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甘冥堂 2024. 12. 29. 07:06

폴란드의 한 유태인 마을에 신앙심이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자식을 키웠으며, 가축들을 돌봤다.
그런데 그들 각자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죽기 전에 성지 순례를 한번 다녀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여 앉으면 입버릇처럼 말했다.
“올해는 꼭 성지 순례를 다녀와야지. 더 나이 먹기 전에 다녀와야겠어.”
그러면서 그들 각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으면 꼭 가야지. 소가 배가 잔뜩 불러갖고 있으니
떠날 수가 있어야지.“

“난 신고 갈 구두가 없단 말야. 구두만 사면 더 이상 미루지 않고 꼭 가겠어.”

또 다른 사람은 말했다.
“난 성지 순례를 가면서 그냥 갈 순 없어. 멋진 노래를 부르면서 가야지. 그런데
내 기타가 줄이 끊어졌단 말야. 기타줄만 갈면 떠나야지.”

그렇게 이유를 대면서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성지 순례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일군이 마을에 쳐들어왔다.
마을의 유태인들은 모두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야만 했다.
마을 사람들은 발가벗기운 채 가스실로 향하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집 소가 계속 새끼를 낳았는데도 난 성지 순례를 떠나지 않았어.
그때 충분히 갈 수 있었는데 가지 않았어.”

“난 구두가 없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지. 고무신을 신고서도 갈 수 있었는데 말야.”

음악가는 말했다.
“난 기타 핑계를 댔지. 기타 줄이 없으면 성지 순례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했어.
그냥 노래만 부르면서 갈 수도 있었거든.”

그들은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이미 때는 늦었어!”

그들의 말처럼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가스실 문으로 끌려 들어갔다.

(-류시화 시인의 '구두가 없어도 인도에 갈 수 있다'. 에서)

  ...

지난 8월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고 맘먹었었다. 그러나

“이번 시험이나 치르고 가야지.”
“함께 갈 친구가 없어서.”
“무릎이 아파 자신이 없어서...”

없는 핑계를 만들어가며 결국 실행하지 못했다.
“내년에는 꼭 가야지.”

또 다른 핑계를 만들다가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이렇게 되지나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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