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연신내 블루스 3

甘冥堂 2014. 10. 21. 19:15

 

배낭을 멘 남자

예전엔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니던 것이 귀찮은 적이 있었지요.

심지어는 고향집을 찾아갈 때에도 그냥 빈손으로 덜렁덜렁 갑니다.

동네분이 핀잔합니다."부모를 찾아뵈러 오는 놈이 빈손으로 오다니..."

그후부터 무언가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조그만 가방을 울러메고 다녔지요.

그 가방이 점점 커져 지금의 25 L들이 등산 배낭이 되었습니다.

 

그 속에 무엇을 그리 넣어가지고 다니는가? 그것도 매일같이.

책1~2권, 필기구. 칫솔 물컵 외엔 별 것도 없습니다. 그딴 걸 왜 들고 다니나?

백수 티 안 내려고.

그런 것이라도 있어야 무언가 좀 들어보이고, 등산 좀 하는 것 같고, 한편 안심도 됩니다.

혹 뒤로 나가자빠졌을 때 허리와 머리통 보호대의 역할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늦가을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섭니다.

"오늘도 등산 가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 아주머니가 묻습니다.

"아, 녜... " 우물쭈물합니다.

 

지난 주말,

가족들과 설악산 단풍구경을 갔습니다.

아이들이 있기에 위험한 길을 피해 비선대를 목표로 합니다.

험한 길도 아닌, 그저 평평한 길을 오르면서도

마누라의 절름거리는 모습을 봅니다.

오른쪽 팔과 허리와, 이어진 왼편 다리가 불편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비선대 위 금강굴 까지도 올라갔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합니다.

함께 살아온 수십 년

영광의 상처인가, 고생 끝의 훈장인가?

당신도

나도

이제 병신 다 된 늙다리가 되었구려.

모처럼의 가족나들이. 마누라가 불편해 하니 신이 나질 않습니다.

"파전에 막걸리나 한 잔 합시다"

 

귀경하는 길에 차안에서 모처럼  '트로트 메들리'를 들어봅니다.

나훈아, 주현미가 그 옛날 어려울 때 부르던 가요 메들리입니다.

지금은 구할 수 없는 귀한 판입니다.

반주는 간단하고 듣기에도 가볍습니다.

저들이 저 노래를 부를 때에는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해도

얼마나 많은 연습과 감정의 드나듬이 있었을까요?

노래 가사에 맞게, 애절하게, 구성지게, 때론 서글프게...

노래들 들으며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내 몸에서 소리가 나올 때는

먼저 내 몸을 충분히 적시고

내 몸의 기를 받아

그리고 깊은 들숨과 날숨을 통해 소리가 나오는데

그 과정을 헤아려 보면서 뭐라 말 할 수 없는 짠한 느낌이 듭니다.

그들도 어려웠던 시절, 음악성 없는 메들리지만 어쩔 수 없이 불려야 했던 노래.

지금은 잘 나가고 있지만 그리고 아직은 멀었지만, 이윽고 스러져갈 시절이 오겠지요.

아들놈이 질색을 합니다.

무슨 그런 노래를 녹음해가지고 다니느냐고.

 

연신내 거리가 질퍽입니다.

김 선생과 점심을 끝낸 후 일부러 양지극장 앞 옛날 골목들을 이리저리 다녀봅니다.

텅 비어있는 골목도 있고 어떤 골목은 대포집. 음식점들이 영업 중입니다.

하나같이 서민들이 드나드는 음식점들입니다.

비도 내리는데

족발에 소주 한 잔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간이 나빠졌는지 눈알도  푹푹 쑤시고 아픈 터라

참아야지...

요 며칠 계속 술을 마셔대니, 눈이 아파서 약을 넣어도 별 차도가 없습니다.

 

같이 어울리던 김 선생이

오늘까지만 독서실에 나오고, 내일부터는 집에서 쉬겠다며

사물함 Key를 건네줍니다.

"왜 그래? 그러지 말고 이달 말까지 만이라도 나와."

그러나 막무가내입니다.

집에 있기가 지루하면 다시 나오겠지. 뭐.

누군들 나오고 싶어서 나오는 감?

 

내년 부터는 무얼 할까.

몇 가지 계획하고 있는데

계획대로 잘 될른지....

 

연신내를 배회할 날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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