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텃밭에서

甘冥堂 2018. 6. 26. 17:23

텃밭에서

              / 윤중호(1956~2004)


새벽마다, 오릿길 텃밭을 다녀옵니다.


하지 감자 웃자란 순을 떼어내고

엇갈이배추를 솎습니다.

토마토가 탱글탱글 여물어가고

고추가 고추만 하게 대롱거리는데

며칠 전 뿌린 열무가

땅을 들썩이며 움쑥 솟았습니다.


거둔 완두콩으로

아침을 지어 먹었습니다.

막 따온 청상추

아삭아삭 소리가 납니다.

참 행복합니다.

생각해보니

참 불쌍합니다.




어찌 지금의 내 생활과 그리 똑같은가?

눈에 선히 그려집니다.


감자 캐고, 엇갈이배추 솎으며

토마토밭 북돋는데,

청양고추 꽈리고추가 제법 달렸고

막 뿌린 열무, 대파도 싹을 티웁니다.


텃밭에서 거둔 상추로 쌈을 싸며

평범한 아침을 행복해 합니다.




그러나

무엇인가요? 시인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게.

행복을 느끼는 그 자체가 너무 작기 때문인가요?

이런 정도의 행복을 얻기까지 너무 먼 길을 걸어왔나요?



텃밭을 오가는 것이 거의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네겐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쌍하지도 않은, 그냥 그런 일상일뿐입니다.

나는 아무 생각없는 백수니까요. 그러나


생각해보니

불쌍한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