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遷至藍關示姪孫湘 / 韓愈
좌천되어 남관에 이르러 질손 상에게 시를 보이다 - 한유(韓愈)
一封朝奏九重天(일봉조주구중천) : 아침에 한편의 상소문을 구중궁궐에 올렸는데,
夕貶潮州路八千(석폄조주로팔천) : 저녁에 조주 팔천 리 길 귀양 떠나네.
欲爲聖明除弊事(욕위성명제폐사) : 성스런 황제를 위해 폐습을 없애려 했으니,
肯將衰朽惜殘年(긍장쇠후석잔년) : 늙고 쇠약한 이 몸이야 남은 목숨 아까울 게 있겠나?
雲橫奏嶺家何在(운횡주령가하재) : 구름은 진령에 걸쳐있는데 우리 집은 어디에 있나?
雪擁藍關馬不前(설옹람관마부전) : 눈이 남관을 막아 말도 나아가지 못한다.
知汝遠來應有意(지여원래응유의) : 네가 멀리서 온 것은 응당 뜻이 있음을 알았을 터,
好收吾骨瘴江邊(호수오골장강변) : 내 뼈를 장기 서린 강가에서 잘 거두어 주게나.
藍關:지금의 섬서성 남전현 동남쪽에 있다. 潮州: 지금의 광동성 조주시. 奏嶺: 관중 남부일대의 산들. 瘴江: 장은 장기로 남방 산 속의 습하고 뜨거운 기운인데 옛 사람들은 이 기운이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瘴江(장강)은 장기가 가득한 남방의 강이라는 뜻.
819년(원화14) 정월 한유는 論佛骨表로 헌종의 노여움을 사 남방조주자사로 폄적되었는데 죄인의 가속은 서울에 머무르지 못한다는 규정으로 한유의 가족들도 함께 가게 되었다. 한유는 황명을 받는 즉시로 조주로 떠났고, 가족과 함께 기거하던 한상이 조금 늦게 떠나 남관에 이르러서야 한유를 만나게 되었다. 한유는 충성을 다했으나 죄인이 되어버린 자신의 심정을 이 칠언율시에 담아 한상에게 보였는데, 왜냐하면 한상이 한유의 아들 한창보다 다섯 살이 많아 한유의 자손 중에서는 제일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유는 당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유창하게 묘사해 후인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論佛骨表: 정통유가의 입장을 견지하여 사원과 불교는 국가의 재정을 소모시키고 유교통치를 불안하게 하기 때문에 부처에게 복을 기원해도 아무런 복은 오지 않고 결국에는 재앙만 쌓인다는 요지의 상소문으로, 당시 불교에 대한 광적인 열풍을 비판했다. 무능한 황제는 진노하여 한유를 처형하려 하였는데 다행히 裵度 등 대신들의 간청으로 죽음에서 벗어나 조주자사로 폄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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