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사라져버리는 것들

甘冥堂 2011. 6. 15. 08:10

며칠전 이른 아침, 중국 여행이나 갈까하고 문에 걸린 중국지도를 보려고, 지도 위에 가로 걸린 장식물을 책장 위 시렁에 얹어 놓으려다가 그만 실수하여 그 위에 있던 주판을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주판알이 사방으로 튕겨나가는 순간. 아차, 뭐가 잘못되는게 아냐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그날 하루종일 찝찝해 마지 않았다.

 

주판,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낯설고 신기한 장난감 같은 것이,

어렸을적부터 손에 익어 지금도 웬만한 계산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것도 한 30년 이상이나 쓴 오래된 것을.

비록 지금 쓰지는 않으나 어린시절을 그릴 때 가끔씩 만져보곤 하던 것인데.

그리고 언젠가는, 시절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어린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칠 날이 있어, 그때가 되면 우리 애기들에게 물려주어야지 하고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었던것인데. 그만 떨어뜨려 못쓰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아까운것이었다.

 

오늘 아침 문득 생각이 나, 그 깨어진 주판을 이리저리 만지며, 접착제로 고정시키면 안될까 궁리하며 아무리 해 보아도 원래대로 될 것 같지 않다. 다음에 고쳐야지 하곤 비닐봉지에 잘 담아 테이프로 붙혀, 어디에 놓아둘까 두리번거리다가 그만 맘을 바꿨다. 

이게 아니다. 그냥 버리자.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그동안 재주없는 나를 위해 수고한 주판에게는 매우 미안스럽고 안됐지만, 그러나 어쩌랴. 이미 못쓰게 된 것은 못쓰게 된 것. 깨끗이 잊어버리는게 마땅하지 아니한가.

 

아쉽기만하다. 생각하면 내 손때 묻은 것 치고 버려 아깝지 않을게 무엇이 있나. 몇 십년된 등산배낭도 버리기 싫어 시렁 한 켠에 모셔두고 있는데. 하나하나에 내 체취가 배어있고 하나하나에 추억이 묻어있는걸 어찌 쉽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안경, 손가방, 지갑, 책들, 메모장, 명함꽂이, 오래된 라디오...등 무엇하나 버릴게 없다.

 

버리지 않고 쌓아두기만하면 집안 꼴이 어찌 될까. 하여 몇년전 부터는 나를 위한 물건은 좀체로 사지않고 지낸다. 앞으로도 그리 할 것이고.

무엇을 위해 사다가 쌓아둔단말인가? 또 새로이 인연을 맺으면 그 또한 버리지 못하고 쌓아둘터, 아예 처음부터 마음에 두지 않으면 버릴 걱정도 없을게 아닌가?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이것도 미련이요 집착이며 아집이다. 뭣에 그리 얽매이려하는가?

털 것은 털고, 버릴 것은 버려야지.

어느 여행 전문가의 말이 생각난다. 버리는 연습을 해야한다고.

그 말 맞아.

집안도 정리하여 눈에 걸리는 것 하나없이 깨끗이 치워 버리고도 싶은 때가 있다.

다 버려 버리고, 창호지 바른 작은 방과  탁자 하나. 그리고 햇볕 스며드는 툇마루....족하지 아니한가?

 

마누라가 말한다.

"아예 나까지 갖다버리고 혼자 살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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