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사자성어 10

甘冥堂 2024. 4. 23. 14:06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사자성어 10

 

 

1.難得糊塗

청나라 때 서화가 정섭(鄭燮·1693~1766)의 글씨에 이런 내용이 있다.

'총명하기가 어렵지만 멍청하기도 어렵다.

총명함을 거쳐 멍청하게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집착을 놓아두고,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어찌 뒤에 올 복의 보답을 도모함이 아니겠는가?

 

聰明難糊塗難

由聰明轉入糊塗更難.

放一著退一步當下心,

安非圖後來福報也.

 

멍청하기가 총명하기보다 어렵다.

가장 어려운 것은 총명한 사람이 멍청하게 보이는 것이다.

 

난득호도(難得糊塗)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호도(糊塗)는 풀칠이니,

한 꺼풀 뒤집어써서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난득(難得)은 얻기 어렵다는 뜻이다.

난득호도는 바보처럼 굴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다들 저 잘난 맛에 사니, 지거나 물러서기 싫다.

손해 보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더 갖고 다 가지려다가 한꺼번에 모두 잃는다.

결국은 난득호도의 바보정신이 이긴다.

 

 

 

2.天道酬勤

하늘 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천도수근(天道酬勤)

황천불부고심인(皇天不負苦心人)과 같이 자주 인용된다.

중국 공산당 시진핑 주석의 가훈(家訓) 으로 도 유명한 글귀이다.

 

글귀의 의미는

하늘의 도리는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반듯이 댓가를 주는 것이고

천도수근(天道酬勤)

하늘은 애쓰는 사람의 뜻을 결단코 배신하지 않는다

황천불부고심인 (皇天不負苦心人)는 뜻이다.

 

 

 

3.澹泊明志 寧靜致遠 (담박명지 영정치원)

 

-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해야 뜻을 밝게 가질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한 포부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은 제갈량(諸葛亮)

'계자서(戒子書)'에 인용한 글로 유명하다.

 

'계자서'는 제갈량이 전장에서 죽기 직전,

8세 된 아들 제갈첨(諸葛瞻)에게 남긴 유언과 같은 글이다.

한자로는 총 86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이나,

그 안에는 아비의 절절한 정과 함께 그가 평생 지켜온 인생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부군자지행, 정이수신, 검이양덕)

무릇 군자의 행동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비담박무이명지, 비녕정무이치원)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펼칠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도달할 수 없다.

 

夫學須靜也, 才須學也.

(부학수정야, 재수학야)

무릇 배움은 고요해야 하며, 재능은 모름지기 배워야 얻을 수 있다.

 

非學無以廣才, 非靜無以成學.

(비학무이광재, 비정무이성학)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慆慢則不能硏精, 險躁則不能理性.

(도만즉불능연정, 험조즉불능리성)

오만하면 세밀히 연구할 수 없고, 위태롭고 조급하면 본성을 다스릴 수 없다.

 

年與時馳, 志與歲去, 遂成枯落, 多不接世, 悲嘆窮廬, 將復何及也.

(년여시치, 지여세거, 수성고락, 다불접세, 비탄궁려, 장복하급야)

나이는 시간과 함께 내달리고, 뜻은 세월과 함께 떠나가,

마침내 낙엽처럼 떨어져 세상에서 버려지니,

궁한 오두막집에서 탄식해본들 장차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제갈량의 마음에 공감할 것이다.

특히 나이든 사람이라면 '궁한 오두막집에서 탄식한다'

'궁려(窮廬)의 탄식'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흰 머리만 늘어나는

자신을 볼 때면 더욱 그럴 것이다. 누구는 '그럭저럭 지내다 보니

반생이 어그러졌다'고 탄식할 것이고,

누군가는 '고식적인 안일만 꾀하다가 허송세월 했다'고 탄식할 것이다.

 

제갈량은 17세에 혼인을 했는데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부득이

동생의 아들 제갈교를 양자로 들였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47세에 아들 제갈첨이 태어났다.

그 귀한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보내준 편지가 바로 계자서(誡子書)’이다.

 

나중에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諸葛瞻)

유비의 아들인 2대 황제 유선(劉禪)의 행군호위장군(行軍護衛將軍)으로 중용되었다.

 

훗날 제갈첨(諸葛瞻)은 위나라 등애(鄧艾)와 싸울 때 심모원려(深謀遠慮)

전략을 세우지 못해 패했지만, 우국의 굳센 뜻은 버리지 않고 장렬히 전사했으니

부친의 유훈을 절반은 지킨 셈이다.

 

제갈량은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고, 병법에도 정통한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으로 아들을 가르쳤을까?

 

사실 제갈량은 아들 제갈첨이 담박하기를, 즉 욕심이 없기를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담박하게, 즉 목표도 없고 이룬 바도 없이 속세를 떠나

산에 은거하여 무위도식 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또한 아들이 '영정(寧靜)', 즉 평온하고 안일하게 세월을 보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갈량은 아들이 '담박명지(澹泊明志)' 하여 마음에 잡념이 없기를 바랐다.

욕심이 없어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더욱 명확하고

강한 야망이 생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상태라면 명성과 관심에 얽매이지 않고,

세간의 화려한 유혹에 잠식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담박(淡泊)의 기운은 물이 세차게 흘러 생기는 안개처럼 부드러우며,

비바람이 몰아쳐도 변함없이 꼿꼿이 서 있는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의연하다.

이와 함께 제갈량은 아들에게, 영정치원(寧靜致遠), '마음이 안녕하고

평정해야 멀리 다다를 수 있다'는 훈계를 했다.

선량한 마음을 간직하고 경솔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음이 평정해야 높디높은 하늘처럼 넓고 깊을 수 있다.

 

'담박'의 기운으로 사람의 뜻은 더욱 확고해 질 것이며,

'영정(寧靜)'의 마음으로 사람은 지혜를 더해 만물을 통찰하고 당황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궁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세상을 얻었을 때는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람이 눈앞의 득실을 따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세상을 아우르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마음이 뿌옇게 흐려져 있고

욕심의 찌꺼기가 많은 사람은 올바른 뜻을 명확하게 세우기가 힘들다.

또한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치는데 멀리 바라보는 안목이 생길 리가 없다.

 

담박함과 고요함이 위인들만을 위한 미덕은 아니다.

그것은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유용한 덕목이다.

 

그런데 그것은 한순간의 생각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평소 마음의 수양을 통해 서서히 길러지는 것이다.

조용한 곳에서 차분한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누구나 느끼듯이 자기 자식 가르치기가 제일 어렵다.

부모로서 몇 마디 좋은 말이라도 해줘야 할 텐데 이게 참 어렵다.

그래서 옛 글에서 지혜를 빌려 보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인들이 신기묘산(神機妙算)이라고 칭송하고,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지혜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제갈량의 사례는 참고할만하다.

 

 

제갈량(諸葛亮)'계자서(戒子書)'

 

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부군자지행, 정이수신, 검이양덕)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비담박무이명지, 비녕정무이치원)

夫學須靜也, 才須學也.(부학수정야, 재수학야)

非學無以廣才, 非靜無以成學.(비학무이광재, 비정무이성학)

慆慢則不能硏精, 險躁則不能理性.(도만즉불능연정, 험조즉불능리성)

年與時馳, 志與歲去, 遂成枯落, 多不接世, 悲嘆窮廬, 將復何及也.

(년여시치, 지여세거, 수성고락, 다불접세, 비탄궁려, 장복하급야)

 

무릇 군자의 행동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펼칠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도달할 수 없다.

무릇 배움은 고요해야 하며, 재능은 모름지기 배워야 얻을 수 있다.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오만하면 세밀히 연구할 수 없고, 위태롭고 조급하면 본성을 다스릴 수 없다.

나이는 시간과 함께 내달리고, 뜻은 세월과 함께 떠나가,

마침내 낙엽처럼 떨어져 세상에서 버려지니, 궁한 오두막집에서 탄식해본들

장차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4.上善若水

가장 으뜸이 되는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초나라) 도가철학의 시조인 노자( 老子)가 지은

도덕경 8장 역성장(易性章)에 나오는 말이다.

무위자연을 추구하는 도교의 이상적인 생활의식을 물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물은 모든 만물의 생명을 생장케 하고, 항상 아주 낮은 곳을 찾아 흐른다.

물은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의 모양이 되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모양이 둥글게 된다.

물은 자신의 모습을 고정시키지 않고 항상 변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상대방을 거스르는 일이 없으며, 그 어떤 모양으로도 바뀌는 유연성(柔軟性)을 가진다.

그래서 누구와도 다툼이 없다.

 

노자는 사람은 세상을 물처럼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면서 물의 좋은 가르침을 일곱 가지를 말한다(水之七善).

 

물은 낮은 땅에 즐겨 임하고(居善地)-겸손,

물은 연못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心善淵)-포용,

물은 아낌없이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푼다(與善仁)-대의.

물소리는 훌륭하고 믿음이 있으며(言善信)-신의,

물은 깨끗하게 다스려지게 하고(正善治)-청정,

물은 일을 맡으면 잘 융화하여 처리하고(事善能)-화합

물은 옳다고 여길 때를 골라 움직인다(動善時).-지혜

 

강하면서 유연하고, 겸허하면서 유덕한 것이 물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5.實事求是

유래: 한서(漢書)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에서 유래한 성어다.

 

한나라 효경제(孝景帝)의 아들인 하간헌왕(河間獻王) 유덕(劉徳)

학문을 닦고 옛것을 좋아하였으며 사실에 토대를 두고 진리를 탐구하였다(實事求是).

백성들로부터 좋은 책을 구하면 반드시 새로 베껴서 주고 원래 진본은 자기가 소장하였다.

비싼 값으로 책을 구하니, 사방에서 천 리를 멀다 않고 달려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책을 헌왕에게 바치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하간헌왕이 구입하여 소장한 책이 한나라 조정에서 보관하는 책과 대등할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한편 조선시대 대표적 실학자인 김정희는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에서

성현의 가르침은 실제로 몸소 이행하는 데 있으니, 공허한 이론은 숭상하지 말아야 하며,

실체가 있는 것은 마땅히 탐구하고 허황된 것은 버려야 한다.

널리 배우고 힘써 행하되 오로지 實事求是 한마디 말을 중심으로 실천하면 된다고 했다.

그가 북한산 비석을 해석해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내고

황초령순수비를 해석해 신라가 최북단 함흥지역까지 관할한 사실을 발견한 일들이

실사구시 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6.舍得

버린다는 뜻의 와 얻는다는 뜻의 이 함께 붙어있다.

서로 상반되는 가치가 결합되어 있다.

즉 얻으려면 반드시 버려야하고, 버려야만 비로소 얻음이 있다.

먼저 많이 주어야 많은 얻음이 있다.

得失이 아니다. 얻은 후에 주는 것이 아니다. 버림이 먼저다.

 

한편 중국의 유명한 술 타패사득주(沱牌舍得酒)

사득주(舍得酒)

목에 걸림이 없고(不上口),

입이 마르지 않고(不口干),

숙취가 없고(不晕醉),

간을 상하지 않게(不伤肝)한다는

4()의 특징을 자랑한다.

 

사득(舍得)을 직역하면

'기꺼이하다' '아깝지 않다'라는 뜻이다.

 

더 크게는 버리다 또는 포기하다는 사()

얻다 또는 취하다의 득()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작명이니 버림과 취함의 미학을

중시하는 중국의 유교, 불교, 도교의 철학사상이

모두 녹아있는 철학적 용어이기도 하고,

중국적인 지혜와 현대사회의 처세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7.和爲貴

화합을 귀하게 생각함.

예의 쓰임에는 화합이 귀하다.

 

<논어학이(論語學而)>

유자가 말했다(有子曰). “예의 쓰임새에서(禮之用) 조화가 가장 귀중하다(和爲貴).

선왕의 도에서도(先王之道) 이 조화를 아름답게 여겼다(斯爲美).

하지만 대소를 막론하고 조화를 행하려면(大小由之) 행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有所不行).

그것은 조화를 위해 조화를 행하려 했기 때문이다(知和而和).

예로써 조화를 조절하지 않으면(不以禮節之) 그것 역시 행해질 수 없다(亦不可行也). ”

 

해석: 유자(有子, 기원전 518~?)는 공자(孔子, 약 기원전 551~기원전 49)의 제자이다.

<사기중니제자열전(史記仲尼弟子列傳)>에는

공자가 이미 죽었는데도(孔子旣沒)

제자들을 그를 우러러 사모하였다(弟子思慕).

유약의 얼굴이 공자와 닮아 (有若狀似孔子) 제자들은 서로 상의하여

그를 스승으로 추대하고(弟子相與共立爲師)

마치 공자를 모시듯이 그를 섬겼다(師之如夫子時也)”고 기록되어 있다.

 

예지용(禮之用,), 화위귀(和爲貴)’는 유자가 제출한 주장이다.

()는 춘추(春秋, 기원전 770~기원전 476)시기

전 사회적인 법 제도와 도덕적 규범이었다.

예지용(禮之用,), 화위귀(和爲貴)’의 의미는

예를 활용함에 있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귀중하다는 것이다.

 

 

 

8.海納百川

모든 물줄기는(百川) 바다를 향하고(), 바다는 거부하지 않고 모든 걸 받아들인다()

 

海納百川 有容乃大, 壁立千仞無慾則剛

(해납백천 유용내대, 벽립천인무욕즉강)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이기에 그 너그러움으로 거대하고

바위의 키는 천 길에 다다르나 욕심이 없기에 굳건하다.

-宋 通鑑節要

(마오쩌뚱 집무실에 걸어둔 글이라 한다.)

 

<출전> <三國名臣頌>

 

중국이 최초로 통일된 것은 기원전 221년 진나라 시황제 때였다.

척박한 서쪽에 위치해 가장 뒤떨어졌던 나라가 어떻게 수많은 나라를 제압하고 통일을 이뤘을까?

 

진나라의 동쪽 진출은 역대 왕들의 염원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국력을 키웠고, 무엇보다 유능한 인재 등용에 방점을 찍었다.

 

B.C7세기경 목공은 우 나라 출신 백리해와 제나라 태생 건숙을 재상으로 등용해

개혁정책을 시행, 춘추시대 다섯 패자 중 하나가 됐다.

B.C4세기 말 효공은 한술 더 떠 국내외 유능한 인재를 모집한다는

초현령(招賢令)을 공개적으로 내놓았다.

이때 발탁된 인물이 위나라에서 온 상앙이다.

개혁의 대명사인 상앙은 호적제 정비, 토지제도 혁신 등 소위

상앙 변법(變法)을 시행해 중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위협을 느낀 연··초 등 6국은 소진의 합종책을 채택해 진나라를 견제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진나라는 위나라 출신 장의를 등용해 연횡책을 꾀했다.

장의는 6국을 돌며 합종책은 실질적이지 못하며,

진나라와의 연합만이 살길이라고 설득하여 합종책을 깨뜨렸다.

 

B.C3세기 진시황은 초나라 출신 이사를 객경으로 삼았다.

이사는 외부 인재에 대한 축객령(逐客令)이 떨어졌을 때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시황제에게 올려 철회시켰다.

 

여기에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고,河海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태산불양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讓土壤 河海不擇細流)’가 나온다.

비슷한 말이 중국 동진(東晉)시대 원굉이 지은 삼국명신송에 있다.

"모든 물줄기는(百川) 바다를 향하고(), 바다는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들이 좌우명으로 삼거나 표구해 집이나 사무실에 걸어두는 글귀

"해납백천(海納百川)"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마오쩌둥도 집무실에 이 문구를 걸어놓고 항시 새겼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 나라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력은 별 차이 없었다.

차이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진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보다 열린 자세를 가졌던 것이다.

춘추오패의 리더십을 살펴보면 모두 인재를 중시하는 것이었다.

특히 진나라 역대 왕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인재 욕심이 많았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인재를 발탁했다.

변방국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9.無爲

행해지고 있지만, 그 행함이 보이지 않는 것 - 老子

 

하지 않으면서도 못하는 것이 없다.

부자유스러운 행위. 인위적 행위가 없음.

人爲. 作爲. 有爲의 상대개념

 

노자는 극과 극, 서로 반대되는 것이 합쳐져서 하나를 이루고,

인류(聖人)는 무위(無爲)를 통해서 일을 하되, 말이 아니라 행함으로써 가르친다.

 

無爲 말 그대로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이지만

노자의 무위(無爲)는 인간이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이론)에 의한 인위적인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不言),

(자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라는(行之敎) 것이다.

 

萬物作焉而不辭, 만물은 스스로 움직이니 자연의 힘에 대항(간섭)하지 말 것이며,

生而不有, 자연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爲而不恃, (자연은) 어떤 것에 의지하지 않고 행하며,

功成而不居. (자연은) 새로운 힘이 가하지 않고 이루어진다.

夫唯不居, 是以不去. 새로운 힘을 가하지 않으니, 자연 그대로 움직일 뿐이다.

 

무위(無爲)란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자연의 흐름을 보고, 흐름에 맞게 행하라는 것이다.

또한 행위(行爲)가 끝난 후 그 어느 곳에도 인위(人爲)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10.自强不息 厚德載物 (자강불식 후덕재물)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해 강해지고

덕을 쌓은 후에 재물을 쌓아라. -칭화대학교 교훈

 

하늘의 운행이 건실함 같이

군자는 자신을 강하게 하는데 쉬지 말고

땅의 두터움 같이

군자는 덕을 두텁게 쌓은 후 재물을 쌓아라.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 地勢坤 君子以厚德載物

-주역에서 인용되었다 함.

 

주역(周易) 64() 중 첫 괘인 건괘(乾卦)’

천행건 군자이 자강불식(天行健 君子以 自强不息)이란 말이 나온다.

하늘의 운행은 건장하니 군자는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강건하여 쉼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연은 춘하추동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돌아오고, 뜨거운 여름이 극에 달하면

어느덧 서늘한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지고 찬 서리가 내린다.

이렇게 자연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구는 항상 돌아가고, 냇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조수(潮水)는 빠졌다 들어오기를 매일같이 반복한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고, 돌아가지 않는 지구는 밤낮이 없는 지옥이다.

끊임없이 제 할일을 해야 하는 것, 어찌 보면 그것이 만물의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우리 인간도 저 자연의 순환을 본받아서 한시도 쉬지 않고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이나 국가나 힘들고 어려울 때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화두로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

특히 중국의 변혁기에는 '강해야 살아남는다'는 구호로 많이 사용하였다.

 

이와 더불어 지세곤 군자이 후덕재물(地勢坤 君子以 厚德載物)’이란 말이 있는데

이 또한 주역(周易)에서 이르는 말로서

넓은 땅에 저렇게 두텁게 흙이 쌓여 있듯이 군자는 자신의 덕을 깊고 넓게 쌓아서

만물을 자애롭게 이끌어 나가라는 뜻이다.

두터운 덕을 베풀어 우주만방을 포용하라는 말로도 들린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재물욕, 권력욕, 명예욕 등 끝이 없다.

하지만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쌓으면 반드시 크게 망한다(甚贓必甚亡)”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 경책하고 있다.

 

다시말해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强不息 厚德載物)이란 이 여덟 글자는

주역(周易)의 건()과 곤() 두 괘의 괘사에서 비롯된 말인데

해와 달의 굳건한 운행을 본받아 스스로 힘씀에 쉼이 없으며

두터운 땅이 자애롭게 만물을 싣고 기르듯 덕행을 쌓아 관대 하라는 뜻이다.

 

즉 우리의 조상과 옛 어른들은 <천행(天行)-하늘의 운행>을 살피고 그 굳건함을 본받아

자강불식(自强不息)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여 강해지고

후덕재물(厚德載物)만물을 싣고 생장시킴을 본받아 덕행을 쌓고 관대하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운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덕을 쌓는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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