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觚不觚(고불고)

甘冥堂 2025. 11. 22. 09:48

논어』 「술이(述而)편에 觚不觚觚哉觚哉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이를 글자대로 번역하면 “‘()’가 모나지 않으면 이겠는가. ‘이겠는가.”이다.

잘 쓰이지 않는 라는 글자의 의미를 모른다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는 형용사로는 모나다’, ‘각지다의 뜻이고,

명사로는 고대 의식에 사용하던 술그릇의 한 이름이다.

고대에는 모양과 용도에 따라

(), (), (), (), (), (), (), ()

각기 이름을 달리하는 많은 종류의 술그릇이 있었는데, ‘도 그 중 한 종류이다.

 

그런데 이 라는 술그릇이 많은 이름 중에 하필 모나다라는 뜻을 지닌

라는 글자의 이름을 얻은 데에는 매우 단순하고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술그릇의 모양이 둥글지 않고 각진 모가 나있기 때문이다.

 

각설탕이라 이름 붙여진 설탕이 둥근 모양이라면 그것을 각설탕이라 할 수 있겠으며,

각파이프라 이름 붙여진 파이프가 둥근 형태라면 그것을 각파이프라 할 수 있겠는가.

또한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학생또는 학자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를 학생또는 학자라 할 수 있겠으며,

남을 가르치고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스승이라 하는데

그럴 능력과 자질이 없는 사람을 스승이라 할 수 있겠는가.

 

붙여진 이름이 실상에 맞지 않으면 더 이상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데

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가 그것이며,

그 이름이 제대로 이름값을 하는 것이 바로 君君, 臣臣, 父父, 子子인 것이다.

(논어』 「안연(顏淵)11)

 

 

말은 매우 지당하여 달리 토를 달 것이 없지만 현실은 이름과 실상이 어긋난 경우가 매우 많다.

그리고 또 이를 지적해 바로잡아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방관 또는 동조하면서 바로잡기는커녕 더욱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의 폭군인 연산군의 시대에 공길(孔吉)이라는 광대가 있었는데,

그는 연회의 자리에서 연산군에게 논어의 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는 말을 했다가

곤장을 맞고 유배를 갔다고 한다.(연산군일기 111229)

당시 수많은 고관대작과 선비들은 다 어디를 갔기에 광대인 공길이 연산군에게

임금다운 임금이 되라는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이름이 이름값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명(正名)’인데, 공자는 위()나라를 위한 정사에서는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正名)’을 우선해야 함을 강조하기도 하였다.(논어』 「자로(子路)3)

당시 위나라는 영공(靈公)의 뒤를 이어 그의 손자인 첩()이 임금으로 있었는데,

망명한 아버지인 괴외(蒯聵)와 갈등관계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 후에 결국 아버지와 아들간의 왕권 다툼으로 이어져 임금으로 있던 아들이 쫓겨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父不父, 子不子의 상황 속에서 공자의 정명이라는 처방이 나온 것이다.

당시에 상황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이름이 이름값을 못하는 것이 어디 위나라뿐이었겠으며,

어찌 나라의 정치 상황뿐이었겠는가. 이를 탄식하며 한 말이 바로 觚不觚인 것이다.

 

() 나라의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탕왕(湯王)이 당시의 천자였던 걸왕(桀王)을 내쫓고,

무왕(武王)이 당시의 천자였던 주왕(紂王)을 정벌한 사실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아울러 물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맹자는, 잔학한 짓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임금이라 부를 수 없고 일개 사내라 불러야 하니,

일개 사내를 정벌한 일은 있고 임금을 시해한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왕(紂王)은 오직 자신의 부인의 말만 따르면서 그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기괴한 방식의 형벌을 시행하고, 간언을 하는 훌륭한 신하의 심장을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늘 술에 빠져 살았으니 이런 자를 어찌 임금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 임금의 기본 역할인데

이 역할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백성을 학대하여 못살게 하니 임금이 임금답지 않은 것이고,

임금답지 않은 임금은 더 이상 임금이 아닌 것이다.

 

임금이 아닌 자가 임금 노릇을 하고 있으면 이를 끌어내 바꿔야 하니,

이것이 바로 혁명(革命)이다.

이름값에 부합하지 않은 결과가 어디까지 이르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경계해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술그릇 이름 하나를 거론한 것에 불과하지만 천하 사물에 적용되지 않음이 없으니,

위정자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경계가 여기에 담겨있다고 할 만하다.

 

(글쓴이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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