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이타카로 가는 길

甘冥堂 2026. 3. 1. 08:07

콘스탄티노스 P. 카바피의 〈이타카〉

' 네가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마라.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육신과 정신에 숭엄한 감동이 깃들면
그들도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니'


콘스탄틴 카바피의 시 <이타카>의 구절.
이 시는 목적지 그 자체보다 '여정의 가치'를 노래하는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시인이 라이스트리곤, 키클롭스(외눈박이 거인), 포세이돈과 같은 괴물과

신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내면의 투영일 뿐이기 때문
시의 뒤편을 더 읽어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몸과 마음을 고귀한 감동이 스치지 않는다면, 너는 그들을 만나지 않으리라."

즉, 외부의 장애물이나 괴물들은 사실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편견이 만들어낸 형상이라는 뜻입니다.
내 마음이 단단하고 생각이 고결하다면, 세상의 풍파는 나를 해칠 힘을 잃게 됩니다.

2. 고난은 곧 성장의 기회이기 때문
이타카로 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시련들은 단순히 나를 괴롭히는 방해물이 아닙니다.
그 시련들을 이겨내며 얻는 '경험'과 '지혜'가 이타카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진짜 보물입니다.
고난이 없다면 배움도 없고, 배움이 없다면 목적지에 도착해도 우리는 여전히 빈털터리일 것입니다.

3. 여정의 목적은 '도착'이 아닌 '과정'이기 때문
이 시에서 '이타카'는 목표 지점이자 삶의 끝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기도하라고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길을 서두르거나 회피하면,
정작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수많은 항구와 향신료, 지혜로운 이들과의 만남을 놓치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두려움은 우리 스스로가 불러오는 것이니 자신의 고귀함을 믿고,
고난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과정이 주는 풍성한 배움에 집중하라는 격려입니다.

혹시 지금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라이스트리곤'이나 '포세이돈' 같은 존재가 있나요?
그 존재들이 당신의 성장에 어떤 밑거름이 될지 함께 이야기해 볼까요?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지는 슬픔, 그리고 언젠가 나에게도 닥쳐올 순리에 대한 두려움은
그 어떤 문장으로도 완전히 위로하기 어려운 깊은 감정입니다.

특히 <이타카>의 시를 읽고 계신 것을 보니,
인생이라는 긴 항해의 끝자락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고 계신 것 같아 마음이 시릿합니다.
용기를 얻고 싶다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여정을 계속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두려움을 마주하고 계신 당신께 몇 가지 위로의 관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1. 당신은 '풍요로운 이타카'를 만들고 있습니다
카바피는 시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만들었으니, 설령 그곳이 가난할지라도 너를 속인 것이 아니다."

떠난 분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이타카'에 소중한 기억과 사랑이라는 보물을 남겨두고 간 것입니다.
그분들과 함께했던 시간, 나누었던 대화들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습니다.
그 기억들을 품고 있는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그분들의 삶 또한 당신을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2. '남은 길'이 아닌 '오늘의 항구'를 보세요
시인은 이타카에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지 말고,
"수많은 여름날의 아침에, 처음 보는 항구로 들어가는 즐거움"을 누리라고 합니다.
내일의 이별이나 마지막을 미리 당겨서 슬퍼하기보다,

오늘 아침 마시는 차 한 잔의 온기나 창밖의 풍경 같은
*작은 기쁨(항구)*에 머물러 보세요.

용기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 하루도 아름다운 것을 하나 발견하겠다"는 소박한 다짐에서 시작됩니다.

3. 두려움은 '삶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죽음이나 외로움이 두려운 이유는 역설적으로 당신이 이 삶을 뜨겁게 사랑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힘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수많은 '라이스트리곤'과 '포세이돈'의 진노를 견뎌오신 것이지요.
그 고결한 마음이 있는 한, 당신의 여정은 여전히 품격 있고 아름답습니다.

"지혜를 얻었으니, 너는 이제 이타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으리라."
지금 느끼시는 슬픔과 안타까움조차,

훗날 이 항해를 마칠 때 당신을 가장 지혜로운 여행자로 만들어줄 귀한 경험일 것입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당신의 배는 아직 푸른 바다 위에 있고,
당신의 이야기는 여전히 쓰여지고 있습니다.

 


참고

 

이타카

그리스 서해안 이오니아 제도에 있는 섬. 케팔로니아 현의 독립지방자치단체이며, 주도는 바티이다.

풍요로운 샘, 네리토스 산, 네이온 산, 포르키스 항구, 오디세우스의 도시와 왕궁, 물의 요정 나이아스들의 동굴 등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에 묘사한 이타카 섬과 지형적으로 일치하는 점이 많아 호메로스의 고향으로 추정되고 있다.

 

 

1. 라이스트리곤 :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로 돌아가기 위한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계속됐다. ​

한번은 식량과 식수를 얻기 위해 어느 섬에 머무르던 때였다.

그 섬의 경치는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선원들은 섬 깊숙한 곳에 배를 정착시켰고, 매혹적인 경치를 구경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그의 배를 항구 바깥에 정착시켜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한편 그 섬에는 라이스트리곤이라는 야만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에 낯선 사람들이 배를 정착시켰다는 것을 알아챘고, 배를 전복시키고 선원들을 창으로 찔러 죽였다.

결국 오디세우스의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 이외에 다른 선원들은 전부 전멸해버리고 말았다.

 

2. 키클롭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 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굶주린 선원들은 아에트나 산이 있는 시칠리아 섬에 상륙한다.

한편 이 섬에는 키클롭스가 살고 있었다.

오디세우스와 선원들은 사티로스들과 그들의 아버지인 실레누스(Silenus)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 디오니소스와 떨어져서 키클롭스의 노예가 된 상태였다.

오디세우스는 이전에 키클롭스에게 자신의 이름이 아무도 아닌(Noman), 누구도 아닌(Nobody)과 같은 뜻의

그리스어 오우티스(outis) 혹은 메티스(mētis)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키클롭스가 누가 자신의 눈을 멀게 했느냐고 외칠 때 소리는

"아무도 내 눈을 멀게 하지 않았다.(No man blinded me)"로 들리게 된다.  

사티로스들은 눈이 먼 키클롭스를 조롱하며 흥청망청 거린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이 모든 것을 이뤄놓고 한 가지 실수를 저지르는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밝혀버린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선원들은 이후 탈출에 성공하는데,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밝혀버렸기 때문에

그는 이후 고향으로 가는 여행에서 무수한 고난과 맞닥뜨리게 된다.

(키클롭스는 포세이돈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3. 포세이돈:

삼지창으로 대표되는 바다의 신으로 제우스 다음가는 제2의 신이다.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로 난폭하며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신으로 묘사되곤 한다.

포세이돈은 바다용을 타고 지하 거인 키플롭스로부터 선물로 받은 삼지창을 휘두르며 바다 속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성격이 급하고 포악해 다른 많은 신들과 싸움을 벌이기 일쑤였다.

특히 포세이돈은 그리스의 여러 땅들을 두고 올림포스 12신들과 싸움을 벌였다.

 

아테네의 소유권을 두고는 전쟁의 신 아테나와 싸움을 벌였으나 패하였다.

이번에는 아르골리스의 지배권을 두고 제우스의 아내 헤라와 싸움을 벌였으며,

낙소스 섬의 소유권을 두고는 디오니소스와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이 싸움에서 모두 패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포세이돈은 계속해서 다른 신들과 싸움을 벌였다.

코린토스를 놓고는 태양신 헬리오스와 소유권을 다투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아

거인 브리아레오스의 중재에 따라 헬리오스가 산을 차지하고 포세이돈은 지협(地峽)1) 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신들과 싸움이 잦았던 포세이돈은 인간 세상의 일에도 자주 끼어들어 인간들을 괴롭혔다.

이 때문에 포세이돈은 신들은 물론 인간들에게도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포세이돈은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삼지창을 휘둘러 폭풍우를 휘몰아치게 했다.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미 독립선언서  (0) 2026.03.01
貧交行 / 杜甫  (0) 2026.03.01
옷장사 할아버지  (0) 2026.02.27
그려러니  (1) 2026.02.26
부처를 아궁이에 던진 스님  (0)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