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6살 어린이 눈에 비친 6.25

甘冥堂 2011. 6. 25. 14:56

6.25당시 6세, 9살이었던 누나들과 당시10살이었던 고모가 얘기꽃을 피우는데 밤이 새는줄을 모른다.

마침 6.25때 고생한 아야기를 하신다.

 

고향집인 신도읍에서 피난을 간 곳은 한강건너 신월동(당시에는 신둔이라고 했다)이란다.

지금 생각하면 아니, 거기서 거기인데 무슨 피란이야. 그러나 당시에 마을 사람이 다 피란을 가는데 안 가고 혼자 있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을 것이다. 그곳에서 여름을 나는 중 내가 홍역에 걸려 뼈만 남아 살 가망이 없었는데, 우리 누이 둘이 들판에 나가 개구리를 잡아 구워 먹여 겨우겨우 살려냈다고 한다. 그 얘기를 할 때면 누이들은 무척 재미있게 한바탕 웃고 떠드는데 나는 그만 기가 죽어버리곤 한다.

 

어찌어찌하여  피난 살던 곳에서 다시 고향집에 돌아왔다. 이때부터의 이야기가 참으로 기가 막히다. 동네 빨갱이들이 먹을 것 덮고 잘 이불까지 다 뺏앗어가고, 아버지를 어디에 숨겼느냐고 온 집안 식구들을 닥달하더니, 할아버지를 끌고나가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갈겨 머리가 터졌는데 머리에서 허연 해골이 보이더라고, 피가 낭자하여 흰 두루마기 하얀 고무신에 피가 엉겨붙어 선지같이 되었다고하며 몸을 부르르 떨며 당시를 회고한다.  아버지를 동뚝너머 고추밭 이랑에 숨겨놓고 그 모진 매질에도 입을 열지 않으셨던 할아버지 얘기를 할 때면 눈에 눈물이 맺히곤한다. 아버지가 빨갱이에게 붙잡혀 북으로 끌려가던중 개성 근처에서 탈출하여 한방중에 집으로 돌아오신 이야기, 이후 국민병-아마 한국군의 보충역이 아니었나 싶다-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이야기.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빨갱이들의 만행이다. 누구를 어떻게 때려 죽였고, 누구는 반쯤 죽여 흙구덩이에 내다버렸고, 새끼줄에 두릎엮듯 동네 어른들을 묶어 구산동으로 끌고 가 모두 죽여, 그 소문을 듣고 동네 사람들이 달려가 시체를 수습한 얘기. 학교마당에 주욱 꿇여 앉혀 놓고 몽동이로 때려 죽이는 장면 듣등. 당시 동네 빨갱이 김아무개, 이 아무개하며 그 실명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린 나이에도 그들에 대한 무서웠던 기억이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다시 1.4 후퇴를 맞았다.

한 겨울에에 평택 근처까지 피란을 갔다고 한다. 마차에 살림살이를 한가득 싣고 그위에 어린아이를 태우고 이불 보따리를 짊어지게하곤 엄동설한에 피란을 갔다고 한다. 남의 집 헛간을 빌려 눈밭에 나가 배추 부스러기를 따다가 죽쑤어 먹던 얘기, 그 와중 피란통에 애기- 내 둘째 동생을 낳았는데 9살된 우리 큰 누이가 옆집 무당집에 가서 굿하고 남은 밥을 구해다가 해산한 어머니를 돌보았다. 고모는 피란통에 가족을 잃어버려 하마터면 고아가 될 뻔했다. 어찌어찌 고향에서 같이 피란길을 나선 동네사람을 만나 겨우 식구들을 찾았다고 한다. 그땐 가족을 잃어버리는 것은 바로 죽음이었기에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으며, 더구나 어린 나이에 당황했던 얘기를 할 때면 지금도 무섭다고 한다.

당시에 피란길은 몇십명 대가족이 함께 한곳으로 간게 아니고 몇개 팀으로 나누어 어디서 만나자 약속하고 피란을 갔었다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인민군들이 말을 타고 학애고개를 넘어 정능골 길로 도망가는 장면, 미군들이 앞산에 진을치고 있으면서 며칠을 헬기를 띄우기만 하고 공격을 하지 않더라는 얘기.

도망간 빨갱이 잔재를 치우던 이야기., 미처 북으로 가지 못하고 남아있는 빨갱이 가족들에게 동네분들이 가한 모욕 등은, 이미 그 빨갱이의 부모들은 다 돌아가셨지만 어렸을적에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빨갱이의 어린 동생이나 자식들은 어떤 복수의 날을 고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군들이 동네에 들어와 집안 곳곳을 수색하던 이야기, 그 미군을 졸졸 따라다니면 껌, 과자 등을 주었다는 얘기, 젊은 처자들은 미군 깜둥이가 여자만 보면 강간한다는 소문에 얼굴에 숯검뎅이 칠을하고 숨어지내야했던 얘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옛날에 말솜씨 좋은 큰집 아주머니와 우리 어머니가 무슨 때면 만나 옛날 얘기하는 것을 녹취해놓지 못한게 아쉽기만하다. 지금도, 어느날 기회가 되면 누나들 고모님과 밤샘할 자리를 만들어 그분들에게  옛날 얘기를 하게하여 녹취를 해 볼까 생각한다. 10세 안팍의 어린나이의 기억들은 하나도 가감되지 않은 살아있는 역사가 아닌가? 

 

당시 세살박이 어린애가 지금에 이르러 그때 그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때는 웃다가도 어땐 때는 몸서리치며, 또 어느 순간에는 주먹도 불끈 쥐어지는 것을 보면,  내몸에 흐르는 DNA 가 나도 어쩔수없는 이 나라 백성이구나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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