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슬견외경(蝨犬畏敬)

甘冥堂 2024. 3. 16. 07:32

슬견외경(蝨犬畏敬) - 이나 개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나 막일을 하는 사람이나 생명은 하나뿐이니 가치는 똑 같다.
심지어 조그만 해충 이(蝨)나 주변에 흔히 기르는 개(犬)의 목숨도

똑 같이 소중히 여긴다(畏敬)는 것이 이 말이다.
이 소중한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자살하는 사람들이다.

성서에서도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복음)고 했지만
자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성어는 고려시대 문호 李奎報(이규보)의
‘東國李相國集(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수필
‘虱犬說(슬견설, 虱은 蝨과 같은 이 슬)’에 나온다.

고전번역원의 한역을 토대로 간단히 추려보면 이렇다.
한 사람이 찾아와 길거리서 개를 잡는 모습을 보았다며
그 모습이 참혹하여 앞으로는 개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白雲居士(백운거사, 이규보 아호)가 답하길
화로를 끼고 이를 잡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자기는 다시 이를 잡지 않겠다고 했다.
그 사람이 미물과 큰 동물을 동일시하여 말하니 놀리는 것이라고 화를 냈다.

그래서 타이른다. ‘무릇 혈기가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곤충 개미에 이르기까지

삶을 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마음은 동일한 것이네
(凡有血氣者 自黔首至于牛馬猪羊昆蟲螻蟻 其貪生惡死之心/
범유혈기자자검수지우우마저양곤충루의 기탐생오사지심).’

그러면서 물러나서 달팽이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큰 붕새처럼 같이 보게 되면
(視蝸角如牛角 齊斥鷃爲大鵬/ 시와각여우각 제척안위대붕)
도를 논의하자고 말했다. (鷃은 메추라기 안)

만물은 크기나 겉모습, 인간에 대한 이로움과 해로움과는 상관없이 모두
근원적으로 동일한 존재라고 인식한 사상은
菜根譚(채근담)의 ‘쥐를 위해 항상 밥을 남겨두고, 나방을 위해 등불을 켜지 않는다
(爲鼠常留飯 憐蛾不點燈/
위서상류반 연아부점등)고 한 말과 통한다.

또 박애주의 성인 슈바이처가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많은 벌레가 날개가 타서 책상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 보다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했다는 것과 같다.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을 버리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1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1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노인의 자살이 높은 것은 경제적, 사회적 환경이 열악하여

시스템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기원전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말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도 있다. 죽고 난 뒤엔 아무 것도 바랄 수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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