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나라는?
지도(地圖) 위에서 스위스는 작다.
인구 900만 명, 면적(面積)은 남한(南韓)의 절반도 안 된다.
하지만 숫자로 본 스위스는 거인(巨人)이다.
1인당 GDP는 10만 달러(약 1억 4,000만 원)를 넘나든다.
미국의 1.3배, 한국의 3배다.
더 놀라운 건 방어력(防禦力)이다.
전 세계(世界)가 인플레이션 공포(恐怖)에 떨 때,
스위스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를 유지,
실업률은 2% 초반으로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狀態)다.
게다가 14년 연속 '세계 혁신(革新) 지수' 1위를 놓치지 않는 강소국.
자원(資源) 한 톨 나지 않는 내륙 산악(山岳) 국가가
어떻게 이런 경제 요새(要塞)를 구축(構築)했을까.
노바티스, 로슈, 네슬레 같은 초일류 기업(企業)들 덕분(德分)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根本的)인 힘은 국민(國民)들의 머릿속에 있는 '계산기'다.
우리는 흔히 스위스 앞에 붙는 '영세(永世) 중립국'.
여기서 '영세'는 구멍가게를 뜻하는 영세(零細)가 아니라
영원한 세월 영세(永世)을 뜻하지만.
그 어감이 주는 나약한 이미지가 있는 탓에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납작 엎드려 평화(平和)를 구걸(求乞)하는
약소국의 생존술 쯤으로 오해한다.
착각(錯覺)이다.
스위스의 중립은 평화주의자의 호소가 아니라, 싸움꾼의 '무장 중립'이다.
그들은 나토(NATO)에 가입하지 않는다.
내 나라 안보(安保)를 남에게 '외주(外注)' 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알프스 산맥 전체를 거대한 地下 벙커로 개조(改造)하고 전 국민이 총을 든다.
"우리를 침공(侵攻)할 수는 있다. 하지만 너희도 팔다리 하나는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 서늘한 '고슴도치 전략'이 그들의 평화(平和)를 지탱하는 기둥이고,
이런 자세가 바로 1, 2차 세계대전도 피해 가게 만든 원동력(原動力)이다.
이 '공짜 안보(安保)는 없다'는 처절한 독립심(獨立心)은,
경제 영역(領域)으로 넘어오면 '공짜 점심은 없다' 는
냉철한 주(Shareholder) 의식으로 치환(置換)된다.
스위스 국민은 안보를 동맹(同盟)에 구걸(求乞)하지 않듯,
경제적 풍요(豊饒)를 정부(政府)에 구걸하지 않는다.
스위스에는 국민 10만 명이 청원(請願)하면
전 국민투표를 강행(强行)하는 특이한 법이 존재(存在)하고,
그들 정치(政治)에도 물론 진보당이 존재(存在)한다.
지난 2012년, 스위스에선 '유급 휴가 연장' 안건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법정 휴가(休暇)를 4주에서 6주로 늘리자는 법안(法案)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저녁이 있는 삶", 같은 감성언어와 "노동권 보장"을 외치며
90% 정도의 찬성(贊成)으로 통과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스위스는 66% 반대(反對), 부결(否決)이었다.
이유는 심플했다.
"휴가(休暇)를 늘리면 인건비가 오르고,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
결국 내 일자리가 사라진다."
노동자가 기업(企業)의 손익계산서를 걱정해 휴가를 반납(返納)했다.
2016년엔 더 파격적인 '기본소득' 안건(案件)이 올라왔다.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월 2,500프랑, 당시 환율로 약 300만 원을 주자고 했다.
우리는 25만 원만 뿌려도 "민생 회복" 이라며 생색(生色)을 내는데,
스위스 국민은 매달 300만 원을 준다는데도 무려 77%가 걷어찼다.
"재원(財源)은 세금 폭탄으로 돌아올 것이고,
일하지 않는 자에게 돈을 주면 나라는 빈껍데기가 된다" 는 이유였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공짜 치즈는 쥐덫 위에만 있다'는 사실을.
압권(壓卷)은 올해 치른 투표(投票)다.
청년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한 '초부유층 상속세(相續稅) 50% 부과' 안건이 올라왔다.
한국이었다면 '조세 정의'를 외치며 죽창가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
결과(結果)는 어땠을까?
78% 반대(反對)로 부결(否決)됐다.
스위스 국민들은 "부자를 털면 그 돈이 우리에게 오는 게 아니라,
자본(資本)과 기업(企業)이 세금 싼 나라로 탈출(脫出)해서 스위스 경제가 망가진다!"는
경제학 원론(原論)을 꿰뚫고 있었다.
황금(黃金)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겠다는 집단(集團) 지성이었다.
이들이 쌓은 '신뢰 자본'은 다가올 AI 시대에 빛을 발할 것이다.
스위스 기업(企業)들은 국민이 자신들을 지켜줬다는 고마움을 안다.
인력(人力)이 AI로 대체되는 급변기가 와도, 기업(企業)은 국민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
최대한 속도를 조절하며 상생(相生)을 모색할 것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최후의 안전망이다.
필자(筆者)가 스위스를 보며 부러워하는 것은
알프스의 절경(絶景)이 아니라, 바로 그 '차가운 이성'이다.
우리가 배워도 한참 배워야 할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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