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영화 이야기- 活着 (살아간다는 것: 人生) 장예모 감독

甘冥堂 2011. 5. 5. 06:28

 

  活着 (살아간다는 것: 人生) 장예모 감독 작품에 대하여

 

이 영화는 余華의 소설 活着을 영화화 한 것이다. 소설의 내용과는 달리 상당부분을 각색하였다. 소설 속에서의 죽음에 이르는 암울할 수밖에 없는 내용 중 일부를 장예모 감독은 상당부문 손질하여 어떤 희망의 싹을 보여주려 했다. 주인공 푸꿰이 (남자주연:葛優)의 파란 만장한 삶을 통하여 1920년대부터 문화대혁명 이후까지의 중국의 현대를 절망도 희망도 아닌 그저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사나이의 생을 그렸다.

 

1.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과 영화의 줄거리

푸꿰이는 부잣집 도련님이다. 예쁜 아내를 얻고서도 도박에 빠져, 살고 있는 집마저 도박꾼에게 빼앗긴다. 세간을 저자에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가던 거의 절망적인 때, 집을 나갔던 아내가 아들을 안고 다시 찾아온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푸꿰이는 자기 집을 도박으로 차지한 사람에게 찾아가 그림자극 소품 상자를 빌려온다.

 

푸꿰이는 악단을 만들어 그림자극 공연을 하던 중 국민당 군대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다. 그 군영에서 잠을 자는 사이 공산군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하루 밤 사이 적군과 아군이 뒤바뀌는 혼란한 세상인 것이다. 그는 공산군 진영에서도 그림자극을 공연하다가 이윽고 해방이 되어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다.

 

공산군대에서 받아온 증명서를 벽에 걸어놓고 푸꿰이는 그저 당에 충성하는 노동자로 살아야 자신과 가족을 살리는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다. 자기 집을 도박으로 빼앗은 사람이 지주계급이라 하여 인민재판에 의해 공개처형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할까, 인생사 塞翁之馬라 할까. 도박으로 집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자기가 地主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시대가 그를 살려 낸 것이다.

 

철을 녹이는 공장에서 그의 아들이 위원장의 차에 치어 죽게 된다. 그 아들을 죽게 만든 위원장이 다름 아닌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춘셍이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푸꿰이 부부는 그를 원망한다. 춘성은 죄의식에 몸 둘 바를 모르고 떠나간다.

세월은 흘러 그의 벙어리 딸을 절름발이 감독관에게 시집보내고, 그 딸이 아기를 낳던 중 피를 과도하게 흘려 죽는다. 당시 문화혁명시의 혼란한 시기로 의대 교수는 감옥에 있고. 그 교수를 데려 왔으나 3일을 굶겨 놓은 상태에 빵을 갑작스레 먹는 바람에 혼절하니 어린 의대생 의사들이 어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 결국 딸은 죽고 손자만 살아남는다. 그 배고픈 교수가 만두를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서 그의 손자를 만두라고 이름 지은 것도 만두라도 실컷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희극 같은 비극을 다만 견뎌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할아버지가 된 푸꿰이가 손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 병아리가 언제 자라?’ 묻는 외손자에게 ‘이 병아리가 자라면 거위가 되지. 거위가 되면 그 다음에 양이 되고, 그 다음에는 소가 된단다.’ ‘소 다음은?’ ‘소가 다 자라면 만두도 다 클 거야. 그러면 만두는 기차를 타고 더 행복 해질 거야.’

인생을, 다만 살아오기만 한 이 노인에게서 다음다음 세대인 외손자에게 희망의 싹을 북 돋으려는 간절한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2. 20세기 중국 영화의 역사적 흐름 가운데 이 작품의 위치.

이 작품은 중국의 5세대 감독 중 한명인 장이머우 감독의 1994년 작품이다. 그의 초기 작품인 붉은 수수밭, 홍등, 국두 등에서 원시적인 풍광, 강렬한 색체, 외부와의 단절된 공간 등 장이머우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는 암울한 과거의 공간을 주로 그렸다면, 1991년 귀주 이야기에서는 한 농촌 주부의 조그마한 억울함을 통해 관료조직의 난맥상, 사법제도의 비현실성 등을 묘사하여 사회 비판적 측면도 부각시켰다. 1994년에 발표한 <인생>에서는 격동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민초의 힘든 현실에 대해서 그나마 희망의 싹을 잃지 않으려는, 중국의 현실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을 담으려 하였다.

 

중국 특유의 이른바 영화감독의 세대구분에 따라 <인생>의 위치를 가늠 해 보고자 한다.

초기 영화를 주도 했던 영화감독들을 일러 제1세대 감독이라고 한다. 중국영화 초창기를 주도했던 정정치우(鄭正秋)와 장스촨(張石川)을 꼽으며, 어려운 시대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중국영화의 발달에 역사적 기여를 하였다.

 

1930년대에 상해를 중심으로 중국영화의 첫 번째 황금기를 주도했던 제 2세대 감독으로는 차이추성(蔡楚生) 페이무(費穆) 쑨위(孫瑜) 우용강(吳永剛) 등을 들 수 있으며, 1930년대는 중국 영화사상 상해영화의 황금기로 불린다. 상해 영화는 상해라는 지역을 모태로 하여 발달하였으나 점차 중국 전역으로 보급되었다. 당시 상해영화는 통속적인 스토리, 계속되는 우연, 과장된 연기, 계속되는 여주인공의 클로즈업 화면 등은 예술영화의 범주에 넣기에 부족하였으나 그러나 이런 類의 영화가 바로 상해 시민들이 요구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제 3세대감독으로는 링즈펑(凌子風)과 셰진(謝晉) 등을 든다.

문화대혁명 종료 이후 개혁개방의 새로운 시대 상황에 따라 새로운 영화의 물결을 주도한 사람은 셰진 감독이었다. 사회주의 중국 건국이후 <홍색 낭자군>을 통해 사회주의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부상한 그는 문화 대혁명이 종료된 후 1980년 <천운산 전기> 를 통해 새로운 멜로 드라마적 스타일을 제시하였다. 현실 정치권력의 주류 이데올로기와 전통적 윤리관, 낙관적 인도주의는 줄곧 그의 영화에 결합 표출 되어 왔다.

 

제 4세대 감독으로는 우이궁(吳貽弓)과 우텐밍(吳天明) 왕치민(王啓民)) 등을 꼽는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덩샤오핑에 의해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활동을 시작한 신진 감독들 이다. 이들이 연출한 이 시기의 영화의 주제는 문화대혁명을 중심으로 한 과거의 극복이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대 재앙의 원인을 찾아내 상처를 치유한다는 점에서 상흔문학과 그 궤를 같이 하였으며, 인간의 본성, 문명과 우연, 의지와 욕망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인간 내면세계를 탐구하려는 자신들의 영화 미학을 이끌어 내고자 하였다.

 

외부 세계에 제5세대 감독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천카이커가 감독한 <황토지>였다. 이 영화에서 장이머우(張藝謨)는 촬영감독을 맡았다. 장죈자오와 천카이커의 뒤를 이어 세계영화계에 두각을 나타냈던 장이머우, 텐주앙주앙, 우즈니우, 황젠신에게 제5세대 감독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이들은 새로운 영화기법과 스타일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실험영화-探索電影-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기존의 관습을 탈피하고 생명력 넘치는 강렬한 색조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의미가 풍부한, 상징으로 가득 찬 역동적인 화면을 지향하였다.

1987년 <붉은 수수밭>이 베르린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제5세대 감독의 선두주자가 된 장이머우 감독은 <국두>, <홍등>을 발표하였고 1992년 <귀주이야기> 뒤이어 1994년 <인생(活着)>에서 더욱 완결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어 제6세대 감독은 개혁개방과 천안문사태 이후 1990대와 함께 등장하였다.

이들은 이전 시기의 감독들보다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중고를 겪으면서 작품의 무대를 당시의 현존하던 1990년대 중국의 도시로 가져왔다. 탈 이데올로기화 되고 상업화된 당시 중국인들의 생활이 무대였던 것이다. 장위안은 제6세대 독립영화의 선두주자로서 <어머니> <북경의 녀석들>등 화제작을 그렸다. 또한 가장 영화적 성취도가 뛰어난 사람으로 지아장커 감독이 있다. 그의 작품으로는<사오우>가 있으며 이 영화를 통해 지아장커는 디지털가메라를 이용한 영화의 가능성을 확인시켰고, 이 영화는 1998년 부산, 벤쿠버, 낭트 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하였다.

 

이상에서 중국영화사의 흐름 속에서 <인생>의 위치를 검토하였다.

 

3. <人生>의 영화사적 의의

<인생>은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에서 소용돌이치는 역사적 흐름이 개인과는 전혀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의 삶은 사실은 그 역사와 혁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굴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1987)이 베르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였으나. 현 체제에 은근한 비판을 가한 <귀주 이야기>와, 그것 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비판을 가한 <인생>은 국제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상영 금지되는 억울함을 당했다. 요즈음 시각으로 보면 아주 보편적인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푸꿰이는 가난과 전쟁, 혁명,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거센 역사와 삶의 물살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골목길에 나붙은 수많은 구호와 초상, 붉은 글씨들을 그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 다만 시대가 노동자의 시대이니 자신이 노동자이어야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공산당 군대에서 받은 증명서를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 놓아야 했다. 그것으로 자본가로 몰리거나 비판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가족 전체를 살리기 위해,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어린 자식을 엄하게 다스려야했고, 딸을 절름발이 감독관에게 시집을 보낸 푸꿰이에게, 살아간다는 그 자체가 최고의 선이자 가치였던 것이다.

 

장이머우 감독의 눈에도 인생은 죽음보다는 사는 게 중요하고 절망보다는 희망이 중요한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다 죽고 결국은 푸꿰이 혼자만 남아, 어떤 젊은이에게 자기의 살아 온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영화에서는 사위, 아내, 외손자는 살려 두었다. 원작 소설처럼 모두가 다 죽어 버렸다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다 죽고 없다면 영화 속의 푸꿰이는 너무 불쌍하지 아니한가? 아마 이 점도 장이머우 감독이 헤아린 게 아닌가 싶다.

 

아들 유퀸이 죽은 것도, 자기가 고집을 부려 학교에 보냈기 때문이라고 후회하며, 딸 팽시아가 손자를 낳다가 죽은 것도 왕 교수에게 빵을 너무 급하게 먹이고 물을 마시게 했기 때문이라고 후회하는 장면에서는, 혼란스런 체제와 그들의 몰상식을 탓할 줄도 모르고 그 모두를 푸꿰이 자신의 탓으로만 돌린다.

 

이 영화에서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살아 있어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이 날라 들어와 고통을 멎게 해준다. 절망 속에서 아내가 아들을 품에 안고 찾아오던 날의 기쁨. 그 아들이 춘셍의 차에 치어 죽은 후, 그에 대한 증오감이, 춘셍이 자본주의 누명을 쓰고 자살하려는 낌새를 눈치 채고는, 살아야 한다고 간절하게 충고하는 푸꿰이와 그의 아내. 이미 아들을 죽였다는 원망은 사라지고 춘셍이 죽지 말고 살아야만 한다는, 간절한 사랑으로 화해버린 것이다. 이미 죽은 목숨보다도 앞으로 살아야 하는 목숨이 더 귀중하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병아리가 자라 소가 될 때쯤이면 외손자도 다 자라 기차를 탈수 있다는 마지막 장면으로 장이머우 감독은 중국의 미래에 대해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인간애와 인생에 대한 낙관론이 그의 영화를 한결 따뜻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