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령도탄(生靈塗炭) - 진흙이나 숯불에 떨어진 고통, 백성들의 어려운 삶
백성들의 생활이 몹시 어려워 고통스러운 지경을 말할 때
塗炭(도탄)에 빠졌다고 말한다.
칠한다는 뜻의 塗(도)는 진흙탕을 말하고,
숯 炭(탄)은 숯불 속에 떨어진 것 같은 괴로움을 준다는 의미다.
바로 塗炭之苦(도탄지고)다.
폭군 桀王(걸왕)의 학정에 신음하는 백성을 湯王(탕왕)이 혁명으로 商(상)나라를 건국하며 구한 내용이
書經(서경)에 실린 데서 비롯됐다.
똑 같은 말로 살아있는 넋(生靈), 즉 백성들의 도탄에 빠지는 듯한 고통이란
이 성어는 출처가 다르다.
蒼生塗炭(창생도탄)이라고도 한다.
중국 二十四史(이십사사)의 하나인 ‘晉書(진서)’에
前秦(전진)의 좌승상이었던 王永(왕영)이 왕명을 하달하는 통지문에서 사용됐다.
이 시대를 즈음한 정세를 간단히 보자.
三國時代(삼국시대) 이후 司馬炎 (사마염)이
265년에 세운 西晉(서진)은
서로 왕권을 다투는 16년간의 팔왕(八王)의 난으로 쇠퇴했다.
司馬睿(사마예)가 東晋(동진)을 건국하여 명맥을 보존할 때
華北(화북)지방에는 이민족이 세운 五胡(오호) 십륙국이 명멸했다.
이중 티베트족인 氐族(저족)의 전진은 3대 苻堅(부견)이 집권했을 때 가장 융성했다.
우리와는 372년 高句麗(고구려)에 順道(순도)를 보내 불교를 전한 인연도 있다.
하지만 부견은 국력을 믿고 너무 자주 전쟁을 일으켜 쇠퇴를 가져왔고,
385년 後燕(후연)과 後秦(후진)의 공격을 받아 최후를 맞이했다.
이 때 부견의 아들 苻丕(부비)를 왕으로 세우고 혼란을 수습한 사람이 왕영이었다.
그는 각 지역의 군대에 연합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선제 부견이 적들에 피살되고
‘수도가 함락돼 온 나라가 어지러우며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다
神州蕭條 生靈塗炭
(신주소조 생령도탄)’면서
결전 준비를 시켰다.
이렇게 독려했어도 전진은 쇠락의 길을 걸어 394년 후진에 의해 멸망했다.
神州(신주)는 중국을 자칭하는 이름으로 유인 우주선에도 갖다 붙였다.
옛날 폭정을 일삼던 왕조시대나
세금을 긁어 苛斂誅求(가렴주구)하던 때의 백성들은 아니라 해도
오늘날 모두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지는 못한다.
국민소득은 이전에 비해 까마득하게 올랐지만 빈부의 격차는 벌어지기만 한다.
잘 사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저소득 빈민의 생활은
상대적인 현대의 도탄의 고통일 수 있다.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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