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日修心千載寶 (삼일수심천재보)
삼일 동안 닦은 마음 천년의 보배 되고
百年貪物一朝塵 (백년탐물일조진)
백년 동안 탐한 재물 하루아침에 티끌 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집으로 1797년(정조 21)에
시작하여 1800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신륵사에는 보물 제225호로 지정된 대리석재의 다층석탑,
국내에서 유일하게 완성된 형태로 남아 있는 전탑인 보물 제226호의 다층전탑多層塼塔,
고려 말기의 대표적 부도양식을 띤 보물 제228호의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비천飛天과 용이 새겨져 그 형태가 매우 아름다운 보물 제231호의 석등, 1
379년 나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보물 제229호의 보제존자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그리고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대장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보물 제230호의 대장각기大藏閣記碑가 있다.
나옹의 화장지로 아려진 곳에 세워진 삼층석탑 옆에는 6각 정자
강월헌江月軒이 있는데, 그 전에 지어진 것은 1972년의 홍수로
떠내려가고, 그 뒤 삼층석탑보다 조금 아래쪽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누각의 이름인 강월헌은 나옹의 당호인데, 그를 추념하여 이곳에
누각을 세운 것이고, 또 구룡루는 1689년(숙종 15)과 1749년(영조 25),
1860년(철종 11)에 각각 중수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대장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보물 제230호의 대장각기大藏閣記碑
여주는 국토의 상류에 위치하여 산이 맑고 물이 아름다워 낙토樂土라 불렀는데
신륵사가 이 형승形勝의 복판에 있다"고 칭송하였으며
이렇듯 풍광이 뛰어난 곳에 위치한 신륵사는
남한강 상류인 남한강(여강)의 물이 감싸 안은 나지막한 봉미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고찰로서
일반적으로 많은 사찰들이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비해
신륵사는 푸른 물줄기와 드넓은 모랫벌 그리고 넓은 평야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신륵사 앞 강변은 마포나루. 광나루. 이포나루와 함께 한강의 4대 나루였던 조포나루가 있던 곳으로
옛날에는 충주에서 서울까지 연결된 수운이 거점이었다.
여주의 지세를 가리켜 '들은 평평하고 산은 멀다'고 표현한 목은 이색의 말을 떠올릴만한 장소가 강월루이다.
신륵사의 전경과 조포나루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저녁 무렵 신륵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누각에 서서 남한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여주대교를 타기 직전에 우회전해서 200m정도 더 가면 여주 강변관광단지가 나온다.
절에서 바라보면 여주 황포돛대가 가끔씩 바람타고 운행 중이고, 남한강에는 간이모터보트장이 있어 보트놀이를
즐길 수 있다.
신륵사가 자리한 경기도 여주는 조선시대 4대 나루(광나루·마포·조포·이포) 중
조포潮浦와 이포梨浦, 이렇게 두개를 가지고 있을 만큼 사람과 물자가 수시로 드나들던 수운 요지였다.
강월헌 아래가 바로 조포가 있던 곳이다.
사람을 실어 나르던 황포돛배와 영월과 정선에서 뗏목을 만들어 서울로 가던 떼꾼,
소금을 싣고 강원도로 가던 소금배가 조포와 이포를 이용했다.
번성하던 나루는 사라졌지만,
여주는 여전히 경기도와 충북, 강원도가 만나는 접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여주 이천은 고속도로만 달리다보니
들릴 기회가 없었는데,
토지를 구입하려는 친구를 따라 나선 길에
영릉, 신륵사를 탐방하였다.
신륵사 주변도 많이 변해,
예전의 기억으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기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거의 40년만에 방문하였으니 무언들 기억이 날까?
절 입구부터 상점들이 즐비하고
강 건너 높은 빌딩의 그림자가 강을 뒤덮은 곳엔 유람용 보트들이 무리져 있다.
그윽한 절간과는 거리가 멀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신륵사의 역사 유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기껏 기록을 해봐야 이런 정도에 머물수 밖에 없다.
후일을 위해 자료를 찾아 보충하려고 한다.
자료: 영일서단[迎日書壇]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봉미산에 있는 신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末寺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절 이름을 ‘신륵’이라고 한 데는 미륵彌勒 또는 왕사 나옹懶翁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리고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나타난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웠으므로 사람들이 잡을 수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제압하였다고 하여
신륵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 절은 고려 때부터 벽절(甓寺)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다층전탑이 있는데, 이 탑 전체를 벽돌(塼)로 쌓아 올린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절이 대찰을 이루게 된 것은 나옹이 이곳에서 갖가지 이적을 보이면서 입적入寂하였기 때문이다.
나옹이 입적할 때 오색구름이 산마루를 덮고, 구름도 없는 하늘에서 비가 내렸으며,
수많은 사리가 나왔고, 용龍이 호상(護喪: 초상 치르는 모든 일을 주장하여 보살피는 것)을 했던 일들이 그것이다.
驪州 鳳尾山 神勒寺 柱聯
(여주 봉미산 신륵사 주련)
1. 神勒寺 極樂寶殿 柱聯: :
(신륵사 극락보전 주련)
具足新通力 (구족신통력)
신통력을 모두 갖추시고
廣修智方便(광수지방편)
지혜의 방편력 두루 하시어
十方諸國土 (시방제국토)
시방세계 모든 국토 어느 곳이든
無刹不現身 (무찰불현신)
그 몸 나타나시지 않는 곳 없내
(실제 극락보전 주련에는 보이지 않는다)
2. 神勒寺 冥府殿 柱聯: :
(신륵사 명부전 주련)
地藏大聖威神力 (지장대성위신력)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이여
恒河沙劫說難盡 (항하사겁설난진)
억겁을 두고 설명해도 다하기 어렵나니
見聞瞻禮一念間 (건문첨례일념간)
보고 듣고 예배하는 잠깐 사이에
利益人天無量事 (이익인천무량사)
사람과 하늘에 이익 된 일 무향 하여라
3. 神勒寺 祖師堂 柱聯: :
(신륵사 조사당 주련)
禪指西天爲骨髓 (선지서천위골수)
선禪은 부처님 태어나신 서천을 잊지 말고 마음속 깊이 새기고
敎設東土作笙簧 (교설동토작생황)
불교의 가르침은 동방의 나라에 넓게 퍼지도록 하라
4. 神勒寺 寂黙室 柱聯: :
(신륵사 적묵실 주련)
戱招西寒山前月 (희초서한산전월)
서쪽에는 한산 앞에 있던 달을 불러 놓고
來聽東林寺裏鐘 (내청동림사리종)
동쪽 숲속에 절 종소리를 듣는다
初地相逢人似舊 (초지상봉인사구)
같은 땅에서 만난 사람 서로 구면이 되고
前身安見我非僧 (전신안견아비승)
앞모습을 살펴보니 나는 승려가 아니로다
月照上方諸品靜 (월조상방제품정)
달은 위에서 비추니 모든 품류가 고요하고
心指半偈萬緣空 (심지반게만연공)
마음가짐 편하니 만 가지 인연이 모두 공空이로다
蒼苔白石行應遍 (창태백석행응변)
흰 돌에 낀 푸른 이끼처럼 되는대로 맡겨 두네
5. 神勒寺 竹壽之室 柱聯: :
(신륵사 죽수지실 주련)
受囑擁護 (수촉옹호)
옹호하기 부탁 받아
應供福田 (은공복전)
恩偉竝行 (은위병행)
은혜와 위엄 모두 행하여
普度含靈 (보도함려령)
널리 중생을 제도하라
6. 神勒寺 尋劍堂 柱聯: :
(신륵사 심검당 주련)
敎外別傳 (교외별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며
不立文字 (불립문자)
문자에 의하지 아니하고
直指人心 (짇지인심)
오직 사람의 마음을 지도하여
見性成佛 (견성성불)
자기의 본성을 깨달아 성불成佛 하라
7. 神勒寺 九龍樓 柱聯: :
(신륵사 구룡루 주련)
梵王帝釋四天王 (범완제석사천왕)
범천왕, 제석천, 그리고 사천왕
佛法門中誓願堅 (불법문중서원견)
불문佛門에서 서원誓願도 굳건해라
列立招提千萬世 (열립초제천만세)
가람 주위 늘어서서 천만년을 수호 하네
自然神用護金仙 (자연신용호금선)
자연스런 신통묘용 부처님을 보호 하네
* 범왕梵王 : 범천왕, 즉 바라문교에서 교조로 위하는 창조주
* 제석帝釋 : 제석천, 즉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의 임금
* 사천왕四天王 : 지국指國, 증장增長, 관목廣目, 다문천多聞天의 4천왕
* 열립列立 : 일을 벌이고 세움
* 초제招提 : 관부官府에서 사액賜額한 절
* 금선金仙 : 부처님
8. 神勒寺 梵鐘閣 柱聯: :
(신륵사 범종각 주련)
聞鐘聲煩惱斷 (문종성번뇌단)
이 종소리 들으시고 번뇌 망상 끊으시고
知慧長菩提生 (지혜장보리생)
지혜가 커지고 보리심이 생기게 하소서
離地獄出三界 (이지옥출삼계)
지옥고地獄苦를 여의고 삼계三界를 뛰쳐나와
願成佛度衆生 (원성불도중생)
원컨대 성불成佛 하시고 중생 제도濟度 하옵소서
나옹화상의 이름은 혜근慧勤인데, 속성俗姓은 아씨牙氏, 초명은 원혜元惠. 호는 나옹으로 강월헌江月軒이라는
다른 호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설화의 주인공으로도 많이 나온다.
보우와 함께 고려 말의 유명한 고승으로 일컬어지며, 조선 불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노래를 많이 지어 문집인 ‘나옹집’에 보존하고 있다.
그의 유명한 ‘청산가靑山歌’는 여전히 중생들에게 인기이다.
靑山兮要我似無語 (청산혜요아사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蒼空兮要我似無垢 (창공혜요아사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聊無愛而無憎兮 (요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