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이백- 술잔을 들어 명월을 맞이하고

甘冥堂 2024. 6. 12. 10:28

술잔을 들어 명월을 맞이하고..

 

먼 타향의 나그네가 되었을 때, 환하게 비쳐오는 달빛은 어떤 느낌인가?

특히 중추절에 달빛은 환하고, 날씨는 서늘해지기 시작하는데,

멀리서 귀뚜라미까지 울어대면, 사람의 감정이란 더욱 처량하고 쓸쓸해지기 마련이다.

이럴 때 술 생각이 나지 않으면 그것 또한 이상하지 않은가?

 

명대 오빈(吳彬)은 술 마시기 좋을 때를

"봄날 교외에서 천지에 제사지낼 때, 꽃이 필 때, 맑은 가을날, 신록이 질 때,

비가 갤 때, 눈이 쌓일 때, 새 달이 떴을 때, 저녁이 서늘할 때"라고 하였다.

이것을 참고로 한다면 거의 봄과 가을철이 술 마시기에 적당할 때다.

 

이백은 24세에 고향을 떠나 잠시 안륙(安陸)시기를 제외하면 거의

정착하고 생을 꾸린 적이 없이 천하를 떠돌아다녔다. 이런 그가,

특히 타고난 감성을 지닌 그가 달을 보면 술이 생각나지 않겠는가?

 

이백에 있어 달은 고향을 생각나게 하고, 술잔을 들게 하여 주흥을 돋우어,

결국 시를 짓게 만드는 중요한 작용을 한다.

달로 인해 고향을 생각하는 천고의 명시 <정야사(靜夜思)>를 보자.

 

牀前明月光 (상전명월광) 침상 머리에 명월이 비치는데

疑是地上霜 (의시지상상) 땅에 서리가 내렸나?

擧頭望山月 (거두망산월) 머리를 들어 산 위의 달을 바라보고

低頭思故鄕 (저두사고향)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이백은 이 짧은 몇 구절 안에서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서리가 내린 것 같기도 한

달빛의 특성을 표현하였을 뿐 아니라 문득 고향을 생각나게 만드는 달의 역할을 드러내었다.

밝은 달빛으로 인해 잠을 깨었는데, 그 달로 인해 고향이 생각나니,

작자는 또한 술을 찾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우인회숙(友人會宿)>에는 이러한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난다.

 

滌蕩千古愁 (척탕천고수) 천고의 근심을 풀어내려면

留連百壺飮 (유련백호음) 연달아 백 병의 술을 마셔야지.

良宵宜淸談 (양소의청담, 이렇게 좋은 밤엔 청담을 나누는 것이 적당하고

皓月未能寢 (호월미능침) 밝은 달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네.

醉來臥空山 (취래와공산) 취하여 텅빈 산에 누우면

天地卽衾枕 (천지즉금침) 천지가 곧 금침인 것을.

 

타향의 나그네가 되면 주변의 조그만 충격과 사물에도 쉽게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세상의 모든 근심을 혼자 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 십상이다.

그러니 술이 없을 수 있겠는가?

 

<월하독작(月下獨酌)>을 보면, 3에서도

 

誰能春獨愁 (수능춘독수) 그 누가 봄날 수심을 떨칠 수가 있으랴

對此徑須飮 (대차경수음) 이럴 땐 곧 모름지기 술 마실 뿐.

 

이라고 하여, 앞의 <우인회숙>에서

"천고의 근심을 풀어내려면, 연달아 백병의 술을 마셔야지."라고 했던 논조로,

술로써 근심을 잊기를 바랬다.

그렇다고 술로 모든 근심을 없앨 수 있을까?

 

이백의 말처럼 연달아 백병의 술을 마신다면 천고의 근심을 풀 수 있을까?

그 술은 어떤 술일까? 천일주(千日酒)라면 가능할까?

수신기(搜神記)에 의하면, 千日酒는 중산(中山)의 적희(狄希)라는 사람이 만든 술로써,

한모금만 마셔도 천일을 간다고 한다. 이 술이라면 천고의 근심을 풀 수 있을까?

 

천하의 이백이라고 하더라도 술로써 천고의 근심을 어찌 풀 수 있었겠는가?

그렇기에 그는 <宣州謝朓樓餞別校書叔雲>에서

 

抽刀斷水水更流 (추도단수수갱류) 칼을 빼어 물을 잘라도 물은 다시 흐르고

舉杯消愁愁更愁 (거배소수수갱수) 술잔을 들어 근심을 없애려 해도 근심은 더욱 근심스럽다. 고 하였다.

 

그래서 <月下獨酌>3에서,

 

三月咸陽城 (삼월함양성) 춘삼월 함양성은

千花晝如錦 (천화주여금) 온갖 꽃이 비단을 펴 놓은 듯.

誰能春獨愁 (수능춘독수) 그 누가 봄날 수심을 떨칠 수가 있으랴.

對此徑須飮 (대차경수음) 이럴 땐 곧 모름지기 술 마실 뿐.

窮通與修短 (궁통여수단) 곤궁함과 영달함, 수명의 장단은

造化夙所稟 (조화숙소품) 태어날 때 이미 다 정해진 것이고

一樽齊死生 (일준제사생) 한 통 술이 生死와 같고

萬事固難審 (만사고난심) 세상의 온갖 일 정말로 알기가 어렵다.

醉後失天地 (취후실천지) 취하면 세상천지 다 잊어버리고

兀然就孤枕 (올연취고침) 쓰러져서 홀로 잠들면

不知有吾身 (부지유오신) 내 몸이 있는지 알지 못하니

此樂最爲甚 (차락최위심) 이런 즐거움이 최고더라.

 

라고 했던 것이다.

'곤궁함과 영달함', '수명의 장단'은 이미 정해져 있기에,

인간으로써 어찌할 수 없음을 이백은 이미 절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중요한 관건인 生死觀만큼

술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그는 "취하여 세상천지 다 잊어버리고, 내 몸이 있는지 알지 못하니,

이런 즐거움이 최고더라"고 설파하였다.

 

나아가 그는 <月下獨酌> 2에서

 

賢聖旣已飮 (현성기이음) 이미 청주와 탁주를 다 마셨으니

何必求神仙 (하필구신선) 굳이 신선이 되기를 바랄소냐.

三杯通大道 (삼배통대도) 석 잔이면 대도에 통하고

一斗合自然 (일두합자연) 한 말이면 자연과 하나 된다.

고 했던 것이다.

 

옛 청언(淸言),

透得名利關, 方是小休歇 (투득명리관 방시소휴헐);

명예와 이익의 핵심을 꿰뚫어 체득하는 것이 바로 마음의 조그만 안정이고,

透得生死關, 方是大休歇 (투득생사관 방시대휴헐)

삶과 죽음의 핵심을 꿰뚫어 체득하는 것이 바로 마음의 커다란 안정이다.

고 했다.

 

이백도 달관하지 않고서는 천고의 시름을 풀어낼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人生達命豈暇愁 (인생달명기가수)

인생에서 자신의 운명을 달관하면 어찌 근심할 여가가 있겠는가? <양원음>라고 했고,

陶然共忘機 (도연공망기)

거나하게 취하여 교활한 속된 마음을 잊는다"(<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라고 했던 것이다.

 

이쯤해서 이백은 달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지녔는지,

<古朗月行(고랑월행)>을 보자.

 

小時不識月 (소시불식월) 어려서는 달을 잘 몰라

呼作白玉盤 (호작백옥반) 백옥 쟁반이라 부르기도 하고

又疑瑤臺鏡 (우의요대경) 또 혹 선녀가 화장하던 거울인 듯

飛在青雲端 (비재청운단) 푸른 하늘 끝에 걸려있었지.

仙人垂兩足 (선인수양족) 신선이 두 다리를 쭉 뻗고

桂樹何團團 (계수하단단) 계수나무는 얼마나 둥글던가?

白兔搗藥成 (백토도약성) 하얀 토끼가 약방아를 다 찧으면

問言與誰餐 (문언여수찬) 누구에게 먹이려는지 물어보네.

蟾蜍蝕圓影 (섬서식원영) 두꺼비가 둥근달의 형상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大明夜已殘 (대명야이잔) 휘영청 밝은 밤도 이미 기울어지고.

羿昔落九烏 (예석낙구오) 그 옛날 羿가 아홉 마리 홍곡을 떨어트려

天人清且安 (천인청차안) 하늘과 사람이 모두 편안했다네.

陰精此淪惑 (음정차윤혹) 저 달은 이처럼 야금야금 이지러져

去去不足觀 (거거부족관) 갈수록 볼품이 없어지리니.

憂來其如何 (우래기여하) 근심이 어떠하겠는가?

凄愴摧心肝 (처창최심간) 슬퍼서 가슴이 찢어지누나.

 

이 시는 천자의 눈을 흐리게 하여 조정을 어지럽히는 간신배를 풍자한 것이지만,

달은 곧 천자를 비롯하여 세상의 모든 사물을 밝히는 존재로 인식된다.

아울러 달의 세계는 곧 신선의 세계이며 이상향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두꺼비가 야금야금 갉아먹어서 이지러지는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이백은 달을 신선세상에 있다는 瑤臺에서 仙女가 사용하던 거울()인 듯 착각할 정도였기에,

그 달 속에는 당연히 신선이 한가롭게 두 다리를 뻗고 앉았고,

토끼는 아마도 不死藥을 찧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다시 <파주문월(把酒問月)>을 보자.

 

靑天有月來幾時 (청천유월내기시) 푸른 하늘의 달은 언제부터 있었는가?

我今停杯一問之 (아금정배일문지) 나 지금 술잔을 멈추고 한 번 물어 보노라.

人攀明月不可得 (인반명월불가득) 사람이 밝은 달을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지만

月行卻與人相隨 (월행각여인상수) 달은 오히려 사람을 따라 오는구나.

皎如飛鏡臨丹闕 (교여비경임단궐) 떠다니는 거울처럼 밝게 선궁(仙宮)에 걸려서

綠煙滅盡淸輝發 (녹연멸진청휘발) 푸르스름한 안개가 사라지고 나니 맑은 빛을 내는구나.

但見宵從海上來 (단견소종해상래) 다만 밤이면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만 볼 뿐

寧知曉向雲間沒 (영지효향운간몰) 어찌 새벽에 구름 사이로 지는 것을 알리오?

白兎搗藥秋復春 (백토도약추부춘) 토끼는 일 년 내내 불사약을 찧고

嫦娥孤棲與誰鄰 (항아고서여수린) 항아는 외로이 머물며 누구와 이웃하여 사는가?

今人不見古時月 (금인불견고시월) 지금 사람들은 옛날의 저 달을 보지 못하지만

今月曾經照古人 (금월증경조고인) 지금 저 달은 옛 사람들을 비추었으리라.

古人今人若流水 (고인금인약류수)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 물과 같이 흘러가지만

共看明月皆如此 (공간명월개여차) 함께 달을 보는 것은 모두 이와 같았으리라.

唯願當歌對酒時 (유원당가대주시) 오직 바라노니, 노래하고 술 마실 동안

月光長照金樽裡 (월광장조금준리) 달빛이 술통 속에서 오래도록 빛나기를.

 

달은 세상을 밝히거나 맑게 해주는 존재로써, 모든 사람이 그 밝음을 향유할 수 있지만,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천자조차도 소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人攀明月不可得 (인반명월불가득) 사람이 밝은 달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지만

月行卻與人相隨 (월행각여인상수) 달은 오히려 사람을 따라 오는구나.

라고 했던 것이다.

 

또한 "지금 사람들은 옛날의 저 달을 보지 못하지만, 지금 저 달은 옛 사람들을 비추었으리라."고 하여,

지금의 작자처럼 옛날의 수많은 시인묵객이 저 달로 인해 온갖 시름을 자아내고, 아파하며

술로써 근심을 해소하려했을 것이라 추측했던 것이다.

 

이백이 물 위에 뜬 달을 잡으려고 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고사처럼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었던' 달은

이백과 평생 함께 한 희망, 고향, 친구, 이상향, 낭만 등으로 비유할 수도 있겠다.

 

이백이 청운의 꿈을 안고 에서 장안으로 나오면서 쓴 <峨眉山月歌>에서도,

 

峨眉山月半輪秋 (아미산월반륜추) 아미산의 달 가을철인데도 반만 둥근데

影入平羌江水流 (영입평강강수류) 그 모습 평강물로 들어와 따라 흐르네.

夜發淸溪向三峽 (야발청계향삼협) 밤에 청계를 떠나 삼협을 향해 가는데

思君不見下渝州 (사군불견하유주) 그대가 그립지만 만나지 못하고 유주로 내려가네.

 

라고 하였는데, 달은 평생 줄곧 이백을 따라 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밝은 달이 사람에게 토끼가 불사약을 찧는 아름답고 밝은 전설만을 전해주던가?

 

앞의 <靜夜思>에서도 보았듯이, 타향의 나그네에게는 외로움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됨과 동시에

酒興을 돕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월하독작(月下獨酌)> 其一을 보자.

 

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꽃 속에 술 한병 놓고

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 친한 이 없이 홀로 마시네.

擧杯邀明月 (거배요명월) 술잔을 들어 명월을 맞이하고

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그림자를 대하니 셋이 되었네.

月旣不解飮 (월기불해음) 달은 술마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影徒隨我身 (영도수아신) 그림자는 다만 나의 몸만을 따르네.

暫伴月將影 (잠반월장영) 잠시 달과 그림자를 짝하여

行樂須及春 (행락수급춘) 모름지기 봄을 즐기네.

我歌月徘徊 (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면 달은 배회하고

我舞影零亂 (아무영영란) 내가 춤추면 그림자는 흐트러지고

醒時同交歡 (성시동교환) 술이 깨었을 때는 함께 즐기지만

醉後各分散 (취후각분산) 술에 취해서는 제각기 흩어진다.

永結無情游 (영결무정유) 영원히 맺은 무정한 사귐

相期邈雲漢 (상기막운한) 아득한 은하 저쪽 세상에서도 기대해본다.

 

이백하면 달을 연상하게 되는 이유를 답해주는 것이 바로 이 시다.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자.

이백이 홀로 술을 마시지만 달빛으로 인해 그림자가 생겨나고,

결국 의인화된 두 가지 사물로 인해 전체가 셋이 된다.

 

그리고서 "노래하거나 춤출 때처럼 술이 깨어있을 때는 함께 즐기지만, 술에 취해서는 제각기 흩어진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혼자 즐기고 혼자 술에 취해 쓰러지는 상황으로,

지극히 외롭거나 혹은 달을 정말로 좋아하는 두 가지 비정상적인 경우일 것이다.

 

즉 이백에게 있어 달은 자신의 이상향(신선세계)과도 같은 존재이면서도

자신과 함께 하는 영원한 친구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 강경범 생활문화칼럼니스트]의 글을 일부 편집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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