와 함께

윙크, 하트, 엄지 척 이모티콘을 줄줄이 보낸다.
이것이 지천명 시기를 맞은 수많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염가계애야치 하는 현실이다.

기왕 살 거면 애가계염야치(愛家鷄厭野雉)도 생각해 보자

집에 있던 닭도 처음부터 싫었던 것이 아니고, 물리지도 않았고, 가위눌릴 정도는 아니었다.
남녀가 사랑을 하면 일시적인 특수 시각상실 현상이 일어난다.
단점은 안보이고 장점만 보이는 현상이다.
그러던 것이 적벽대전도 치르고 살을 비비며 살다 보면 차츰 정상적인 시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연애 시절에는 보이지 않았던 단점들이 마구 드러나게 된다.

사랑의 이런 속성을 두고 미국 영화배우 존 베리모어는
“사랑은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서부터

그녀가 꼴뚜기처럼 생겼음을 발견하기까지의 즐거운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여성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술이나 잔뜩 취해 들어오고 큰소리나 치는 남편들이
아귀찜에 나오는 아귀처럼 생겼음을 발견하기 전까지의 즐거운 시간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현상을 두고 배우자가 단점을 감췄기 때문이라며  배우자의 탓만으로 돌린다.
부부간의 갈등과 불행함이 엿보인다.

집에 있는 닭과도 처음 만났을 때는 춘향과 이몽룡,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보다 더 열렬하게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것이 다 그때 분비되었던 사랑 호르몬의 역할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사랑의 신 에로스는
화살촉에 사랑 호르몬을 잔뜩 발라서 그걸 연애하는 두 남녀에게 쏜다.
그 호르몬 약효가 있는 동안에는 단점이 거의 안 보이고

오직 사랑스런 장점만 보이며 사랑에 푹 빠지게 한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너희들의 결혼만은 안 된다.”며

강경하게 나오며 협박해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고 당사자들은 “우리들의 사랑은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이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사랑의 순교자를 자청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한 시간씩 서로 바라만 봐도 애정이 철철 흐르고 마냥 좋았다.
그러나 50대 지천명 시기 이후에는 1초만 바라보면
“무슨 일 있어? ” 또는 “할 말 있어?”라며 사무적으로 묻는 무미건조한 사이가 된 지 오래이다.

연애 시절 그토록 사랑해서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은 남녀들이 영원은 커녕
몇 년도 못 돼서 법원 가서 도장 찍고 남남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물론, 모든 부부가 연애 시절 그 감정대로 살아갈 수도 없거니와
살면서 드러나는 가치관과 성격의 차이가 현저할 때는 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살면서 “내가 속아서 살았지”,

“저 원수를 만나서 내 인생이 요 모양 요 꼴이 됐어”라고 말해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기왕에 같이 쭉 살아갈 거면 염가계애야치(厭家鷄愛野雉)보다
집에 있는 닭은 사랑하고 들꿩은 싫어하는 애가계염야치(愛厭家鷄厭野雉)로 바꿔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집에서 서로‘소 닭 보듯 닭 소 보듯’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친밀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50대가 되니까 애정 대신에 그동안 살아온 정이나 의리 때문에 살고,

배우자가 샤워하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집닭하고는“가족끼리 왜 이래?”하면서 적벽대전을 안 치르거나 제대로 치러지지 않는다.
집에 있는 닭하고는 잘 안 되는데 밖에 나가 들꿩을 보면

분위기 좋은 음식점이나 술집, 모텔에 가고 싶어 안달한다.
집닭이 아프면 골치가 아프고 들꿩이 아프면 가슴이 아픈가? 이것은 반칙이다.

부부간에 갈라진 틈새가 아주 넓다고 해도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므로 차근차근 메워나가야 한다.
그 한 걸음을 등산, 여행, 영화나 연극 감상 등의 취미생활을 맞추는 것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해 부부간에 가장 오래되고 크게 돈 안 들이고 언제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공동의 취미생활은 같이 적벽대전을 치르는 것이다.


집에 있는 닭하고 오랜 세월 살아와서 물린다면

삼고초려해서 얻은 공명과 오관참육장을 한 관우 등을 대동해서 적벽대전을 한번 웅장하게 치러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집닭한테도 물리지 않고 새로운 장점이 다시 보이고 화목한 부부관계가 되지 않을까?
지천명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부간에 살갑게 적벽대전을 치렀다고

에로스가 덤으로 사랑의 화살을 다시 한 번 쏴주면 금상첨화가 된다.
그 화살은 빗맞기만 해도 효과 만점이다.


책 <두 구멍이야기> 에 나오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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