俗離山
道不遠人 人遠道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네
山非離俗 俗離山 산은 속세를 떠나려하지 않는데 속세는 산을 떠나려 한다.
속리산 세심정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임제 선생이 지은 시입니다.
논어에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습니다.
子曰 誰能出不由戶 리오마는 何莫由斯道也오.
누가 밖을 나갈 때 문을 경유하지 않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이 도를 따르는 자가 없는가?
非道遠人 人自遠爾
논어 주석에 사람이 나갈적에 반드시 문을 통해 나감에도, 행동할 적에는 반드시 도를 따라야 함을 알지 못하니
도가 사람을 멀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도를 멀리할 뿐이다.
도는 문과 같은 것. 문을 통하지 않고 출입할 수 없듯, 이 도를 따르지 않고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도를 벗어나서 사는 것은 참다운 삶이 아니므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글들을 원용하여 멋진 절구를 만들었으니 백호 임제의 대단함을 볼 수 있습니다.
임제에 대해 좀더 알아봅니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 풍강(楓江)·소치(嘯癡)·벽산(碧山)·겸재(謙齋). 아버지는 절도사를 지낸 임진(林晉)이다.
임제는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스승이 없었다. 20세가 넘어서야 성운(成運)에게 배웠다.
1570(선조 3) 22세 되던 겨울날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가는 길에 쓴 시가 성운에게 전해진 것이 계기가 되어 성운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젊어서는 얽매임을 싫어하여 기녀와 술자리를 즐기며 살았다.
1571(선조 4) 23세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이때에 잠시 동안 술을 끊고 글공부에 뜻을 두었다.
과거에 몇 번 응시했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그로부터 계속 학업에 정진했으며 『중용』을 800번이나 읽은 일은 유명한 일화이다.
1576년(선조 9) 28세에 속리산에서 성운을 하직하고, 생원·진사에 합격했다.
이듬해에 알성시에 급제한 뒤 흥양현감(興陽縣監)·서북도 병마평사(西北道兵馬評事)·관서 도사(關西都事)·
예조정랑(禮曹正郞)을 거쳐 홍문관지제교(弘文館知製敎)를 지냈다.
그러나 성격이 호방하고 얽매임을 싫어해 벼슬길에 대한 마음이 차차 없어졌으며
관리들이 서로를 비방 질시하며 편을 가르는 현실에 깊은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관직에 뜻을 잃은 이후에 이리저리 유람하다 고향인 회진리에서 1587년(선조 20)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여러 아들에게 “천하의 여러 나라가 제왕을 일컫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오직 우리나라만은 끝내 제왕을 일컫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못난 나라에 태어나서 죽는 것이 무엇이 아깝겠느냐! 너희들은 조금도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고 한 뒤에
“내가 죽거든 곡을 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겼다.
검(劍)과 피리를 좋아했고 술 마시고 방랑하며 여인과 친구를 사귄 짧은 삶이었다.
일화와 평가
벼슬에 환멸을 느껴 유람을 시작했으며 가는 곳마다 많은 일화를 남겼다.
서북도 병마평사로 임명되어 임지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시조 한 수를 짓고 제사지냈다가 부임도 하기 전에 파직당한 일과 기생 한우(寒雨)와 시조를 주고받은 일, 평양기생과 평양감사에 얽힌 일화도 유명하다.
이러한 일화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평가하길 기이한 인물이라고 했으며 또 한편에서는 법도에 어긋난 사람이라 했다.
그러나 당시의 상반된 평가와는 상관없이 그의 글은 높이 평가됐다.
저서로는 「수성지(愁城誌)」·「화사(花史)」·「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등 3편의 한문소설을 남겼으며
문집으로는 『임백호집(林白湖集)』 4권이 있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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