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행복은 지금 이 순간

甘冥堂 2026. 6. 14. 19:30

수술실로 들어갔다.
십자형 수술대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발가벗긴 채 그 위에 눕혀졌다.
손목과 발목을 묶였다.
실험실의 개구리가 떠올랐다.

인간이 별 게 아니었다.
수술실 안이 하드 락 음악소리가 꽝꽝 울렸다.
마스크를 쓴 의사들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 마취의가 주사를 놓았다.
"하나, 둘, 하면서 천천히 숨을 쉬세요."

나는 눈을 감았다.
이제 몇 초가 남은 삶의 전부일지 모른다.
살아온 날들이 슬라이드 영상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후회가 일었다.
돈을 좇았다.
승소를 좇았다.

그런데 내가 없어지는 순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이었는데 나는
그걸 보지 못한 채 죽는 게 억울했다.
그래도 마지막 기도는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좋은 아버지 어머니 아래서 좋은 교육받고 잘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수술실 천장이 두 쪽으로 쫙 갈라졌다.
나는 깊은 어둠의 골짜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 속이었다.
캄캄한 창고 같은 곳. 한구석에 나는 혼자 웅크리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어디선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순간 하얀빛이 퍼지면서 세상이 열렸다.
눈이 부셨다.
의사 두 명이 내 옆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동맥을 끊어내고 가스를 주입해 몸통을 복어같이 만들고 내장을 적출하는 여섯 시간의 수술이 끝났다.
한 달 후 병리검사 결과가 나왔다.
'전이 없음.'

나는 살아났다.
그리고 배웠다.
살아있음이 축복인 것을.

세월이 흘러 나는 칠십대 중반이되었다.
그때부터 30년을 더 산 것이다.

한 달 전 고교동기가 동해에 있는 내게로 찾아왔다.
"나 암 말기래. 뼈까지 전이됐대"

그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암이 아니라도 우리 이제 죽을 나이 아닌가?"

내가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칠십대 중반이면 우리는 살만큼 살았어. 본전을 다 찾은 거지.
암이 아니라도 다 죽어. 어차피 죽을 건데 무엇이 문제지?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선물로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그 친구가 한참을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건 그러네"

나도 그랬다는 과거의 얘기와
다 죽는다는 말이 위로가 된 것 같았다.
인생은 지금 이순간이 행복. 그리고
주어지는 대로 받아 들임은 아닐까

- 엄상익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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