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 윤중호(1956~2004)
새벽마다, 오릿길 텃밭을 다녀옵니다.
하지 감자 웃자란 순을 떼어내고
엇갈이배추를 솎습니다.
토마토가 탱글탱글 여물어가고
고추가 고추만 하게 대롱거리는데
며칠 전 뿌린 열무가
땅을 들썩이며 움쑥 솟았습니다.
거둔 완두콩으로
아침을 지어 먹었습니다.
막 따온 청상추
아삭아삭 소리가 납니다.
참 행복합니다.
생각해보니
참 불쌍합니다.
어찌 지금의 내 생활과 그리 똑같은가?
눈에 선히 그려집니다.
감자 캐고, 엇갈이배추 솎으며
토마토밭 북돋는데,
청양고추 꽈리고추가 제법 달렸고
막 뿌린 열무, 대파도 싹을 티웁니다.
텃밭에서 거둔 상추로 쌈을 싸며
평범한 아침을 행복해 합니다.
그러나
무엇인가요? 시인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게.
행복을 느끼는 그 자체가 너무 작기 때문인가요?
이런 정도의 행복을 얻기까지 너무 먼 길을 걸어왔나요?
텃밭을 오가는 것이 거의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네겐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쌍하지도 않은, 그냥 그런 일상일뿐입니다.
나는 아무 생각없는 백수니까요. 그러나
생각해보니
불쌍한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장사익-JP 영결식 조가를 부르다. (0) | 2018.06.27 |
|---|---|
| 꿈의 해석 (0) | 2018.06.26 |
| 중국의 미래를 보려면 역대 도읍지를 봐야 (0) | 2018.06.26 |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0) | 2018.06.25 |
| JP의 묘비명 (0) | 2018.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