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

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 안 진 -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 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오는 午後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불 수 있고,
惡意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 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男便 제 兄弟나 제 子息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幸福해질 수 있으랴.
永遠이 없을수록 永遠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女性이여도 좋고 男性이여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同甲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人品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神仙하며, 藝術과 人生을 소중히 여길 만큼 成熟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必要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神經質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時間이 흘러 내가 平溫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表現으로 忠告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一生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香氣로운 因緣으로 죽기까지 持續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旅行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을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겨질 자신이 돼 있을 걸...
友情이라 하면, 사람들은 管鮑之交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忍耐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道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聖賢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나는 될수록 正直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라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바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友情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 눈 속 침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名聲과 權勢 財力도 重視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에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眞實일지라도
他人을 팔진 않을 것이다

誤解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베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外貌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香氣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成功을 얘기하며
競爭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되
미친 듯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友情과 愛情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友情은 愛情과도 같으며
우리의 愛情 또한 友情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花草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 없이 眩氣症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보고싶어지는 그는 때로 울고 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追憶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追憶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시킬 때는 여왕처럼 품위 있게
군밤은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伯爵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千年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一生을 춥게 살아도 香氣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自由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後悔하지 않듯이,
남의 弱點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의 꽃을 사서
그에게 들려줘도
그는 날 주책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꼽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추 가루가 끼었다고 해도
그의 淑女됨이나 紳士다움을 의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人間的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旅路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聰氣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視力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祝福처럼 웨딩 드레스처럼 壽衣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品種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香氣로 다시 만나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